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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사회학대회를 다녀와서
전주 사회학대회를 다녀와서
  •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 승인 2006.08.17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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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한국사회: 한국사회학,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에 열린 전기 사회학대회에서 나는 사회학회가 나름대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사회학계가 오래 전부터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는데도 무력하게 방관하거나 위기를 심화시키는 대안들을 내놓았던 이제까지의 사회학회와는 다르게 보였다. 전기사회학회의 주제가 <변화하는 한국사회: 한국사회학, 무엇을 할 것인가>로 내걸어졌고, 한국사회학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특별분과가 마련되었으며, 분과 혹은 유관학회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도 자못 획기적이었다. 논의의 결과와 의미있는 실행은 차치하고 그 첫걸음이 보기에는 좋았다. 어쩌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발전전망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학대회의 운영방식과 관련하여 내 나름의 생각을 개진하고 싶다. 행간에 드러나는 검증되지 않은 개인소견은 무시해주기 바란다.

가끔은 사회학회 회원들이 모두 모여 학문적이고 정서적이고 현실적인 대화와 토론,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학대회를 상상해본다. 모두 모일 수는 없지만 절반 이하인 500명 정도라도 모이는 게 어떨까? 1년에 두 차례나 학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지는 사회학대회는 업적주의에 쫓기어 설익은 글을 양산해내야 하는 현재의 연구시스템을 떠받치고 서울과 지방간의 차별과 격리를 무마하기 위한 미봉책으로는 적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반쪽 대회는 여러 모로 어설프기 짝이 없다. 1년에 한번 방학 기간 중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여는 것은 어떠한가? 지난 1년간의 지적 성취를 들고 와서 그야말로 동학들에게 천천히 꼼꼼하게 검증받는 기회는 좋지 않은가? 100편 정도의 논문이 발표되고 발표자와 토론자 외에 몇 명이 더 앉아 있는 자리에서 끝나기가 바쁘게 자리를 뜨는 그러한 사회학대회는 더 이상 치르지 말았으면 한다.

다음으로 사회학대회의 모든 자리들에서 논의를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사회학은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앞서지만 적은 연구자 풀로 인해 연구를 심화시키지도 못하고 다른 분과학문으로 넘겨주는 주제들이 적지 않았다. 3-4명의 연구자들이 매우 유관성이 높은 주제들을 발표하고 그 분야의 학문적 원로들이 각각의 발표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가능한 수준의 종합적 대안을 제기하는 토론장은 바람직하지 않은가? 개인과 해당 분과의 학문적 성숙이 동시에 진전되는 그러한 세션 구성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어디에서 보았던가? 이미 은퇴한 백발의 노교수가 플로어에서 토론을 하고 발표자와 지정토론자가 존경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는 그런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는가?

나아가서 사회학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미래를 모색하는 원로들의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원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우리 내부에서 사회학계를 이끌어가는 지향점과 모든 사회학도들이 대면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김경동 명예교수의 강연이 그러한 허기를 채워주는 자리였기를 기대한다. 사회학의 미래비전을 보여준다고 보기 어려운 몇몇 주제들의 인기에 편승하는 자리들은 결코 흐뭇해 보이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연구경향에서 벗어나 넓고 먼 시야를 보여주는 원로들의 자각이 더 소중해 보인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의 시행착오를 정정해 줄 원로들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회학대회처럼 사회학회가 지속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분야를 활성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회학은 인적 자원도 적지만 선택과 집중의 노력조차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분산되고 국외 유학을 통하여 더 넓게 분산되는 현재의 재생산구조하에서는 사회학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사회학의 위기는 '돈이 안 되는 기초과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일 수 있고 '학생들을 감싸 안는 따뜻함이 식어버린 분과'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단 사회학은 적어도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정도의 정체성이라도 보여주어야 하고 그 가운데에는 우리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영역들이 두루 존재해야 한다. 하나의 분과로서 정치학, 경제학이나 다른 사회과학들과 공동의 토론장을 만들 수 있도록 논의의 재생산구조를 만들어내는 노력을 사회학회가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지적하는 점들은 이미 시도되었을 수도 있고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거두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다시 느끼는 현 상황은 문제 자체가 해소되지 않고 여전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절대절명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면 몇몇의 지엽적인 문제들과 수단들을 먼저 챙겨볼 만하다.

[출처: 한국사회학회 뉴스레터 200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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