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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과 대학의 사망선고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과 대학의 사망선고
  • 안상준
  • 승인 2023.07.2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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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이제 한국에서 대학은 죽었다. 적어도 지방대는 곧 죽을 것이다. 지난 6월 하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검토한 후의 예측이다. 

대학의 본질을 위협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현 정부의 ‘도구적 교육관’을 밀어붙여 실현하려는 선제 조치로 보인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조(목적)는 “이 영은 「고등교육법」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모법 개정의 필연성은 감춰놓고 시행령 개정으로 정부의 입장을 관철하는 ‘시행령 통치’를 강행한다. 특히 여소야대 상황과 야당을 설득하기 어렵거나 논쟁이 예상되는 내용이 많다. 거꾸로 가는 현 정부의 행태가 교육개혁의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학과 또는 학부의 설치 원칙을 철폐한다. 이제 대학은 융합학과(전공) 신설이나 자유전공 운영, 학생 통합 선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조직을 자유롭게 구성·운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떻게 자유롭게 구성하고 운영할까? 학내에서는 무자비한 학생 유치 경쟁, 전공 존치 경쟁, 재원 분배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교육과 연구를 비롯한 대학의 본원적 기능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이미 입시의 관점에서 전공이나 학과의 경쟁력보다 대학 간판이 더 중요해졌다. 예를 들어 사학과에 들어오기 위해 ○○대를 선택하는 대신, ○○대에 와서 사학과를 선택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간판의 브랜드가 약한 지방대 전체에 결코 유리한 구도가 아니다. 

둘째, 교수시간 기준을 규정한 조항을 폐지한다. 앞으로 교원의 교수시간은 학칙으로 정하게 된다. 기준 시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연구에 집중하는 교수는 교수시간을 낮춰 달라고 요구할 게 뻔한데, 교육과 산학에 집중하는 교수 및 입시와 행정에 봉사하는 교수의 시수는 어떻게 산정할지 막막해 보인다.

기준 시수는 교수업적평가와 직접 연동되기에 적정한 기준을 정하는 일은 절대 쉬울 수가 없다. 또한, 국립대는 대체로 기준 시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립대는 늘이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이다. 한편, 사립대 법인은 기준 시수를 빌미로 교수를 통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수 1인당 학생 수와 강의당 학생 수 등의 교육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기준 시수를 줄이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10여 년 전에 이미 서울의 주요 사립대가 기준 시수를 9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시도를 했지만 대체로 실패하고 어정쩡한 수준에서 봉합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학교 밖 수업이 허용된다. 학교 밖에서 이동수업과 협동수업이 가능해진다. 특히 협동수업은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현장실무지식 습득을 위한 목적으로 산업체 및 연구기관 등과의 협약에 따라 해당 기관이 보유한 시설·장비·인력을 활용하여 학교 밖의 장소에서 실시하는 수업을 말한다. 협동수업을 운영하는 경우 학점인정의 범위는 졸업학점의 4분의 1 이내로 한다.

교육부는 대학이 고급지식을 생산하는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취업준비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천명하는 셈이다. 대학 자율의 허울을 쓰고 국가의 재정으로 기업의 인재 양성을 위한 통로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제 한국의 대학에서 고급지식을 생산하는 연구기능은 사치다. 고급지식을 전수하는 강의실의 의미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산업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도구적 교육관’이 마침내 대학을 죽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학 교육에 관한 한 후진국으로 전락할 날이 머지않았다. 후세는 그 책임을 대통령 윤석열과 교육부장관 이주호에게 추궁하리라.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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