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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대전환 모색...‘창작과비평’ 200호 기념 심포지엄 열려
한국사회 대전환 모색...‘창작과비평’ 200호 기념 심포지엄 열려
  • 김재호
  • 승인 2023.04.16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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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유재건, 조효제, 백영경, 황정아 등 주제 발표
제2부 김용휘, 나희덕, 주병기 토론 이어

지난 14일,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이행 담론과 그 역량을 점검하는 심포지엄 “대전환의 한국사회, 과제와 전략: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사)세교연구소와 (주)창비의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계간 『창작과비평』의 200호(2023년 여름호 발간 예정)를 기념하여 열렸으며 발제자로 유재건·조효제·백영경·황정아, 토론자로 김용휘·나희덕·주병기가 참여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변화와 새로운 문명창조의 가능성을 맑스주의, 기후위기와 생태전환, 커먼즈와 돌봄,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두루 논하는 가운데 공통적으로 예측된 것은 자본주의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이 점차 확실해지고 있지만 다른 체제로의 이행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대전환의 한국사회, 과제와 전략: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서 이남주 『창작과비평』 주간이 사회를 맡았다. 사진=창비

 

참여자들은 그 이행을 단기에 성취해야 할 것으로 간주할 때 오히려 ‘자본주의를 넘어선 다른 대안은 없다’는 파국적 믿음이 강화되며, 자본주의와 기후위기와 돌봄 등이 모두 한데 얽혀 있는 관계라는 점이 간과되고 실천적 의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행의 과정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국가권력의 민주화, 공유와 연대의 복원, 그리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충실히 해나가려는 노력 등을 저마다 감당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먼저, 백영서(세교연구소 이사장)는 인사말을 통해 『창작과비평』 200호를 축하하며, 『창작과비평』이 절박한 정세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은 물론 ‘문명전환’이라는 큰 틀의 논의를 지속적으로 펼쳐왔음을 되짚었다. 예컨대 『창작과비평』 100호(1998년 여름호) 특집은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전환’이었으며, 창간 30주년이었던 1996년의 여름호(통권 92호) 역시 ‘새로운 전지구적 문명을 향하여’였을 만큼 ‘문명전환’은 『창작과비평』의 중요한 화두였다. 다만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세계사적인 탈냉전과 한국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낙관적 정세에 크게 고무되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세계정세와 국내 상황 모두 엄혹하며, 1주년을 앞에 둔 윤석열정권에 대한 절망과 분노의 여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국내외 복합위기의 국면에서 다시금 문명전환을 논하면서는 무엇보다 ‘개벽’과 같은 한국의 사상자원과 변혁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자본주의 근대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극복하는 이중의 단일 과제를 수행하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기개 있는 청년 독자들의 참여가 『창작과비평』이 200호까지 이어져오는 하나의 원동력이었음을 짚으며, 현장 및 온라인으로 참여한 여러 학자와 청년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대전환과 자본주의: 맑스와 월러스틴을 다시 봄

1부는 유재건(부산대 명예교수)의 발제로 시작했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식인자본주의’ ‘신봉건주의’ 등 다양한 용어의 현실진단에서 드러나듯 오늘날 자본주의가 퇴행적 상황과 말기적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본주의의 심화 속에서 맑스의 『자본론』, 특히 ‘이른바 본원적 축적’이라는 제목의 글이 재조명되고 있는바, 유재건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 논한 맑스와 월러스틴을 비교하면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문명사적 대전환을 어떻게 모색하고 상상해야 할지 실마리를 풀었다. 특히 맑스가 일생동안 ‘평등’이라는 구호를 내걸지 않았고 개인보다 사회의 우위를 상정한 평등주의적 공산주의 비전을 비판했으며, 오히려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일’을 강조했다고 밝힌 점이 눈에 띈다. 개인들이 자연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맺는 경험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존중받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토지 및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와 사회적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 유재건의 시각은 오늘날 공유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이끄는 커먼즈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이어서 유재건은 맑스와 100년의 시차를 둔 학자이자 소위 ‘지구화’라는 허상 아래 세계적 차원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주목해 세계체제론을 제시한 월러스틴의 이론을 점검하고, 다시 ‘계급’의 문제를 물었다. 최상층 1%와 중간계급 19%가 잉여가치를 점유하는 ‘1:19:80’의 자본주의 계급구조 속에서 오늘날 이 19%의 중간계급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투쟁이 우파와 좌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새로운 ‘계급투쟁’을 두고 어떤 실천이 가능할지를 깊이 궁구해야 함을 주문했다. 

 

사회생태 전환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조효제(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윤석열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이 생태보다는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자 재생에너지보다 원전 확대를 추구하는 계획으로서 “영혼 없는 탄소중립”이라고 비판하면서 시작했다. 그는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사회생태 전환을 마치 시한부 행동처럼 오해하게 만든 측면을 지적했다. 그러한 목표가 오히려 환경 문제에 대한 시장주의적 해법을 맹신하게 만들고 기술혁신, 저탄소 경제, 녹색성장 같은 생태적 현대화만을 대안으로 믿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를 ‘실존적 위기’라고 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만사 제쳐놓고 해결에 전념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보이듯 성차별, 노동, 농업, 저출생과 인구감소, 지역격차 등 여러 다른 과제들을 함께 감당할 때에만 기후위기를 극복할 힘도 나온다. 

그 이행기의 과제를 실천하는 데 있어 조효제는 특히 근대의 기계론적·선형적 인과론으로는 사회계와 생태계의 상호의존적 관계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행기에는 위로부터의 정책 입안 같은 선형적 노력과 아래로부터의 개인적 실천이나 정치행동 같은 비선형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민주진보진영 내에서도 여전히 선형적 사고방식이 만연한바, 새로운 진보의 길은 한국식 ‘성공’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사회생태계의 회복력 유지와 정의실현을 추구해야 할 것임을 역설했다. 

 

전환의 지향으로서의 돌봄: 커먼즈와 최일선 공동체 사이에서

문화인류학자 백영경(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은 지금 시대 가장 긴급한 의제이자 코로나19 이후 더욱 주목받게 된 돌봄이 사회전환의 지향점으로서 공유되기 위한 추가적 사유를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돌봄중심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돌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차원이 아니다. 가령 일각에서 제기하는 ‘돌봄소득’ 역시 국가가 돌봄노동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돌봄수당’에 그쳐서는 안 되며, 돌봄의 성별 쏠림 현상을 개선하고 돌봄의 책임과 권리를 민주적으로 재배분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노동시간 단축’ 같은 정책적 의제와도 연결되는바, 백영경은 돌봄 문제가 ‘경제성장 없는 그린뉴딜’ ‘보편적 기본소득’ ‘커먼즈의 회복’ ‘노동시간 단축’ ‘공공금융정책 도입’ 등을 주장하는 탈성장론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더욱이 오늘날 돌봄노동은 남성이 여성에게, 글로벌 북반구가 남반구에 떠맡기고 있는 실정이며 한국 역시 돌봄의 큰 부분을 이주자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백영경은 이러한 ‘제국적 삶의 방식’을 경계하며 돌봄 문제가 탈성장론과 연결되어 글로벌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백영경은 돌봄의 현장에서 나와 내가 속한 사회를 돌보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모두 자본주의체제 위기 앞 ‘최일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식의 확보를 촉구했다. 

 

‘대안’서사와 ‘이행’서사

문학평론가 황정아(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 역시 자본주의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며 이제 말기 국면에 이르렀다는 진단에 동의하며, 한국문학 안에서 자본주의 서사가 어떤 양상으로 발현되는지를 분석했다. 최근 게임이나 드라마 서사에서는 물론 문학 서사 안에서도 ‘죽음 충동’ 혹은 ‘미래의 상실’이 초점이 되어왔다. 이에 대해 황정아는 선형적‧발전적인 자본주의 근대서사의 시간성이 개연성을 잃어가는 가운데 여러 문화콘텐츠들이 지속 불가능성 그 자체를 서사화하고 ‘대안은 없다’라는 명제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비관을 넘어선 이행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전하며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살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가 추구하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는 곧잘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그런데 황정아는 그 유머가 독자로 하여금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바탕이 될 뿐 아니라, 자본주의 현실과 사회주의 신념이 만들어내는 긴장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급진성’을 풍부하게 드러내어준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생활을 돌보고 일상을 이어가는 것과 신념을 품고 사상을 실천하는 것을 동시에 실현해나간 소설 속 ‘아버지’의 삶을 ‘적응’과 ‘극복’이라는 ‘두 짐 지기’의 삶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근대의 이중과제’론을 통해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지닌 이행서사로서의 의미를 섬세히 짚은 황정아는 한국문학이 견지해야 할 태도 역시 그와 같다고 역설했다. 대안이 없다는 믿음 아래 터무니없는 상상이나 세상의 종말을 그릴 것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을 복원함으로써 서사의 역량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것이 곧 ‘리얼리즘’이라는 주장이다. 

이어진 2부 토론에서 김용휘(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국가와 시장과 민이 균형을 이루는 모델, 지역의 민이 중심이 되는 경제, 그리고 그러한 경제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컨대 ‘민본경제’와 직접민주주의의 확충이 더욱 긴요해졌다는 것이다. 김용휘는 그와 관련해 지난 정권에서 ‘주민자치기본법’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발의되었지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일을 아쉽게 평가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나아가 돌봄 논의에 관해서는 ‘돌봄’(care)이라는 용어가 돌봄을 받는 자와 행하는 자를 수직적으로 나누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물으며, ‘모심’과 ‘살림’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주병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무엇보다 ‘새로운 가치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중적‧복합적인 현실세계를 고려하건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단선적이며 성장지상주의적인 가치체계에는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으로 대체되고, 자연의 영역이 사유화되어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되는 일 등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까닭 역시 시장 경제활동의 가치만을 평가하는 GDP의 단선적 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단선적 가치체계는 ‘리스크의 분산’이라는 자본주의 자신의 경제논리와 스스로 배치될뿐더러,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앞에서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정한 시장규제의 확립, 민주주의의 성숙, 생태적 가치와 비시장적 경제영역을 포괄하는 새로운 가치법이 창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희덕(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은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보여주는 핍진성 및 ‘지역’이라는 공간을 되살린 미덕을 평한 황정아의 발제에 동의하는 가운데 한발 더 나아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자연 및 비인간과의 관계에도 좀더 천착하는 작품도 고대한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비인간과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SF 장르가 가진 가능성도 더 긍정적으로 살펴줄 것을 주문했다. 

 

나희덕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창비

 

자본주의 이행과정에서 필요한 ‘창발성’과 ‘비선형적 사고’

청중석에서도 자본주의체제가 영원할 수 없고 어느 순간에는 바뀔 것이며, 그 이행의 과정을 잘 감당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었다. 그리고 정치창(독문학자, 전 민예총 이사장)은 이행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에 초점을 맞추어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이 좀더 강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안되기도 했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은 조효제의 발제에서 이행기에는 비선형적인 개인적인 실천 노력뿐 아니라 정책 수립 등 선형적 노력까지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된 점을 특히 주목했다. 또한 백낙청은 토론과정 중 ‘1:19:80’의 분석틀이 여전히 유효한가, 19퍼센트의 중간계급은 소멸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제기된 것에 대해 이러한 분석틀이 오히려 1퍼센트의 독점이 19퍼센트의 중간계급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핵심적으로 드러낸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한편 자본주의 이행과정에서 필요한 ‘창발성’과 ‘비선형적 사고’에 대해서는 한국의 사상적 자원인 동학사상 등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는 의견도 공감을 얻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좀더 폭넓게 논의된바, 생태시를 비롯한 생태문학이 활발해지고 있는 와중에도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는 문학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의 발제문은 개고를 거쳐 6월 출간될 계간 『창작과비평』 200호(2023년 여름호) 논단란에 실릴 예정이다. 1966년 첫호를 간행한 『창작과비평』은 1970~80년대 판매금지 처분, 강제 폐간, 출판사 등록취소 등의 어려움으로 결호가 생기면서 창간 57년째인 2023년에 통권 200호를 맞이했다. 문학적·사상적 자유가 억압되던 독재정권 시기 청년 지성의 집결지이자 창조적 논의의 산실이었던 『창작과비평』은 오늘날에도 문학과 인문‧사회과학을 결합한 종합지 구성을 이어오며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200호 특별호는 ‘미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꾸린다. 특집은 언론, 정치, IT기술, 플랫폼노동, 장애인권, 농촌 및 지역운동, 평화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주요 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25년 뒤 한국사회’의 모습을 전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짚어본다. 창작란 역시 ‘미래’를 주제로 하는 시‧소설선으로 꾸려 특별호의 의미를 더한다는 기획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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