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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자체가 의미있는 시절은 갔다
'만남' 자체가 의미있는 시절은 갔다
  • 홍윤표 연세대
  • 승인 2006.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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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남북 학술 교류를 앞둔 학계의 자세

▲홍 윤 표/연세대·국어국문 ©
1996년 여름, 중국의 연길시에서 북한 학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긴장감과 경계심과 긴장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듬해 두 번째 만남에서 한글코드의 자모 배열 순서를 통일하였을 때,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학술적 통일안을 도출해 내었다. 역사적인 일이었다. 그후 10년 동안 일본, 중국의 연길, 심양, 북경, 그리고 서울과 평양, 금강산과 개성 등을 오가며 적게는 1년에 한번 많게는 1년에 여섯 번 이상 북한 학자들을 만나 학술토론을 하여 왔다.

특히 2000년의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학계의 학술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남북 학술교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좀더 내실 있는 남북 학술 교류를 위하여 그 성과를 곱씹어 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면밀히 검토하여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시기가 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 몇 가지를 짚어 보도록 한다.

첫째 남북 학술교류의 목표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남북 학자들의 만남이 ‘호기심’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남’ 그 자체는 통일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이겠지만, 통일 이후의 상황까지도 예상할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목표를 재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술 연구 방법과 자료를 공유하거나 정보 교환의 단계를 넘어서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술 교류의 주제를 남북이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들로 선정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표준화(각종 규격의 표준화 및 학술용어의 표준화 등)나 통일안(국제표준기구에 남북이 공동으로 제시할 통일안)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재원 확보에 노력하여야 한다. 여건상 북한이 연구비나 회의 참가비 등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서, 연구비 등의 재원 확보는 지속적인 남북 학술교류를 위해 반드시 이루어 놓아야 할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일회성의 남북 학술 교류 지원만으로는 효율적인 교류가 가능하지 않음을 정부 당국에 설득하는 일은 학자들의 몫이다. 

셋째로 북한 학문에 대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자료센터의 설립이 필수적이다. 현재 산재해 있는 북한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통합 운영할 수 있는 기구의 설립은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여서, 이 문제 또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하여야 한다.

넷째로 북한의 학문적 특성과 경향을 미리 파악해 두어야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북한은 주로 종합적인 연구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남한은 매우 분석적이어서 연구방법이 더 정밀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연구방법도 거시적인 구조나 틀을 파악하는 데에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이 형식주의적인 색채가 짙다고 한다면, 북한은 기능주의적 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학문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학문적 특성 때문이다.

다섯째로, 북한 학자들의 태도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남한은 모든 것이 제도와 법에 따라 일이 진행되지만, 북한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따라 일이 진행됨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북한 학자들과의 접촉은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야 함을 뜻한다. 학자들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중요한 ‘계약 관계’에 있더라도 순식간에 파기될 수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북한 학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이중적인 갈등을 표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그들은 외면적 가치와 내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금력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면적 가치인 인격과 교양, 그리고 평화나 문화와 도덕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학자들을 금전적 가치로 재단하려는 태도는 반드시 우리 학자들이 고쳐야 할 자세로 보인다.

앞으로 국제정세나 국내외 정치 상황에 따라 남북 학술교류의 방향도 변화하겠지만, 우리가 북한과의 학술교류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확고히 결정되어 있다면, 학술교류의 성과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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