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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복수노조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노중기
  • 승인 2023.08.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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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노중기 한신대 교수

1. 교수노조 운동과 복수노조 문제

합법화된 교수 노동운동으로 인해 여러 학교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단체교섭이 진행 중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단체협약과 임금 협약이 체결되어 역사상 처음으로 교수 노동운동의 제도적 결실이 나오고 있다.

필자도 소속 대학인 한신대는 물론이고, 다른 사립대에서도 단체교섭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 단위에서는 교육부와의 교섭을 위해 교수노조 본조가 추진하는 준비작업에도 참가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대학에 복수노조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것 때문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보았다. 주지하듯이 전국 수준에서는 전국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과 국공립대교수노조(국교조), 사립대교수노조(사교조)가 있어 복수노조 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또 개별 대학에서는 두 개의 노조는 물론이고, 다수의 노조가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교수노조 외에 대학노조나 기타 직원노조 등 직종과 조직 대상이 다른 노동조합도 있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는 배경은 매우 다양하다. 국립·사립·법인 등 조직 대상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 형태에 따른 직군별 차이, 학교 당국(재단)과의 관계, 노동운동 노선과 정치적 성향 및 기타 이유가 모두 근거가 된다. 고용 형태는 더 구체적으로 호봉제, (계약)연봉제, 단기 계약제, 산학협력 등으로 세분화할 수도 있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재단의 성격에 따라서, 그리고 교수집단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 복수노조가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 관계에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먼저 노동조합 조직과정에서는 제1노조가 되기 위해 조직 대상 교수들을 상대로 서로 경쟁하게 된다. 또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교섭 내용에서 의견이 달라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

각 노조가 갖는 객관적인 조건의 차이 및 서로 다른 이해관계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노조 이전 교수협의회 시절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대립이나 감정 다툼의 오랜 과거가 갈등의 주요 배경이 된다. 특히 문제인 것은 이런 복수노조 상황을 악용해 사용자인 학교 당국이나 재단, 정부가 분할지배(divide and rule)에 나서고 이익을 챙기게 된다는 점이다.

2. 복수노조, 그 오랜 질곡의 역사

복수노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운동에서 그 역사가 어떠했는가를 잠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노동자가 다른 노조를 만드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나 우리 역사에서 그 맥락은 크게 달랐다.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을 거쳐 득세한 우익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이승만 독재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에 불과했다. 경제성장을 집권 명분으로 내세운 박정희 군사정권은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완전히 박탈했는데 이때 복수노조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기에 이른다. 국가가 허용하는 어용 한국노총 조직 외 노동자의 목소리를 완전히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다른 총연합단체는 모두 금지되었고 기업에서도 한국노총 소속 노조만 인정되었다. 이에 더해 5공 전두환 정권이 법으로 기업별노조만 허용하고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을 신설함으로써 복수노조 금지는 더욱 핵심적 노동 통제장치가 되었다.

그러므로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새로 형성된 민주노조운동이 ‘복수노조 금지’ 철폐 투쟁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년 이상 가혹한 탄압을 견디며 투쟁한 결과 1997년에는 상급노조(산별노조, 연맹과 총연맹 등)에서 먼저, 2010년에는 기업 단위에서도 복수노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은 오늘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이 합법적인 노동조합으로 인정받는 고난의 역사이기도 했다. 요컨대 복수노조는 우리 민주노조운동이 만든 역사적 성과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현재 여러 교수노조 지회가 고통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복수노조를 만들 노동자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에 있다. 2010년에 민주노총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한국노총과 만든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조항’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한 악법 조항이었다. 그 조항을 통해 사용자는 어용노조와 결탁해 공작을 펼치고 민주노조를 마음껏 파괴할 수 있었다. ‘창구 단일화’ 대신 모든 노조의 자유로운 교섭권을 보장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시급하다.

창구 단일화나 공동교섭에서 연대와 단결의 원칙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3. 복수노조 대응의 원칙은 무엇인가?

먼저 복수노조에 대한 대응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앞 절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로운 노동조합 결성’은 가장 중요한 노동기본권이고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제2노조, 제3노조가 사용자나 족벌 재단의 편을 드는 어용노조라 하더라도 복수노조를 만들 권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용노조 간부나 그 노조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거기에 소속된 조합원 노동자들과의 연대 원칙을 버릴 수는 없다.

여기서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연대와 단결’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는 자본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다수 노동자가 서로 경쟁하며 임금 노동조건을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연대하고 단결해야만 힘이 강한 자본가에게 맞설 수 있다. 이런 요구를 오랜 (불법) 투쟁을 통해 제도화한 것이 바로 오늘의 (합법) 노동조합이고 단체교섭이다.

또 연대와 단결은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차이와 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서로 같지 않다. 임금수준, 고용 형태(정규직 비정규직)는 물론 인종이나 국적, 업종과 직종(사무직과 제조업), 성별 등에 따라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심지어 대립하기도 한다. 이런 이해관계 차이를 반영해서 여러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고 갈등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이런 객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계급이 공유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먼저 내세우는 계급운동이란 점이 중요하다. 노동운동은 내부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끊임없이 조율하고 민주적으로 대표하려는 운동이다.

단기적으로는 약자의 이익을 앞세우나 장기적으로는 모든 노동자의 이익이 확대되도록 하는 원칙의 계급운동이다. 수천 개 서로 다른 노동조합을 수십 개의 산업별 노조로 통일해온 독일, 영국 등 서구 노동조합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또한 비록 비정규직인 시다이지만 자기 차비를 기꺼이 여성 노동자의 밥값(풀빵)으로 내놓은 전태일 열사의 연대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연대와 단결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많은 경우 복수노조와 갈등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제2노조가 자신의 협소한 이익만을 고집할 경우이다. 어느 정도 임금을 받는 정년제 연봉제 또는 호봉제 교수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임금의 비정년트랙 교수를 배제하는 경우가 전형적 사례이다.

이런 경제주의 혹은 이기주의 노동조합운동은 정규/비정규나 정년/비정년트랙뿐만 아니라 국립과 사립, 4년제와 2년제 대학 교원 사이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물론 이보다 더 투쟁이 필요한 복수노조 사례는 아예 족벌 사학재단이나 학교 당국의 어용노조인 경우이다.

현재 우리 전국교수노동조합은 이 점에서 분명한 자기 원칙을 갖고 있다. 정년트랙보다는 비정년트랙, 호봉제나 연봉제보다는 단기계약 비정년트랙, 4년제보다는 2년제, 그리고 수도권보다는 지방대 또 국립보다는 사립대 교원의 열악한 임금 노동조건을 먼저 개선하는 원칙이다.

협소한 자기 집단의 눈앞의 이익보다 전체 교원, 대학사회의 장기적·구조적 발전을 염두에 둔 운동전략이다. 교원 전체의 임금 노동조건을 중장기적으로 개선하되 단기적으로는 약자를 더 배려하는 전태일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사용자 편을 드는 어용노조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로 반대하는 원칙도 중요하다.

4. 복수노조,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의 현행 제도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노동 악법임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단체교섭에서 창구를 단일화하거나 공동교섭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원칙을 확인하고 그 한계를 인식한 다음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2노조와 사용자의 성격 등에 따라서 창구 단일화를 거부하는 전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과 관련된 교육, 특히 노동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조합원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창구 단일화나 공동교섭에서 연대와 단결의 원칙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어용노조와 경제주의 노조와 대립하여 갈등하거나 심지어 투쟁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연대해야 할 노동자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다른 노조 지도부와 일반 조합원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교섭과 투쟁을 거치면서 가능하다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셋째, 이런 연대의 원칙이 있더라도 이기적 요구나 어용노조와 같은 행태를 용인해선 안 된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계급적 연대의 또 다른 모습일 수가 있다. 예컨대 ‘정년제 고임금 교수와 비정년트랙 저임금 교수의 임금인상률을 같게 하자’는 주장이 있다면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그것은 교수 공동체 내부의 격차를 더 벌리고 차별을 고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또 노조가 약자인 교수 노동자의 입장보다 학교 당국이나 재단이 이익을 앞세우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복수노조 상황에서 우리 교수노조는 다른 노조와 때로는 갈등하고 심지어 투쟁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전략을 운용해야 한다. 노조가 대립할 상대는 사용자나 정부(교육부)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민주노총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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