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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뉴욕의 地域繪畵 …만져지지 않는 ‘비극성’
60년대 뉴욕의 地域繪畵 …만져지지 않는 ‘비극성’
  • 김광우 미술평론가
  • 승인 2006.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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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_‘마크 로스코-숭고의 미학’ 展(리움미술관, 6.22~9.10)

▲지하철 환타지, 87.3×118.2cm, 캔버스에 유채, 1940, 워싱턴내셔널갤러리. ©

삼성미술관 Leeum의 ‘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 전시회에는 불과 27점이 소개되고 있지만, 로스코가 작품을 시작한 1930년대부터 자살한 1970년 이전까지 작품이 골고루 있어 그의 회화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그의 회화는 문학과 음악의 토대 위에 내면의 삶, 내면의 체험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느낌의 중량’에 관해 언급한 바 있고,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다른 중량을 갖고 있다는 식의 음악적 유추를 사용했으며, “회화는 체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체험이다”라고 말했다. 로스코의 숭고한 정신, 그의 한계, 천국과 지옥으로서의 형이상학적 고통이 그가 ‘비극적인’ 것으로 부르기를 선호한, 그리고 색의 전통적 기능들을 부정한 대형 캔버스들 속에 내재해 있다.

로스코의 숭고한 정신은 바넷 뉴먼의 테마문제 선택에서 영향 받았다. 뉴먼의 영향을 받아 1940~50년대에 캔버스를 두 개, 혹은 세 개의 직사각형으로 분할하고 강렬한 색채를 엷게 칠한 뒤 그 위에 좀 더 크기가 작고 윤곽선이 모호하고 고정돼있지 않은 불명료한 모서리를 지닌 직사각형의 색채 덩어리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름처럼 표류하는 이런 형태들은 점차 단순해졌고 분리된 색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좀 더 큰 직사각형으로 다듬어졌다. 색채는 내부의 빛으로 충만한 듯한 광휘를 지니는데, 그 효과의 대부분이 인접한 색조의 면들이 만나도록 돼있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민감한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이상은 1960년대 팝아트에 밀려 기력이 쇠잔해졌더라도 여전히 자랑할 만한 아메리칸 페인팅으로 추상표현주의가 받아들여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로스코의 창작을 십분 이해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리움미술관을 찾은 관람자에게 그런 느낌의 전이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추상과 같은 다의적인 회화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우울한 그의 생애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의 작품은 단순한 디자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오늘날엔 그런 색면을 책표지, 포스터, 선물포장지, 넥타이 등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비극적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작품이 1960년대 뉴요커에게만 통하는 지역회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로스코는 고대 비극적 신화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스킬로스로부터 니체, 그리고 니체에게 영향을 끼친 쇼펜하우어로, 또한 구약성서와 키르케고르,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체험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문화적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고대와 근대를 넘나드는 방대한 연구를 했다. 비극의 본질을 찾는 그의 독서는 분노의 감정을 내면에 키워온 그에게 철저한 소외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철저한 소외감이 광기와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충고를 그는 경청했어야 했다. 비극은 오로지 문학과 음악으로만 표현이 가능하다. 회화로 비극을 표현하겠다는 로스코의 발상은 무리일 수 있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무제, 180.4×106.7cm, 종이에 아크릴, 1969, 워싱턴내셔널갤러리. ©

로스코와 관련해서 언급할 점은 아메리카니즘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은 미제국의 로마가 돼가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일어났고 많은 분야에서 미국은 헤게모니를 확보했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클레먼트 그린버그의 아메리칸 페인팅 찬양은 아메리카니즘과 관련지어야 한다. 그린버그는 처음에는 추상표현주의, 나중에는 컬러필드를 우량의 아메리칸 페인팅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잭슨 폴록과 로스코를 대표주자로 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미술사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점은 ‘전체론적(all-over)’ 구성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부분들을 조화롭게 배치해 하나의 전체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모노크롬에 가까운 뉴먼, 로스코, 클리퍼드 스틸의 작품과 좀 더 표현적인 프란츠 클라인, 윌렘 드 쿠닝, 애돌프 고틀리브, 로버트 머더웰, 필립 거스턴의 추상화, 그리고 폴록의 ‘전체론적’ 구성 회화가 모두 이런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일정한 체계가 없는 회화 공간이란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는데,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체론적’ 구성 회화이기 때문이다. 

추상표현주의는 다분히 미국적이고, 로스코의 작품은 아메리카니즘에 편승된 측면이 강하다. 그가 자신의 작품이 컬러필드(혹은 색면회화)로 분류되는 것에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 것만 봐도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엘리트주의가 오늘날에는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소수의 엘리트들이 문화를 이끌어갈 때는 그들의 생각, 느낌, 비전이 중요했으며, 일반인들은 존중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팝아트 이후 대중이 문화의 중심이 된 오늘날에는 엘리트들의 약간은 교묘한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중이 원하는 것은 선정적인 것이다.

일생을 우울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산 로스코를 생각하며 새삼 무상함을 느낀다. 로스코는 팝아트 예술가들에게 분노를 표시했는데, 오늘날 세상에는 네오 팝아트가 판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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