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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K-할랄’ 수출, 반이슬람 정서가 가로 막는다
[글로컬 오디세이] ‘K-할랄’ 수출, 반이슬람 정서가 가로 막는다
  • 정진한
  • 승인 2023.02.03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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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중동에서 K-할랄 바람이 불고 있다. 할랄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19억 명의 신자들에게 종교적으로 허용된 제반 사항들로 대다수가 무슬림인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코드 중의 하나이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UAE 국빈 방문에 동행한 100명의 경제사절단에는 할랄과 관련한 업체의 관계자들도 많았다. 먼저 농심과 CJ를 비롯한 7개의 식품업체와 모든 화장품‧제약 업체들은 다수의 국제 할랄 인증기구로부터 할랄 인증서를 획득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또한, 수직 농장을 비롯한 스마트 팜, 반려동물 식품, 패션, 게임과 블록체인, 숙박 서비스와 게임, AI 기반 아바타, 교육 앱, 스마트 도시 분야 업체들도 할랄과 직간접적 연관성으로 인해 할랄 인증을 추진하거나 이를 고심하고 있다. 이는 중동에서 요구하는 할랄 적격 여부 조건의 적용 범위가 신체와 닿는 음식이나 화장품, 패션과 같은 유형의 제품에서 IT와 금융과 같은 무형의 서비스로, 그리고 이 둘을 결합한 여행과 교육과 같은 복합 컨텐츠로 확장되는 추세에서 비롯한다.

 

사우디 슈퍼마켓 내 한국 할랄 식품 코너. 사진=정진한

이러한 할랄 인증 수요 증가 추이를 이해하려면 할랄의 본질을 제품과 경제가 아닌 철학적 측면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할랄은 허락된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을 포함한 활동의 일체이다. 반대로 하람은 금지된 모든 것이다. 할랄과 하람 사이에는 금기는 아니지만 되도록 피하길 권하는 조항부터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사항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따라서 할랄 여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터부시하는 속성은 음식뿐 아니라 돼지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 의약품, 돈피 코트와 소파 등에도 적용되고, 성적 문란함을 금하는 조항은 이를 포함한 콘텐츠를 차단한 검색 엔진, 영상물과 게임은 물론 성매매와 연관된 금융상품과 여행 패키지의 보이콧 등도 망라한다. 실제로 할랄 미디어나 할랄 여행 상품의 이용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중동 내 K-할랄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교촌, 네네, BBQ 등의 치킨 업체들은 일찌감치 할랄 인증을 받고 중동 주요 도시의 쇼핑몰에서 성업 중이고 심지어 경제 제재 하의 이란의 수도 테헤란 공항에도 진출했다. 이에 앞선 1980년대부터 한국은 히잡을 비롯한 이슬람 의복 분야에서 중동 내 수위를 다투는 전통의 강자이다. 

거기에 2천 년대 초 불어닥친 한류 열풍은 라면에서부터 한국 여행까지 K-할랄의 입지와 범위를 넓히면서 급기야 농심은 부산의 라면 공장 전체 라인을 할랄 전용으로 교체했다. 코로나19 대유행마저 한국 화장품의 성장세를 도왔다. 마스크를 착용하며 발생한 피부 트러블의 해결책으로 한국 화장품이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할랄인증기관인 KFM(Korea Muslim Federation) 할랄위원회는 최근 세계 유수의 해외인증기관과의 교차인증을 8곳까지 늘렸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할랄 제품 인증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마저 갖췄다.

하지만 이런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파고들은 만만치 않다. 할랄 산업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해외에서 진입한 업체들 사이의 각축장이다. 특히 급속하고 엄격하게 국내 산업의 자국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걸프 산유국들의 경우 과거와 같은 제품의 수입 일변도를 지양하고, 외국 기업들에게 국내에 생산기지를 세워 자국민을 고용함으로써 자국 경제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최근들어 같은 이슬람권인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와의 할랄 경제 협력 확대 강화 기조가 급격한 진전을 보이고, 이에 맞춰 한국 업체들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하게 생산기지를 신증설하고 있다.

보다 큰 어려움은 국내 반이슬람 정서의 표출이다. 국가식품산업클러스터 유언비어 사태로 대표되는 할랄 생산과 무슬림 체류의 상관 관계에 대한 시민사회의 오해는 여전하다. 산업단지 전체를 할랄 공장으로 지정한다거나 모든 종업원을 무슬림으로 채용해서 100만 명의 무슬림이 더 입국한다는 따위의 헛소문은 이미 허무맹랑한 해프닝으로 결론이 났음에도, 다수 대중의 오해는 해소되지 않았다. 

또한, 수출 일변도로 설계된 한국 할랄 산업으로 인해 정작 국내 무슬림들은 K-할랄 제품을 해외에서 수입해 와야 한다. 할랄은 전세계 4명 중 1명에 대한 존중이다. K-할랄 웨이브의 세계화는 이들 무슬림들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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