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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뮤지컬 드라마로 만나다...서울 공연 성황리 막내려
라흐마니노프, 뮤지컬 드라마로 만나다...서울 공연 성황리 막내려
  • 김재호
  • 승인 2023.04.24 0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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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 공연 성황리에 막 내려
포항(4월 28일부터 이틀간)·부산(5월 5일부터 사흘간)에서도 공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서울 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은둔생활을 하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치료하기 위해 분투하는 정신의학자 니콜리아 달 박사의 헌신·우정은 아픔을 드러내고 승화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주최했다. 기자가 관람한 회차에는 배우 박유덕(라흐마니노프), 유성재(니콜라이 달) 씨가 열연했다. 드라마 형식을 갖춘 뮤지컬은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서거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포항·부산으로 이어진다.

천재음악가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위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실제로 라디오 설문조사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교향곡 9번 황제’·‘교향곡 5번 운명’ 등이 뒤를 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영화 「샤인」(1997), 「혈의 누」(2005),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등 여러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샤인」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쳤으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데이빗 헬프갓이라는 실화를 다뤘다. 「혈의 누」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OST ‘절망가’로 삽입해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는 주인공 예샹룬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만큼 라흐마니노프는 평단과 대중에서 인정 받은 음악가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작품에서도 자주 인용, 연주된다. 

 

혹독한 훈련 거쳐 모스크바 음악원 최고상 수상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지도교수였던 즈베레프 교수에게 사사하며 혹독한 훈련도 거쳐야 했다. 결국 음악원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하지만 그후 발표한 교향곡 교향곡 1번에 대한 혹평을 견딜 수 없었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결심한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왜 음악(작곡)을 하는가?’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심연의 트라우마는 정신의학 박사 니콜리아 달의 헌신에 의해 가까스로 표출된다. 

라흐마니노프가 음악을 만드는 이유는 여전히 들리는 ‘누나의 기침소리’ 때문이었다. 누나는 아파서 병원에 가야 했지만, 자신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병원비를 대지 못하던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음악원에 내야 하는 돈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술·도박에 빠졌던 아버지가 이미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기침하던 누나는 동생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음악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사진=위키백과

소설가 이승우는 “글쓰기의 기원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프다’이다”라며 “이 아픔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해 있어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다”라고 적었다. 아픔은 제각각이기고 고유하며 유일해서다. “그런데 아픔은 표현할 수 없는데도 표현되고자 한다.” 이승우는 “표현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무조건적 무의지적으로 만들어낸 표현... 나에게는 소설쓰기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러나 표현되고자 하고 표현되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라고 고백했다.(『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은행나무, 2020)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의 기원은 어릴 적 아픔이었다. 여기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너무나 어려워 3년을 골방에 갇혀 있어야 했던 아픔마저 더해졌다. 지극히 사적인 아픔은 표현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그 열매를 우리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들으며, 아픔을 달래고 있다. 이 얼마나 가혹한 모순이자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일까.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한 니콜라이 달 박사 역시 자신의 스승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넘어서고자 하는 아픔이 있었다. 이승우는 그러한 표현은 음악가·소설가·아픈 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허공에 손을 내미는 동작이라고 묘사했다. 관객·독자는 허공의 손을 잡아줄 뿐이다.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우정이, 당신과 나의 소통이, 혹은 어떤 낯선 자의 친절이 아픔을 덮어준다. ‘절망가’로 들리던 피아노 선율은 어느새 ‘희망가’로 나아간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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