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3:45 (토)
“누님, 왜 이러세요”
“누님, 왜 이러세요”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7.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운찬 총장 인터뷰 후기

서울대총장실은 널찍했고 원형 탁자에는 난이 피어 향이 가득했다. 녹차를 마시며 나눈 두 시간의 대담은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정 총장이 재임 중 고민이 많았던 사건 중의 하나는 김민수 미대 교수 건이었다. 대학은 아직까지 도제적 요소가 강해 “미대 교수 40명이 같이 못 지내겠다고 하면 떠나는 게 맞다”는 게 정 총장의 솔직한 심정이다. 대학에서의 공동체 정서는 비판받을 요소도 있지만 나름의 도덕률로서 그 존재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대법원의 결정은 복직을 명령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법질서가 잘 안 지켜지는 나라에 살면서, 그래도 대법원의 결정 정도는 따라야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총장 되기 전 김민수 교수 복직촉구 서명을 ‘정 총장이 주동했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름이 도용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평교수 시절 경제학과의 후배 교수가 서명용지를 들고 찾아왔을 때 “경제과 교수가 미술학과 사정을 어떻게 안다고 서명해?”라고 말했던 그였기에 주동자로 둔갑해 언론에까지 오르내린 것은 황당한 일이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기획이사인 윤원철 교수(종교학)는 정 총장과 관련된 일화 하나를 묻자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성품”과 관련된 것을 하나 든다. 교수들이 민원을 들고 문을 많이 노크하는데 한 老 여교수의 부탁은 학교 전체 운영방침하고 전혀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정 총장이 “원칙은 이렇고 그건 안 된다”라고 한 게 아니라 “누님 왜 이러세요” 하며 이야기를 끌어갔다는 것이다. 이를 말하자 정 총장은 파안대소를 하며 친구 누나인 모 대학 학장 얘기라고 사실 확인을 해준다.

정 총장은 서울대 교수들이 소속 단과대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서로 상충하는 ‘민원들’에 둘러싸여 지냈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고 찾아오는 교수들에게 솔직히 얘기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습니다. 안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그렇게 알려주니 고맙다”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도와줄 만한 것은 많이 도와줬다는 이야기도 된다.

서울대의 ‘대학원중심대학’의 유래도 흘러나왔다. 1980년대 중반 한 서울대 교수가 교육부장관이 됐을 때 기획처장이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다른 국립대와 확실히 차별화해야 지원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급조해낸 게 바로 ‘대학원중심’이라는 것. 그 이후 서울대는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인터뷰의 주제가 교수들의 사회참여활동으로 옮겨졌다. 대선을 앞두고 대학사회가 술렁인다는 지적에 대해 1995년 스승인 조순 교수가 시장출마했을 당시의 경험을 들려줬다. 선거 직전 자원봉사단장을 잠깐 맡기도 한 그였지만 그 이후 전혀 시청출입을 하지 않았다. “교수를 그만두고 부시장이나 국장으로 일하면 모를까 가끔 가는 식으로는 바른 소리를 할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백그라운드를 알아야 ‘선생님 이렇게 하시죠’ 하지 그렇지 않고서는 노이즈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총장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준 네 권의 책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의 독서편력이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 ‘회심의 질문’이었으나 경제학 전공서적 4권이 답변으로 돌아와 김이 빠졌다. 하지만 다 듣고 났을 때는 역시 독특한 울림과 시사가 있었다.

“고2 때 읽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첫 번째 책입니다. 그 때 축약판으로 읽었습니다. 그 다음 2학년 때 조순 선생이 우리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셔서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다 읽었어요. 그 둘이 사상이 좀 다르잖습니까. 하나는 비교적 자유주의적이고, 하나는 필요할 땐 정부가 나서죠. 그걸 읽은 다음에 대학원 때는 케인스의 ‘화폐론’을 읽었어요. 이건 정말 굉장히 좋은 책이예요. 일반이론보다 이 책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또 하나가 조순 선생과 경제사상연구회에서 같이 읽은 아담 스미스의 ‘Theory of Moral Sentiments’입니다. 스미스가 국부론으로는 근대경제학의 기초를 놓았고, 자본주의의 기초는 도덕성정론으로 놓았죠. 그렇게 케인스 책 2권과 아담 스미스 책 2권이 저의 인생을 많이 좌우했다고 봅니다. 여러 번 읽었고요.”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