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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어떻게 불평등 낳는 과학이 됐나
심리학, 어떻게 불평등 낳는 과학이 됐나
  • 박형신
  • 승인 2023.04.14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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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근대 영혼 구원하기: 치료요법, 감정, 그리고 자기계발 문화』 에바 일루즈 지음 | 박형신·정수남 옮김 | 한울아카데미 | 384쪽

감정조차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현대 사회
치료요법 모순 짚는 ‘감정 자본주의’ 완결본

에바 일루즈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 사회학과 교수의 책 대부분에는 멋진 은유적 제목이 붙어 있다. 이를테면 『감정 자본주의』의 원제는 『차가운 친밀성: 감정 자본주의의 형성』이다. 하지만 ‘근대 영혼 구원하기’라는 말의 의미와 부제 간 연결고리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캘리포니아대 출판부의 소개 글에는 “이 책은 치료요법 담론이 우리의 삶과 현대 정체성 관념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탐구한다”라고 쓰여 있다. 또한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도 에바 일루즈가 이 책에서 “우리 세대에게 지금까지 적용된 치료요법적 개인주의를 가장 완전하고 명확하게 설명”한다고 추천사에 썼다. 이 글들만 놓고 추론하면, 이 책을 단순히 치료요법 문화를 비판적으로 다룬 사회학 책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가 의도한 것은 이를 훨씬 넘어선다.

 

이 책은 앞서 출간된 『감정 자본주의』의 완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감정 자본주의』는 이 책 『근대 영혼 구원하기』를 준비하던 시기에 했던 ‘아도르노 강의’를 소책자로 펴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 책은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고자 한 내용을 개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루즈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감정, 대중문화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정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나간다.

일루즈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정 자본주의’에 대해 “감정 담론과 경제 담론이 서로를 상호적으로 틀 짓고, 그리하여 감정이 경제적 행동의 본질적 측면이 되고, 또 감정생활이 경제적 관계 및 교환의 논리를 따르는” 형태의 현대 자본주의라고 이 책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감정 자본주의의 특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형성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일루즈는 자기계발 문화에 주목하고 그 밑에 깔린 치료요법 담론, 더 넓게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담론이 어떻게 미국의 기업, 결혼생활, 일상의 자기계발 관행에 스며들어 감정 자본주의를 형성하는지를 면밀하게 살핀다. 그는 감정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객관화·양화돼 자본주의의 관리(통제) 아래 놓이고 경제 논리로 편입되는 과정을 확인한다.

그가 볼 때, 심리학이 경제·생활세계에 침투해 참호를 구축하는 과정은 다름 아닌 ‘감정의 합리화’와 ‘경제적 행동의 감정화’ 과정이었고, 이것이 바로 감정 자본주의를 형성한 기본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이제 감정도 하나의 ‘자본’이 된다. 그리고 그렇기에 감정은 현대 사회에서 불평등의 한 기제가 된다.

그렇다면 일루즈는 왜 이 책에 ‘근대 영혼 구원하기’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심리학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치료요법이 근대 세계의 곳곳에 침투해 이른바 ‘자기계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종교가 약화된 이후 심리학이 신정론(神正論)을 대신해 근대 영혼들이 맞닥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영혼의 고통을 상처받거나 잘못 관리된 정신의 결과로 만들었고, 종교를 대신해 이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치료요법적 신념의 요체이며, 그것이 확산해 하나의 문화를 형성했다. 하지만 치료요법의 모순은 치료요법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고통과 곤경을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또한 일루즈는 자신의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제도적 실용주의’라는 독특한 입장을 취한다. 제도적 실용주의는 저자의 표현으로 “문화구조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그 문화구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또 그 문화구조들이 다시 일상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동시에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제도적 실용주의는 그의 다른 저작에서 나타나는 사회구성주의적 입장과는 대비되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문화사회학에 또 하나의 독창적인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이유이다. 이 책에서 단지 ‘사랑의 사회학자’가 아니라 ‘문화적 사회학자’로서의 일루즈의 면모와 역량과 마주하는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형신
고려대 강사·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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