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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다시 문제는 자율성이다
[대학정론] 다시 문제는 자율성이다
  • 박영근 편집인
  • 승인 2006.09.01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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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네 대학들은 경쟁력과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선택과 집중의 자본논리를 앞세워서 원칙 없이 학문체계를 바꾸었고, 인기 없는 학과와 취업에 필요하지 않은 강의를 없앴다. 심지어 약발 없는 전공을 바꾸라며 교수들에게 도리질을 한다. 대학이 스스로 외부환경에 적응하며 자기모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해야 할 정부.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서 대학의 구조조정을 시장논리에 맞게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평가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대학은 ‘제2의 IMF’를 맞고 있다.

이미 대학은 고시-영어-컴퓨터 학원으로 된 지가 오래다. 영어만 잘해도 학생을 뽑겠다는 입시요강을 부끄럼 없이 내놓는 대학까지 있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만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총장조차 있다. 기초학문이 밥 먹여주냐며 물신주의에 빠진 총장들이 한둘이 아니다. 교육을 상품으로 여기고 학생을 소비자 운운하면서 시장논리를 줄곧 강조한다. 학문을 헤아려야 할 대학이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고 있다. 烹頭耳熟은커녕 상식마저 지켜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이웃 나라 총장의 고별강연이 9월의 국화향기처럼 신선하게 다가온다. “내가 6년간 힘 미치는 대로 가장 戒心하고 노력해 온 것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유였다. 이것이 확립되지 않았던 곳에, 혹은 이것이 위협받았던 곳에서 오늘날 일본의 비극이 일어났다고 해도 좋다. 어떤 시대에도 대학은 불변의 진리 탐구와 역사적 연구에 종사하는 동시에 항상 이 시대와 사회적 현실과 겨루어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비교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학의 자치 없이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과거의 괴로운 경험에 통해서 안다. 이제 우리들 대학인은 이러한 때일수록 학문의 자유를 사수하고, 진리는 진리로서 구명하고 주장하며, 거짓은 거짓이라고 물리쳐야 된다. 진리는 최후의 승리자다.”

난바라 동경대 총장의 고별사 내용이다. 송곳비판을 했던 그는 군벌정부의 눈엣가시였다. 그는 대학에서 쫓겨났다. 2차대전이 끝나자 그는 총장이 되어 대학다운 대학을 위해 온갖 힘을 쏟았다. 이 고별사를 21세기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떨떠름해 하는 총장들이 있을지 모른다.

뿐만이 아니다. “최선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직업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도는 예술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하며, 예술학도 역시 과학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던 닐 루딘스타인의 말은 우리 쪽에서 맥을 못 춘다.
바깥쪽 대학들이 경영논리를 껴안으면서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까닭은 아카데미즘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 때문이다. 우리 대학에서 지성은 발붙일 곳이 없고, 어설픈 기능과 천박한 지식이 깨춤을 춘다. 자유, 낭만, 패기, 연대와 비판의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 대학의 어르신들이 창의력과 문화감각이 뛰어나고, 세계의 흐름과 우리의 문제를 접목시킬 수 있는 균형감각을 지닌 인재를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갈무리하고, 교육부와 재단으로부터 대학의 자율권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박영근 / 편집인·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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