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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분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행복한 연구 인생
우아한 분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행복한 연구 인생
  • 김재호
  • 승인 2023.07.12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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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우아한 분자』 장피에르 소바주 | 강현주 옮김 | 장홍제 감수 | 200쪽

201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세렌디피티!

“화학이란 우주의 법칙과 삶의 규칙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학이다!”―장마리 렌

화학은 무기력한 자연과 살아 숨 쉬는 자연 사이의 가교다. 분자를 서로 연결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의 과학이다. 한 줌의 불활성 원자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신비로운 기술이다.

 

이 책은 201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장피에르 소바주의 연구 인생을 담고 있다. 머리말 격인 “생기 넘치는 운명”은 2016년 노벨상을 받은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많은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은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 예의상 그랬고, 그다음으로 화학을 기껏해야 고등학교 시절의 나쁜 기억으로, 최악의 경우 죽도록 싫은 과학으로 여기는 일반 대중에게 미디어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이 ‘화학’이라는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불신, 더 나아가 철저한 무관심을 모르지 않는다. 당시 나에게 건네진 마이크가 과학자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 예를 들면 새로 조제한 약제가 담긴 시험관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는 수염 덥수룩한 연금술사나 담배를 입에 물고 이전보다 독성이 더 강한 살충제 공식을 찾아내려는 교활한 기업가와 같은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했다면, 나는 이것이 내게 부여된 명예에 걸맞은 의무라고 생각했다.”

아마 우리에게도 ‘화학’이란 저런 과학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그러나 이러한 왜곡된 이미지는 항상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 언론인에게서 나온다.” 그러면서 기초 과학 중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화학이 가장 오해를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소바주 교수팀이 이른 성취와 그가 45년 동안 연구자로서 자연에서 배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또한 화학자로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열정 가득하고 흥미로운 탐구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삶에 대한 찬사이자 호기심에 대한 옹호이다.

과학에 관심이 있고, 자연에 끌린다는 것

저자의 부모님은 지방 소부르주아 출신으로, 어머니는 노르망디, 아버지는 북부 출신이다. 부모님은 저자가 아직 아기였을 때 이혼했다. 보헤미안의 영혼을 소유한 친아버지는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되찾았고, 어머니는 공군 장교 마르셀 루이 그로스와 재혼했다. 그때부터 저자는 여느 군인 자녀들처럼 끊임없이 옮겨다녔다.

열다섯 살이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의붓아버지는 새로운 근무지, 드라첸브론이라는 북부 알자스 마을로 이동했다. 특출 나게 잘하는 과목 없이 골고루 우수한 성적을 거두던 저자가 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 같은 곳이 되었다.

드라첸브론은 약 500명의 주민이 평화롭게 살던 마을이었다. 보주산맥 기슭의 호크발트산 초입에 위치해, 언덕이 많은 푸른 풍경이 독일 국경 너머까지 펼쳐졌다. 자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화학 실험이나 자연과학에 관심이 커져가던 즈음 집 주변에서 실험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용돈으로 삼각 플라스크와 둥근바닥 플라스크, 시험관 몇 개를 구입해 집의 지하실에 소박한 실험실을 꾸렸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확신이 있었다. “과학에 관심이 있고, 자연에 끌린다는 것.” 그는 자연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걸작 중 하나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예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허파, 광합성이었다.

스트라스부르에 머물고 싶다는 욕망

저자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클레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 도시에 정착할 결심을 한다. 여기서 성적이 가장 좋은 과목은 수학이었고, 가장 재미있는 과목도 수학이었다. 반면에 준비 과정에서 배우는 화학은 그 분야에 대한 흥미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화학은 여전히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연구나 산업 분야에서 자연의 내면을 파고드는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 저자의 소망과 달리 선생님들은 야망이 없다며 실망했다. 물리학이나 수학을 할 수 있는데 굳이 화학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리-화학 선생님조차 말렸지만, 저자는 끝내 물리-화학 과정을 선택해 2학년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개인적 기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드시 스트라스부르에 머물고 싶다는 욕망.”

마침내 스트라스부르 화학대학에 입학했다. 여기서 당시는 물론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26세의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장마리 렌 교수를 만났다. 198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고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렌은 저자가 3학년을 마치고 화학공학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한 연구 과정과 노벨 화학상이라는 보상

1971년 크립테이트에 관한 논문이 심사를 통과한 뒤 저자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했고, 1972년 말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에 합류해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전임 연구원이 되었으며, 그 후 옥스퍼드 대학의 말콤 그린(Malcolm Green) 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장마리 렌의 연구실에 다시 합류했다. 렌은 저자의 박사 논문 주제인 ‘크립테이트’가 아닌 ‘태양 광화학’ 분야를 연구해보자고 제안했다. 1차 석유 파동 때였고, 따라서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지속 가능한 대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물의 광분해라는 위업을 실험실에서 재현한다면, 탄화수소의 해방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깨끗하고 청정한 에너지 개발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었다. 이것이 저자가 기어이 금고를 열어 알아내야 할 비밀이었다.

1983년 4∼5개월간의 치열한 작업 끝에 두 개의 연결 고리를 합성했고, 흰색 결정 형태의 첫 번째 샘플을 몇 밀리그램 만들었다. 이른바 ‘카테네인〔caténane, 분자의 얽힘을 가리키는 말로 ‘사슬’을 의미하는 라틴어 ‘카테나(catena)’에서 유래했다〕’이다. 화학계에 큰 파장을 낳았다. 1994년에는 양전하 또는 전자를 주입하여 전위(electric potential)를 가함으로써 회전 운동을 할 수 있는 카테네인을 만들어냈다. 이 회전 카테네인은 “분자 기계”라는 또 다른 분야를 열었다.

분자 기계는 신호의 작용에 따라 제어되어 움직일 수 있는 화학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이다. 2000년대 들어서 분자 기계 분야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분자 구조와 자극에 의한 운동의 속성은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이 놀라운 발전은 분자 기계의 현실을 공상과학 소설의 환상에 가깝게 만들었고, 이제는 ‘나노 로봇’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었다.

복잡한 화학 구조를 만들기까지 수년간의 노력, 실패로 돌아간 시도, 그리고 검토가 필요했다. 저자는 노력 끝에 새롭고 흥미로운 특성을 가진 분자 물체가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야심 찬 도전에 나서곤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하지만 저자는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그 결과물이 어떻게 응용될지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연구자의 능력 밖에 있다고 말한다. 기초 연구 그 자체로 충분히 고귀하며, 기초 연구의 주요 목표는 우리 주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화학 반응은 나노 로봇으로 제어하거나 모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면역 반격, 항체 생산, 맞춤형 호르몬, 손상된 세포나 장기의 복구, 유전자의 이상 교정 …… 여기에 합성 분자 근육을 이용한 인공 조직 생산 덕분에 자연보다 더 실제 같은 인공 보철물까지.

2016년 10월 5일, 저자는 프레이저 스토더트, 베르나르트 페링하와 함께 노벨 화학상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화학과 화학 산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에는 ‘화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기피제 느낌을 준다. 탄화수소 연소로 인한 지구 온난화, 비료나 살충제로 인한 질병의 발병, 바다·공기·강 및 자연 전반의 오염 등은 모두 두려움을 선동하는 붉은 깃발이자 온갖 질병의 원인이다. 종종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적 현실에 무지하고 때로 의심스러운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비난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치명적 비극으로 이어져 비난받아 마땅한 과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2001년 툴루즈의 AZF 공장 사고(특정 비료 성분에 사용되는 질산암모늄 폭발로 31명 사망)에서 2004년 인도의 보팔 사고(살충제 합성 중간체인 아이소사이안화메틸 누출 사고로 7500명에서 2만 명 사망 추정), 2020년 8월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비극(수백 톤의 질산암모늄 유출로 220명 사망)에 이르기까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비극적인 뉴스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잘못은 무능하거나 악의적인 몇몇 사람의 부주의일 뿐 어떤 경우에도 분자 그 자체의 잘못은 아니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익사 사고에 대해 H2O를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화학과 화학 산업은 다르다. 이미지는 주기율표다. 이미지=픽사베이

기후 변화 문제에서 중요한 것

어떤 주제에서든 과학을 신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과학자의 역할을 “자명하지 않은 것을 지식으로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료로 충분히 입증된 현재의 기후 변화는 부인할 수 없으며 기후 변화의 발생 속도에 대한 우려 역시 공유하지만, 석기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극단적 비관론에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과학적 사실은 실험으로 검증된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예측은 시간이 지나야만 입증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점에서 예측은 겸손해야 한다. 저자는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인 마르크 퐁트카브(Marc Fontecave)의 입을 빌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비극적 시나리오를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CO2 양만으로 조정하려는 것은 다소 단순화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구를 급격하게 탈탄소화해야 한다는 일부 종말론자가 수없이 반복해온 주장은 화학자라면 누구나 펄쩍 뛸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이산화탄소는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고, 따라서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얻을 수 없다. 자연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또 다량으로 흡수하는 것은 바다다. 따라서 문제는 이 중요한 기체를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이 기체의 양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류의 실질적인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래야만 세계 경제의 여러 부문과 그에 따른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불필요하게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 행동을 조정하고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과학자 인생의 비결: 성공을 위한 탐구는 무엇보다도 성숙을 위한 탐구다

첫 번째 요소는 신뢰다. 그다음이 과학, 즉 우리 삶을 개선하는 과학의 능력에 대한 신뢰다.

두 번째 요소는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실행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토요일 아침의 독서와 과학적 사색을 루틴으로 삼았다. 세렌디피티는 우연의 산물이나 번뜩이는 천재성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방황을 허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두 가지 전제 조건은 세 번째 전제 조건인 독창성을 가능하게 한다. 분자 위상학 같은 미개척 분야나 물의 광분해 같은 전설적인 분야를 개척하는 동안 화학계의 거장들은 저자를 난해한 화학자로 평가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순응은 선한 자의 동맹일 뿐, 위대한 자의 동맹은 아니다. 저자는 오직 도전의 즐거움과 과학적 인정만이 자신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고 고백한다.

네 번째 비결은 개인적 만개다. 저자는 업무로 인해 가정생활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45년의 직장 생활 동안 거의 매일 아내와 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 의식은 거의 깨진 적이 없었다. “나는 긴 휴가의 전통을 희생한 적이 없으며, 아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축복을 누렸다. 굳이 내가 선택해야 한다면, 이 아름다운 기쁨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노벨상도 포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가는 두 가지 요소는 야망과 겸손이다. 목표에 대한 야망.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모험을 떠나거나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성역을 공격하고 싶은 야망. 야망은 성과를 내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면 교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할 때뿐만 아니라 실패할 때도 겸손을 유지해야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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