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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4] 피라미드와 로켓에서 찾은 권력의 기원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54] 피라미드와 로켓에서 찾은 권력의 기원
  • 조준태
  • 승인 2023.08.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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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시골에서 아침저녁 출퇴근을 위해 타던 자전거를 며칠 전부터 타지 않고 있다. 줄곧 1차선 도로였던 곳 중앙에 줄만 하나 그어 도로 폭을 그대로 둔 채 2차선으로 만드니 출퇴근 시간 정도에 북적대던 차량이 하루 종일 북적대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다니던 것도 소용이 없어졌다. 

아침마다 인도조차 없는 이 시골 차도에서 차들에 깔려 죽은 각종 동물의 시신을 본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물론 걷는 사람도 없다. 너무나 위험하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배기가스의 매연도 지독하다. 그래도 탔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탈 수 없다.
 
지금 한국은 살 곳이 없다. 세월호 사고 이전부터 각종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이민을 갔다지만 이민도 갈만한 사람이 간다. 그러니 이민을 가라고 부추기는 짓은 웃기는 일이다. “빌어먹을 자동차는 잊어버리고 연인과 친구를 위한 도시를 만들어라”라고 뉴욕에서 외친 멈퍼드도 만년에는 뉴욕을 떠나 시골에서 살았다. 그가 말년을 보낸 곳은 지금도 한적한 시골이다. 자가용으로 가득 찬 우리의 도시 같은 시골이 아니다. 우리 시골은 농업공장이다. 그리고 도시는 상공업 공장이다. 한반도가 공장이다. 한반도가 기계다. 거대기계다.

이 거대기계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한국이 자랑하는 수출산업인 자동차와 선박은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고, TV·냉장고·에어컨은 간접 배출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들이다. 거기에다 화력발전과 원전이 가세한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환경에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세계은행이 석탄을 이용한 화력 발전소를 못 짓게 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그 증설을 계획한다.

나는 자가용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생 마신 대기의 오염물질은 발암물질이다. 한국에 암 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오염공기를 마시지 않으려면 자가용을 타고 창문을 처닫아야 한다. 강물은 썩어가고 대지는 오염돼 간다.
 

멈퍼드가 1967년에 완성한 『기계의 신화』 1부. 고대부터 이어지는 권력의 역사를 다룬다. 사진=아카넷

오늘날 한국의 사회 체제는 유기적인 인간적 욕구에 맞춰 조정된 것이 아니다. 생명을 통제하려는 기계적 욕구에 따라 조직돼 있다. 이런 체제에서 세월호 참사 같은 것이 터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책임을 일개 선장이나 선원들, 그 배의 회사 관계자들, 또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묻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빌어먹을 자동차는 잊고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라”

나는 그 배경을 내가 사는 시골에서 본다. 기계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농민들 속에서 본다. 농촌사회였던 과거의 전통 사회가 유기적이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의 노동자 이상으로 장시간 노동에 허덕인 농민들에게 유기적 삶이 가능했을까? 지금보다 훨씬 살기 힘들었을 과거의 농촌이 이상사회였을까? 
   
10여 년 전에 번역된 멈퍼드의 『기계의 신화』는 그 1, 2부가 각각 1967년과 1970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그 분야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고전의 자리에 올랐다. 기계의 신화가 이 세상 어디에서보다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특히 그것이 권력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심각한 우리 현실에서 그 번역은 더욱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책은 ‘거대기계(Megamachine)’란 개념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근원을 밝히고 새로운 문명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설명한다. 1부인 『기계의 신화 1』은 ‘기술과 인류의 발달’이라는 부제와 어울리게 고대부터 14세기까지 다룬다. 2부인 『기계의 신화 2: 권력의 펜타곤』은 15세기부터 현대까지를 다룬다. 

『기계의 신화 1』에서 멈퍼드는 고대 이집트의 최초 독재체제 문명에 의해 형성된, 인간을 부품으로 구성한 원형적 기계 조직화에서 기계시대와 권력시대의 기원을 찾았다.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그것이 문명화된 현대 잔학행위의 원형이다. 멈퍼드는 피라미드와 우주 로켓을 대응시킨다. 그 어느 것이나 비인간적인 독재 권력에 의한 다수의 희생을 기초로 한, 혜택받은 소수자에게 천국행을 확보시켜주는 장치다.

멈퍼드는 피라미드를 문명화된 잔학행위의 원형으로 봤다. 사진=위키피디아

이러한 과학지식을 만든 것은 성직자 집단이었다. 그들이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한 문자를 발명했다. 미 국방성이 과학자를 비롯해 기술전문가, 게임이론가, 계산기에 의존한 것과 같다. 거대기계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요소인 관료제도 고대 이집트부터 존재했다. 이처럼 피라미드 시대에 과학자와 관료,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를 조직한 거대기계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 원동력은 태양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신앙심이었다. 16세기에 시작돼 17세기에 완성된 과학혁명, 그리고 20세기의 핵병기 개발도 태양신의 복귀다.

거대기계는 노동기계로서 대규모 공공사업을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군사기계로서 대학살, 파괴, 강제노동, 약탈을 반복하게 만든다. 전쟁은 인간 본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문명이 낳은 하나의 제도다. 과학기술 지식, 관료제와 함께 거대기계 성립에 불가결한 요소로서 요구된 또 하나의 조건은 노동의 분업화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분업을 찬양했으나 크로폿킨은 그것이 사회에 유해하고 개인을 어리석게 만들며 수많은 해악을 낳았다고 했다.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아이히만

멈퍼드도 중앙집권제의 거대기계에 의해 강제된 노동이 개별적인 직업이나 기술로 분화돼 생명을 압박하는 노예적 역무로 변했다고 본다.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군대 조직이다. 병사는 살인, 파괴, 약탈이라는 행위를 조직의 명령에 따라 하나의 업무로 행한다. 이러한 인간집단이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고 때로는 시대의 영웅으로 숭배되었으나, 18세기 말 징병제의 발명을 통해 그것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획일적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교육이었다. 교육은 모든 고전철학의 결론이었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홉스 등에 의해 구축된 기계적 세계관은 근대교육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루터가 의무교육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면서 생각한 것은 모든 사람을 하나의 신앙하에 하나의 종교적 신봉자로 만드는 교육이었다. 

의무교육 아래 깔린 이러한 발상은 루터 당시의 독일이나 근대 독일과 나치, 근대 일본 그리고 한국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특히 독일의 나치 강제수용소는 알베르트 코헨의 분석과 같이 그 권위주의적 교육에서 비롯됐다. 멈퍼드의 말을 빌리면 ‘기계적 인간’의 제조가 그 목적이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멈퍼드가 지적하듯 “지금 모든 나라의 정부관청, 기업, 대학, 연구소, 군대에 수없이 많은 아이히만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이다. 

병역과 교육은 '인간부품'을 만드는 조건이었다. 사진은 뉘른베르크의 전당대회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새로운 거대기계를 현대에 부활하게 하는 조건은 인간부품 생산 외에도 더 있다. 급속한 자본축적과 반복적인 자본회전이 그것이다. 거대한 이윤에 기초를 두고 기술 그 자체를 끊임없이 촉진하고자 하는 특수한 경제적 동역학, 즉 금전경제다. 18세기 이래 유럽과 미국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전쟁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막대한 전비다. 그것을 위해 소득세라는 것이 고안됐다. 병역, 교육, 납세라는 국민의 3대 의무가 없었다면 새로운 거대기계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기계의 신화 2: 권력의 펜타곤』에서 멈퍼드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보이지 않는 기계’가 현대에 부활한 점을 현대사의 최대 문제로 본다. 새로운 거대기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체주의국가가 등장하며 탄생했지만 그 역사는 1789년의 프랑스혁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은 왕정 전통을 무너뜨렸으나, 그보다 훨씬 거대한 권력을 갖춘 국민국가를 등장시켰다.

이념적으로는 왕정과 다름이 없었던 그것은 루소의 유사 민주주의하에 징병제라는, 과거의 왕도 갖지 못한 절대 권력을 부여받았다. 루소가 쓴 일반의지라는 개념은 파시스트 전체국가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1789년 대혁명에 의해 생긴 정체는 본질적으로 왕정과 다르지 않았다.

 

현대사의 첫 번째 문제, ‘보이지 않는 기계’의 부활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고대의 거대기계를 현대화한 최초의 시도는 러시아 혁명에서 생겨났다. 억압된 인민의 해방을 목적으로 출발한 혁명 이후 만들어진 국가는 과거보다 더욱 억압적이었다. 이러한 체제는 국가 전체를 감옥으로, 부분적으로는 강제수용소나 학살실험실로 바꿨고, 도망가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 결과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는 ‘노예화, 불평등, 소외’로 바뀌었다.

그 마지막 단계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등장한 히틀러였다. 거대기계의 현대화를 최대로 추진한 그는 제3제국을 자처하며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더 큰 문제는 죽음이라는 병균이 나치의 적인 미국으로까지 이식됐다는 점이었다. 강제적 조직화와 물리적 파괴라는 방법뿐 아니라, 이런 방법을 더욱 간단히 받아들이는 도덕적 타락이 이식됐다.

미국 네바다주의 핵실험장. 문화와 생명이 사라진 사막이야말로 권력의 최적 조건이다. 사진=위키피디아

1945년 이후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공간으로 확대됐다.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최초로 달에 도착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아니라 폐막이었다. 16세기에 시작된 과학혁명은 그리하여 황폐한 종점에 이르렀다.

현대의 거대기계는 군산복합체다. 최초의 원폭이 터진 뒤 10년도 안 돼 거대기계는 미국 경제 전체의 중요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할 정도로 확대됐다. 공항, 로켓 발사장, 폭탄제조공장, 대학을 넘어 수많은 다른 관련분야에 그 손길이 미쳐 과거에는 개별적이었던 독립 기업을 하나의 중앙조직으로 결합했다. 그 비합리적이고 인간파괴적인 방침은 거대기계의 더욱 큰 확대를 보증했다.

거대기계는 거대한 권력체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권력체계는 여러 권력으로 구성되며 멈퍼드는 이를 ‘권력복합체’라고 했다. 그 요소는 동력(Power), 정치권력(Political Power), 생산력(Productivity), 금력(Money Power), 선전활동(Publicity)이다. P로 시작되는 이 다섯 가지 복합체를 그는 권력의 펜타곤(Pentagon)이라고 불렀다. 그 목표는 진보(Progress)다. 더욱 센 동력, 더욱 강한 권력, 더욱 높은 생산력, 더욱 많은 이윤과 재산, 더욱 효과적인 선전을 향한다. 

모든 것은 권력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 희생된다. 인간의 요구, 규범, 목적 등은 당연히 무시된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적, 문화적, 인간적인 것이 없는 사막이야말로 권력체계의 최적 조건이 된다. 이처럼 인간의 원리가 아니라 기계의 원리 위에 선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하고 현대에 부활한 거대기계로 상징되는 우리의 문명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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