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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불길한 말
부엉이의 불길한 말
  • 최승우
  • 승인 2023.01.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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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지음 | 성민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77쪽

「아Q정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중국 최초의 현대 소설 「광인일기」 등을 통해 중국문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힌 작가로 평가받는 루쉰의 시·산문선 『부엉이의 불길한 말』(성민엽 옮김)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기존의 모든 권력과 질서를 문제 삼았던 그는 소설가이면서 산문가, 시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루쉰이 남긴 방대한 양의 산문 가운데 10편을 선별, 그의 유일한 시집 『야초』에 수록된 시 전편을 함께 묶었다. 무엇보다 루쉰 문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루쉰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에 두고 “깔끔하고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문학평론가 성민엽(서울대학교 중문과 명예교수)이 도맡아 엮고 옮긴 이 책은, 루쉰 언어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루쉰의 사상이 변모하는 양상에 따라 이 산문들은 크게 낭만주의 시기(1907~1908)-비판적 리얼리즘 시기(1918~1927)-전환기(1927~1930)-좌익작가연맹 시기(1930~1936)까지 네 단계로 나뉘며, 『부엉이의 불길한 말』은 이처럼 30년에 걸친 루쉰 사상의 변천사를 조망할 수 있게끔 산문을 선별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이 주목하는 시기는 비판적 리얼리즘 시기로, 수록 산문 10편 가운데 6편이 이 시기에 쓰였다. 당시 루쉰은 과거 자신이 되고자 했던 “영웅이 결코 아니었”(「『외침』 서문」)다며 적막과 허무를 토로하면서도, 여성의 균등한 경제권을 논하는 등(「노라는 집을 나온 뒤 어떻게 되었는가」) 중국의 현실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사람들이 부르짖는 공정한 도리 역시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착한 사람을 구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나쁜 사람을 보호해주기까지 한다”(「‘페어플레이’의 시행을 늦춰야 함을 논함」)라는 루쉰의 일갈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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