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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최승우
  • 승인 2023.01.31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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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 이주환 옮김 | 마르코폴로 | 378쪽

자기표현이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아이러니 중 하나이다. 놀랍게도 허구는 삶에 족쇄를 놓는 데 종종 성공한다. 우리의 태도에는 작품 속 인물과 작가를 연결시키는 못된 습관이 있는데, 다른 예술가에 대한 감정에는 그렇지 않다. 작가는 존재를 만들었지만 이 존재를 초월하는 데 실패했다.

2004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사망에 따른 부고 기사에는 이러한 실패담이 가득했다. 그녀는 가난뱅이가 된채 스캔들과 알코올 중독으로 더럽혀진 비극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녀가 겨우 19세에 출판한 첫 번째 책(슬픔이여 안녕)은 근엄한 비평가들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했고 평가절하되었다. 이 책의 상업적인 성공은 문학의 진성성을 담보하지 않은 결과로 취급되었다.

사망 기사를 쓴 기자들의 구미를 잡아당긴 것은 사강의 쾌락주의적인 삶의 태도였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그녀의 운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젊은 여주인공(세실)으로부터 프랑수아즈 사강은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작품에서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는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데 실제로 사강 또한 이 책이 출판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때 애스톤 마틴이 부서질 정도로 심각한 교통사고를 맞았다. 작가가 데뷔 작품 속의 인물처럼 죽어가길 바라고 있던 기자들은 실망감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막 발표한 시점 그러니까 1954년부터 1992년 사이에 가졌던 수 많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통해서 우리는 작품 뒤에 감쳐진 생생하게 살아있는 프랑수아 사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거침없이 살아갔다.

얼핏 보면 그녀의 대답은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38년간의 인터뷰 모음집에서 사강의 대답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솔직함으로 무장되어 있다. 뭐랄까? 맑고 순수한 영혼이 재잘거린다고나 할까. 프랑스 문학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사강의 솔직담백한 인생 이야기가 370여 페이지에 담겨져 있다.

거짓과 위선의 벽에 둘러싸인 대답이 아니라 삶의 매순간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와 번민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한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그리고 여성이자 엄마로서 그녀가 느끼고 사랑했던 모든 시간들이 페이지 하나하나에 강물처럼 흐른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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