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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계간) : 여름 [2023] 143호
역사비평 (계간) : 여름 [2023] 143호
  • 김재호
  • 승인 2023.06.13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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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편집 | 역사비평사 | 336쪽

탈냉전 대 신냉전, 인권 대 지역안보의 충돌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지난 3월 6일 한국 정부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을 국내 재단을 통해 대신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통 큰’ 결단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과 미국에서 환대를 받았지만, 그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과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며 역사 정의를 거스르는 행태에 특히 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배경에 중국 견제에 힘을 쏟고 있는 미국의 한-미-일 동맹 강화 구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냉전적 구도의 부활은 1965년을 연상시킨다. ‘굴욕’ 외교라는 비판과 격렬한 저항 속에서도 당시 한국 정부는 한일협정 체결을 강행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파병까지 겹쳐 그 어느 때보다 밀착한 한미관계를 바탕으로, 그해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 방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 다시 반복되고 있다.

역사의 퇴행을 바라보며 정병욱은 ‘시론’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그동안 제기했던 법적 소송의 과정을 설명하고, 그 결과로 나온 판결의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과거 냉전 시기에 체제 경쟁을 빌미로 봉인했던 피해자들의 입을, 한국과 일본 정부가 지금 다시 봉인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현 상황은 탈냉전 대 신냉전, 인권 대 지역안보의 충돌이며, 이는 한시적인 정권에게 맡겨둘 수 없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므로 실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권의 역사를 다시 본다
―인권레짐과 인권없음의 사이에서

이번호 특집은 그동안 축적되어온 인권 관련 연구의 기반 위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인권’ 개념, 실천, 운동의 다중적 성격에 좀 더 주목하였다. 이는 국민국가 중심의 기존 정치체제를 따라 쓰는 인권사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국제적 인권레짐(human rights regime)의 출현이 권리 밖에 놓인 존재들,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공준환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연합국에 의한 전범재판이 국제인권체제의 시작 지점이었지만, 전쟁범죄라는 틀 속에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같은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임경화는 냉전기 재일조선인의 고국 귀환 문제에서 재일조선인의 고국 귀환은 귀환권이나 이동권이라는 인권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이라는 정치 문제에 기인했다고 지적한다.

이봉규는 1960년대 경영관리 기술원조를 제공하고 인력개발을 강조하는 동시에 노동자 인권 표준을 설파하려 한 ILO의 통합 개발모델 전략이, 한국의 여러 주체들에게 ILO를 각기 다르게 전유하고 상상할 지반을 제공하였다고 지적한다.

끝으로 황인구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비판하고 저항한 활동가들이 초국적 인권 네트워크를 마련하고 국제앰네스티와 인권연대 운동을 추진해 나갔으며, 이 같은 인권의 확산은 국가와 비국가 세력의 다층적 수준의 긴장, 협력, 갈등 관계를 내포하는 초국가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탈산업 시대 산업유산의 역사화
―북한·중국·일본 산업유산의 과거, 현재, 미래

「탈산업 시대 산업유산의 역사화」 기획을 통해 2022년 겨울호에서 주로 서구의 사례를 다뤘다면, 이번 호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사례를 다룬 3편의 논문이 실렸다. 양지혜는 북한 수풍댐의 역사를 일제시기와 해방 전후, 한국전쟁 이후 전후복구기, 냉전 이후의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는 이제 수풍댐이 초장기적 전력난 속에서 노후 댐을 둘러싼 효율, 안전, 혁신, 파괴, 보존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다고 지적한다.

박철현은 체제전환의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공간으로서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중국공업박물관을 살폈다. 그는 중국공업박물관 같은 중국의 공업유산이 포스트사회주의 체제전환과 국유기업 개혁을 정당화하는 국가서사가 전개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박진한은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핵심 자산 가운데 하나인 야하타제철소를 소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산업유산에 대한 기억과 인식에 끼친 영향을 살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산업유산에 국가주의 내러티브를 덧씌운 반면, 지역주민은 기업 마쓰리를 통해 제철소에 얽힌 다양한 기억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
―능력주의적 주체화 양식

천정환은 한국 사회를 단 5년 만에 ‘촛불혁명’에서 ‘검찰독재’로 반전시키는 지배의 기제를 문화적 양식과 미학적 층위에서 찾고, 특히 라이프스타일, 외모, 패션, 취향 등의 계열체가 능력주의적 주체화 양식에 관련되는 양상을 살폈다.

그는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와 ‘공정’의 문제를 경과하는 주체화와 함께 중산층 문화정치를 넘어서는 다른 실천이 요청된다고 지적한다.

주윤정은 장애인, ‘비정상인’에 대한 능력 규정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폈다. 그는 비정상인으로 취급받아 능력주의의 외부에 존재했던 이들이 비공식 경제와 자신들의 메티스를 통해 생존의 틈새를 만들었음을 지적하며, 산업화-관료제 사회에서 중시된 테크네 중심의 능력과는 다른 다양한 능력의 숙련과 훈련, 메티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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