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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접근 불가’ 학문이 되지 않도록
대중에게 ‘접근 불가’ 학문이 되지 않도록
  • 정구현
  • 승인 2023.07.10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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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구현 경상국립대 한국사회과학(SSK) 연구단 전임연구원
정구현 경상국립대 한국사회과학(SSK) 연구단 전임연구원

주류 흐름에서 빗겨나 있는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서로 다른 내용의 두 가지 비판을 종종 듣곤 한다. 하나는 경제학 연구자로서의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인데, 경제학이 수학적 모형과 통계학적 방법만을 현상 분석의 도구로 인정하면서 다른 유형의 사유 방식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정통 경제학 연구자인 나에게 오는 의심으로, 오늘날 학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화된 비주류 경제학이 심하게 말하면 경제학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측에서 다가오는 이 두 비판은 물론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오래전부터 전자는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이야기되어왔다. 후자는 다른 흐름의 경제학에 폐쇄적인 주류 경제학 연구자들이 내심 갖는 생각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원)에서 경제학사 강의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런 생각의 결과이자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정치경제학자 벤 파인은 경제학이 자신의 전제와 방법으로 다른 사회과학 분야를 종속시키는 지적 흐름에 있어서 합리적 개인, 효용 극대화, 균형과 같은 몇 가지 개념이 핵심적이라고 지적한다(이 견해에 따르면 수학적 모형화나 통계학적 방법론의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개인이 희소한 자원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용 가능한 정보 및 잠재적 이익과 비용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이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하며 개인 선택의 총합의 결과는 외부 요소의 변동이 없다면 그대로 유지된다는, 특정한 이론적 가정과 연결돼 있다.

얼핏 생각하면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진술은 주지하다시피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현실 속의 인간은 일정 수준에서는 합리적이지만 그 선을 넘어가면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있겠고, 보다 최근의 논의로는 희소성 개념에 대한 도전적 시각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인간의 의사결정 경로에 관한 특정한 가정은 이론의 전개를 위한 도구로서 요구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구성을 인간의 본질로 전도해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있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 인간형’이라는 가정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다름 아닌 개별적 주체가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결정한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가 놓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학을 재화 및 용역의 생산, 유통, 분배에 관하여 논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한다면, 특정한 방법론을 유일신으로 섬길 필요도, 이 방법론에 따르지 않는 여러 갈래의 경제학을 도태된 사이비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 자본·노동·토지라는 사물을 적절히 조합하면 이익이 발생한다는 극단적으로 속류적인 시각에 대해, 고전파 경제학을 완결하면서 동시에 비판했던 마르크스는 역사 유물론과 물신성 비판이라는 개념 등을 이용해 적절하고 타당한 반론 관점을 제시했다.

특정한 결제적 과정의 이면에는 소유자와 생산자가 맺는 사적 관계가 있고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으로 특수하기에,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역사성과 사회적 성격을 두루 살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 역시 역사적·사회적 제한 내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각을 존중한다면, 경제학은 내부의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고 역사학과 철학, 기타 사회과학과 교류하며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

요컨대 나는 학문후속세대의 한 명으로, 나와 같은 세대에 속한 경제학 연구자들에게 다음을 고민하자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이 자신의 특정한 가정으로 사회과학 세계를 자신의 제국 식민지로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반성하고, 경제학을 가정과 방법의 다양성과 그 각각의 한계를 겸허히 인지하는 사회과학 세계의 시민권자 중 하나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자. 또 제국의 피지배자인 다수의 경제학이 학계 내의 편견과 무시 속에서 그 유효성을 잃고 이론의 최종적 수혜자가 돼야 할 대중에게 접근 불가의 학문이 되지 않도록 대학에 요구하고 또 연구하자.

정구현 경상국립대 한국사회과학(SSK) 연구단 전임연구원
경상국립대 대학원 정치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순환론과 한국의 자본순환 양상을 경험적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경상국립대 한국사회과학(SSK) 연구단 전임연구원으로 있으며, 정치경제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마르크스 경제지표를 측정 및 분석하고, 그 함의를 읽어내는 데에 관심이 있다. 논문 「한국의 소득 불평등의 계급적 분석」, 「Trends of Marxian Ratios in South Korea, 1980-2014」, 「한국자본주의의 재생산표식, 1960-2014년」, 저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적 접근』(2023)을 함께 썼으며, 역서 『마르크스의 부활: 핵심 개념과 새로운 해석』(2022), 『마르크스의 주변부 연구: 민족주의, 종족, 비서구사회』(2020)를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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