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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죽음’의 적신호
한국적 ‘죽음’의 적신호
  • 신희선
  • 승인 2023.07.17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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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책모임에서 앤드루 도이그가 쓴 『This Mortal Coil』을 함께 읽었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의 굴레를 다룬 이 책은 ‘죽음은 어떻게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하에 『죽음의 역사』로 번역되었다. <이코노미스트>가 2022년 최고의 도서로 선정한 책답게,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시대에 따른 사망 원인의 변화를 중심으로 각종 데이터와 실증적 자료를 활용해 흥미롭게 다루었다.

과거에는 기근과 전쟁, 역병이 주요 사망 원인이었지만, 이제는 심장질환, 뇌졸중, 폐질환, 암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면 각종 장기를 교체할 수 있어서 죽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며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건강 상태가 나빠진다는 사실이었다. 도이그는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를 개선하고 싶다면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아마르티아 센의 말을 인용해 “제대로 기능하는 다당제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 기근은 없다”며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기근은 식량 공급의 부족보다 식량 분배의 불균형과 같은 요인이 특정 집단을 기아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사례로 들며, 언론 매체가 정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치어리더 노릇을 하고, 정권의 최우선 관심사가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정권 유지에 있고, 일반 국민이 발언권이 없는 상황에, 위기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도이그가 관찰한 런던의 초기 ‘사망자통계표’는 다양한 사망 원인을 적시하였다. 그 중 ‘고난과 압박’을 “의외로 매우 치명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해석한 점이 눈에 띄었다. 심리적 고통과 정신적 억압이 한 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도이그에 의하면 자살의 77%는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 하층민이거나 소수자다. 자살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모두 극심한 감정적 고통 때문에 최종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고 했다.

천민자본주의 성격과 권위적인 정권의 속성이 노동자를 분신자살에 이르게 한 경위이듯,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죽음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결국 자살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책의 말미에 쓴 ‘감사의 말’에서, 도이그는 14세때 『코스모스』를 읽으며 궁금했던 문장이 생각의 씨앗이 되었고 싹이 터 이 책이 나왔다고 했다. 청소년기에 칼 세이건의 다큐멘터리와 책을 접하며 가졌던 소박한 질문이 주제를 탐구하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도이그와 같은 경험이 한국 교육 환경에서 가능할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빠른 속도로 수능 문제를 푸는 기술로, 학생들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세상에 대해 질문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입시 수단이 되어 버린 독서기록장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며 생각을 넓히는 경험을 했다고 입증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학원으로 쫓기면서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에게 지금과 달리 미래는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수능시험 킬러문항으로 야기된 최근의 논란은 껍데기만 남은 한국 교육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17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로 나타났다. 학생을 자퇴로, 자살로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에 적신호가 켜진지 이미 오래됐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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