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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 외면하면서 원효와 만날 수 있겠는가
역사적 사실 외면하면서 원효와 만날 수 있겠는가
  • 석길암 불교연구원
  • 승인 2006.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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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서평_ 이광수의 『원효대사』 vs. 한승원의 『소설 원효』

조금 색다른 원고 부탁을 받았다. 최근 발간된 원효 스님에 대한 소설 두 종류를 읽고 나름의 시각을 밝혀주면 어떻겠느냐는. 하나는 춘원 이광수 선생의 ‘원효대사’, 또 하나는 한승원 선생(이하 존칭 생략)의 ‘소설 원효’이다. 출간 소식만 듣고 바쁜 일상에 휩쓸려 놓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에 부탁을 받고 보니 이 기회에 꼭 읽어야겠다는 욕심에 덜컥 수락부터 하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얘기하기 전에 먼저 전제를 두기로 하자. 일단 이 두 종류의 책은 모두 소설이고 본격적인 연구서는 아니라는,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하려는 필자는 창조적 상상력이 그리 기발하지는 못한 연구자라는 점이다. 때문에 접근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고 시각도 많이 다를 수 있다. 미리 밝히면, 불교인으로서 그리고 불교학 그것도 원효를 전공하는 입장에서는 두 책 모두 ‘아하’ 하는 감탄사와 ‘이런’ 하는 아쉬움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 쓴 것은 주로 ‘이런’ 하는 아쉬움만이라는 점에서 미리 양해를 구한다.


‘소설 원효’에서 출발하기로 하자. 한승원은 이렇게 말한다. ‘일연 스님은 원효를 잘못 읽었다. 그리고 춘원 또한 원효를 전쟁주의자로 오독했다. 그러나 원효는 반전주의자였고, 세계주의자였으며, 불국토주의자였다’고. 한승원의 ‘소설 원효’는 그러한 의도에서 씌어졌다. 원효가 반전주의자였다는 생각, 그러한 착상에서 기존의 원효의 삶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공하는 입장에서도 다시금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일연은 원효를 오독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작가 한승원이 일연을 오독한 것은 아닐까. 일연은 ‘삼국유사’‘원효불기’조에서 요석공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대한 행적은) ‘唐傳’과 ‘行狀’에 갖추어 실려 있다. 다만 ‘鄕傳’에 기록된 한두 가지 기이한 일을 쓴다.” 필자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행장’에 기록된 요석공주와의 인연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달랐기에 일연스님이 기이한 일[異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정확한 기록이라고 생각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일연은 굳이 잘 갖추어져서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은 굳이 ‘삼국유사’에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遺事’인 것이다.


그러면 춘원의 ‘원효대사’는 ‘성스러운 전쟁에 기꺼이 몸을 던지’라고 강조하는 ‘친일’을 주장하는, 그리고 원효를 전쟁주의자로 묘사하는 소설인가. 혐의가 없다고 말한다면, 시기가 시기이니만치 지나친 단언이 될 것이다. 특히 한승원이 지적하는 마지막 부분은 그런 혐의가 무척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체를 본다면 진덕여왕의 ‘태평송’을 거론하면서 요석공주에게 “너의 아버지는 이제 신라 사람인지 당나라 사람인지 모르게 되었으니” 같은 힐난조의 목소리를 통해서 보여주는 민족의식 같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일편향적으로만 이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일제 시기의 ‘원효’라고 하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일본불교나 중국불교와 차별되는 한국불교의 독자적인 사유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춘원으로서는 극한시기에 ‘묘한’ 인물을 다루는 위험 또한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필자는 춘원이 묘사한 원효가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이해가 아니라 종교인으로서의 면모를 어필하는 강점 역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 다시 ‘소설 원효’로 돌아가 보자. 춘원의 ‘원효대사’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연대 상의 혼란이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서 ‘원효대사’의 경우에는 진덕여왕이 죽을 무렵(654)의 요석공주가 적어도 20년 뒤인 670년 이후에나 알려질 의상과 선묘낭자의 일화를 고민 속에 반추한다. 한편 ‘소설 원효’에는 661년에 낭지에게 찾아가는 사미 지통이 원효보다 훨씬 선배로 등장한다. 지통은 의상이 귀국한 후에 다시 의상의 제자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곧 원효에게도 제자뻘에 해당하는 인물인 것이다. 또 그 지통의 스승이기도 했던 낭지는 지통을 맞이하는 해에 입적하고, 의상은 지엄의 문하에서가 아니라 신라에 돌아와서 ‘화엄일승법계도’를 완성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676년 이후에 신라에 온 사신이 원효의 가르침을 받아 664년에 입적한 현장과 668년에 입적한 지엄에게 원효의 가르침을 전하는 황당한 묘사도 있다. 소설이니까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한다면야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마저 외면하고 왜곡한다면, 과연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정신세계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세계주의자로 원효를 묘사하겠다는 작가의 의도에는 적지 않게 공감하면서도 중간 중간 느껴지는 불편함은 의외로 만만치 않다. ‘석가모니도 원광스님도 한 여인에게 아기를 잉태하게’ 하였다는 것이나, ‘신라불교의 한복판에 군림하려’는 욕망에서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스님들, 반전투사로 묘사되는 원효, 작가 스스로도 가상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지만 깨달음을 여성과 남성의 관계라는 성적 코드가 아니면 설명하지 못하는 등. 불교인이면서 불교사상을 연구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필자가 상상해왔던 원효를 만나기 힘들어서 아쉬웠다.


그럼 원효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필자가 이해하는 원효는 이렇다. 원효는 계율에 대단히 엄격한 사람이었다. 계율에 엄격한 인물이었기에 파계한 이후에 스스로를 승려가 아니라 거사라 칭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파계가 아니라 환계라고 생각한다.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에는 수행자가 수지한 계율을 지키지 못할 불가피한 상황에 부닥치면 還戒 곧 환속하였다가 재출가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중국불교 삼계교의 신행 스님 이후에는 이 환계가 중생에게 접근하는 교화방편으로도 이해되는데, 원효가 환계 이후 복성거사 곧 ‘下之下’의 인물로 스스로 자처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흔히 ‘걸림없다[無碍]’는 것을 거칠 것 없다고 해석하는데, 그것은 해야 할 것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 하지 않는 데서 얻어지는 자유로움이다.


그런 점에서 춘원이 묘사한 ‘아는 것과 되는 것의 차이를 고민하고’ ‘오직 행이다. 오직 행만이 값있는 것’이라고 외치고, ‘이치는 깨달은 듯하건만 마음이 말을 아니 듣는다’고 고민하는 원효는 참으로 원효답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다면, 원효는 당연히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심수행장’에서 ‘타인의 복을 위해 파계하였으니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지고 나는 것 같다’고 원효는 토로하는 것이다.


사실 앞장서서 반전과 평화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그런 인물로서의 원효는 필자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 생소한 인물이다. 원효는 분명 평화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를 위해 앞장서서 선동하는 그런 인물이기보다는 고통에 처한 중생들과 함께 삶을 나누어 그들의 고통을 덜어보려고 애쓰는 실천가였을 것이다. 확실히 원효가 살았던 당시의 중국과 한국불교에는 출가자의 수행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중생구제행에 나선 실천가들의 전통이 존재했다. 삼계교의 신행이나 원광, 두순이나 자장 같은 화엄행자들이, 그리고 후대의 선사들이 그런 전통을 받아들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투사가 아니라 묵묵히 行하는 것을 본연으로 하는 실천행자였을 뿐이다.

▲원효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신륵사 강월헌 

회통이니 화쟁이니 하는 것 또한 단절된 사람들의 생각을 소통시켜 줌으로써, 서로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실천행으로 가는 논리적 따스함에 다름 아니다. 원효는 그것을 두루하여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해탈의 세계라고 부르고 실천함에 주저하지 않았던 사상가였다.


누구나 원효를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 느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파격적인 무애행과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확대 해석되어 원효를 이해하는 코드가 되는 데서 당혹감을 느낀다. 원효의 행장이 전해져 오지 않는 것은 우리가 원효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오해를 초래한다. 그나마 학계의 연구 성과를 조금이라도 신중히 검토해준다면 소설 속에서 갑작스럽게 낯선 원효를 마주치게 되는 당혹감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석길암 한국불교연구원 전임연구원
필자는 동국대에서 ‘원효의 보법화엄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법장교학의 사상사적 전개와 원효의 영향’ 등 다수가 있고, 원효사상에 대한 폭넓은 연구로 ‘불이賞’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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