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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_울산 반구대 암각화 선사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
쟁점_울산 반구대 암각화 선사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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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보존은 주변환경 보존부터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 선사기념관 건립공사가 추진되자, 반구대 암각화 훼손 우려를 둘러싸고 학계와 울산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간의 경과와 주요 쟁점을 살펴보았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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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학계는 한국암각화학회·한국미술사학회 등 10개 학회를 중심으로 암각화주변 선사문화전시관 설립 추진을 반대하는 ‘울산반구대암각화보존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변영섭 고려대·임세권 안동대, 이하 위원회)를 결성했고, 울산시가 설립을 강행하자 지난 6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원점으로 돌아가 전시관 부지를 재선정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8백50미터 떨어진 곳에 1백35억원을 투입해 전시관 설립을 추진해왔는데, 도로확충은 이미 끝났고 올 10월 전시관 착공만 기다리는 중이다. 이에 학계는 “부지는 현 예정지에서 1.3km 떨어진 주차장자리가 적합하다”는 견해를 내놓아 팽팽히 대립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시관이 현 위치에 건립될 경우 수질오염과 환경오염으로 중요 문화유적이 파괴될 우려가 크다는 것. 지난 1965년 사연댐의 건설로 인해 상류의 물이 불어 반구대 암각화는 연중 8개월은 물속에 잠겨 있는데, 예정부지인 대곡천 상류에 전시관이 건립된다면 “수질오염과 방문객들에 의한 환경오염이 우려돼 암각화 유적이 치명적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선사유적으로 폭 15미터, 높이 2.5미터의 암벽에 총 75종 2백88점의 동물그림이 각인돼있어, 우리 민족의 기원과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는 건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변영섭 고려대 교수(미술사)는 “우리 문화의 원형인 암각화를 제대로 발굴도 안하고, 연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서가 뒤바뀐 전시관 설립부터 하려 한다”면서 “문화재를 파괴하면서까지 관광에 힘쏟을 게 아니라, 보존하면서 물려줄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경숙 동아대 초빙교수(미술사) 역시 “선사시대 생활상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적으로 유네스코에 곧 등록할 예정인데, 파괴될 우려가 있음에도 ‘전시관 접근의 용이성’이란 이유로 현 위치를 고수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임세권 안동대 교수(고고학)는 “세계적으로 암각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보존’이며, 이는 암각화 자체의 보존만이 아닌 주변환경 보존에 역점이 두어지고 있다”라며 주변환경을 고려치 않는 현 공사진행을 우려한다.

공사가 진행될 주변의 유적발굴 역시 과제로 남아 있다.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미술사)는 “반구대 주변 지역은 선사시대 뿐 아니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도 매장돼있는 곳인데, ‘유물이 발굴될 가능성이 없다’며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울산반구대암각화유적 진입로 주변문화재 지표보고서’에 따르면, 반구대 주변 일대에서는 가마터에서 토기, 공룡발자국화석 등이, 전시관 예정부지에서는 삼국시대 도질·연질토기편, 고려·조선의 청자와 백자편 등이 다량 채집된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학계는 울산시가 문화재 관련 사항인데 전문가들과 어떤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공사를 진행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실 이 사안은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논쟁에 휩싸이면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울산시와 학계·문화계의 중재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22일 유 청장은 “현지에 내려가 주변 5곳과 건립 예정부지를 조사하고 건립부지를 확정해 알려주겠다”라고 학계에 구두로 약속했으나, 이후 “어떤 형태의 합의사항도 없었다”는 게 위원회의 답변이다. 뿐더러 지난 5월 23일 유 청장과 학계인사들이 가진 간담회에서 모 건축가의 새로운 설계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학계에서는 “부지선정도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물설계안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며 문화재청의 중재안을 거부하기도 했다.

학계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울산시 관계자는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폐수를 차단하는 시설을 완비했다. 환경오염설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라고 반박한다. 또한 ‘지표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정밀하게 진행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기에 예정대로 10월에 공사를 착공할 예정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학계와 문화계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반대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는 7월 중순 울산시, 문화재청, 시민단체, 학계 등이 자리를 마련해 이 사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쟁을 벌일 예정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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