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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물음 
사랑이라는 물음 
  • 손유나
  • 승인 2023.04.03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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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손유나 원광대 철학과 박사 수료

우리의 삶에서 사랑은 매우 중요하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도 사랑은 빠지지 않았고, 매일 듣던 부모님의 잔소리에도 사랑이 담겨 있었다. 지금 여기 숨 쉬고 있는 나 역시 지난날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나누었던 사랑의 산물이다. 그 남자와 여자는 과거에 자신이 깊이 빠져들었던 사랑의 상대가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서글퍼질 수도 있다. 주말이 되면 함께 시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중년 부부의 발걸음 역시 사랑을 지속하는 일이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우리는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느낀다. 

사랑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고통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삶 역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2년 전 여름에는 혁 씨를 만났다. 혁 씨는 시골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20년 가까이 커피를 연구해 온 전문가였다. 그는 젊어서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어 거동이 불편하지만, 수년간 병을 다스리며 삶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루는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않은 그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팔다리가 불편한데 종일 서서 원두를 로스팅하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반드시 힘든 것은 아니라고. 지금 여기서 커피를 하는 내 모습을 가장 사랑한다고.

그날 이후로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혁 씨의 사랑은 그가 가진 장애와 고통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사실 사랑이라는 문제는 나의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문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 철학과 수업에서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그 문제에 파고들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 주변에서는 대부분 나를 염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하가에서 인문학과 순수학문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들린 지도 오래였다. 그럴수록 더욱더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어렵지만 즐거운 물음들에 대해, 철학의 물음에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은 독자적 관점을 갖는 것이다. 스스로 제기한 문제의식을 나만의 관점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기쁨과 감격인 동시에 막막함과 책임감이 수반되는 일이다. 그동안 문학이나 영화, 예술에서 사랑은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어왔지만, 철학에서 사랑은 비교적 많이 논의되지 않았던 개념이다.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사랑의 아이러니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은 내가 그 본질을 어떻게 밝힌다는 말인가. 그러다 언젠가 책상 위에 붙여두었던 메모 하나가 보였다. “인간과 분리된 철학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하는 사람, 그의 근본 체험, 그의 행동, 그의 세계, 그의 일상생활 태도, 그를 통해 나타나는 힘들은 그의 사상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제외될 수 없는 것들이다.” 

갑자기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놓치지 말고 붙잡아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경험하는 것, 소통하는 사람들, 내가 호흡하는 세계, 삶의 상황들을 고요히 사색하고 궁리하는 데서 철학의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을.

인류가 최초로 사고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단어가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을 연구하는 도정에서 나는 철학자 니체를 길동무로 삼았다. 근대철학의 핵심을 꿰뚫는 그의 첨예한 발걸음을 따라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을 새롭게 번역해 보려고 한다. 니체는 극단적 사유를 통해 시대를 비판한 망치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것이 니체의 전부는 아니다. 그 자신이 사유의 실험실이었던 니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을 멈추지 않았고, 삶의 고통에 잠식당하지 않고 그것을 승화함으로써 극복해낼 때 비로소 삶의 의미가 나타난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니체가 사랑을 말했다고? 그렇다. 니체는 자신의 철학에서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하며 삶의 문제로 부각시키며, 필연적 운명과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우리 스스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라고 말했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온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어려워진 시대에 도리어 사랑을 비추려는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달군다. 가려져 있을수록 더욱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 것을 말하기 위해 계속해서 철학하고 싶다. 나에게 철학은 삶을 더욱 애열(愛悅)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희망이다.

손유나 원광대 철학과 박사 수료
원광대 철학과에서 「카뮈의 니체 해석: 카뮈의 ‘부조리’ 및 ‘반항’ 개념과 니체의 ‘운명애’ 사상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니체 철학에서 고통의 정신적 승화로서의 사랑 - 고통은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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