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 성균관대·심리학
마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탐구에서 등장한 인지과학이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 동안의 인지과학을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인지과학은 그동안 두 단계의 중요 패러다임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마음에 대한 컴퓨터 은유를 바탕으로 한 고전적 인지주의 또는 계산주의의 시기로, 인간 언어의 추상적 구조에 바탕하여, 심적 내용은 표상, 심적 과정은 계산으로 개념화하여 마음의 본질을 탐구한 시기였다. 둘째 시기는 이러한 고전적 인지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한 연결주의와 신경과학의 전개다. 이 시기에는 생물적 뇌의 추상적 구조(연결주의)와, 실제적 구조(신경과학)에 바탕하여 마음을 탐구하되, 언어의 통사적 구조에 바탕한 표상주의는 배격하고, 기호(상징) 이하 수준의 계산, 신경적 계산을 강조한 시기였다. 그러나 전통적 인지주의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격하시켜 뇌의 탐구를 소홀이 하였다. 심신동일론 관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연결주의나 현재의 신경과학도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두뇌=마음’의 개념 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지과학에서 제3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심신이원론이건, ‘두뇌=마음’의 심신동일론이건 현대 과학에서 지지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은 두뇌 내부의 작용만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두뇌, 신체, 그리고 세계가 연결된 집합체 상의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제임스, 듀이, 로티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과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대륙의 철학자들이 이미 제기한 것이었지만, 현대 인지과학에서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먼저 강하게 드러내준 사람들은 철학자들보다는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연구자들 그리고 발달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이었다.
▲로드니 브룩스 © |
그러나 인지과학 내의 경험과학에서의 이러한 논의나 연구 추세는, 철학이 개입하기 이전에는 데카르트적 틀에 대한 산발적 압력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 초, 현 시점에서 철학이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인지과학의 경험과학적 연구의 새 변화들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묶일 수 있는가 하는 개념적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이 아니며, 마음은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신체, 그리고 환경, 이 셋을 포함한 총체적인 집합체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여 인지과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자연과학적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철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틀을 이루어 내려는 이러한 작업은 마음의 문제를 협소한 주관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념화한 듀이 등의 고전적 실용주의철학자들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가 괴리되지 않은 세상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일상적 인지를 강조한 하이데거적 재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움직임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동역학체계’ 틀로의 변화를 주창하는 것을 본다면, 과거의 ‘계산의 언어’에서 ‘뇌의 언어’로, 그리고 이제 ‘동역학체계의 언어로’ 개념화하는 작업이 인지과학의 여러 분야에 앞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뇌, 신체, 환경의 총체로서 마음을 개념화 한 인지과학의 새 틀이 신경과학, 심리학 등에서 생산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려면, 앞으로도 자연과학으로서의 인지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연결하는 추가적 작업이 더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캐나다 퀸스대에서 ‘정보처리 깊이: 확산적 정보처리, 통합적 정보처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지심리학: 형성사, 개념적 기초, 조망’, ‘언어심리학’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