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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김당택 전남대 교수의 지적에 답한다
반론: 김당택 전남대 교수의 지적에 답한다
  • 김기봉 경기대
  • 승인 2006.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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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백 史學의 ‘박제화’인가 역사화인가


김기봉/경기대·사학

김당택 교수는 21세기 한국사학은 이기백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많은 것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이기백 사학은 결코 극복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필자는 이러한 김 교수의 주장이 이기백 사학을 ‘박제화’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기백 사학을 “모든 시대는 신에 직결되어있다”는 랑케의 명제가 “모든 시대는 진리에 직결되어있다”로 변형된 진리지상주의로 특징 지웠다. 이기백 선생에게 진리는 곧 신이었다. 선생은 말년에 이를수록 직업으로서 역사학이 아니라 종교로서 역사학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진리와 신에 관한 명상은 세속화된 근대인에게 끊임없는 화두였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파스칼의 명상이다. 그는 “피렌체 산맥 이쪽에서의 진리는 저쪽에서는 거짓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 존재 증명은 ‘파스칼의 내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스칼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도록 만들 수 있을까”였다. 그는 확률을 공부하다가 마침내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내기를 걸면 된다는 것이다. “내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얻게 되고 내기에서 지더라도 특별히 잃을 것이 없으니 신이 있다는 쪽에 일단 내기를 걸고 살아보라”는 게 파스칼의 권고였다.

파스칼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는 역사의 진리를 믿음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진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의 물음을 제기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베버는 합리화 된 세계에 사는 인간은 ‘가치의 다신교(Polytheismus der Werte)’ 시대에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가치의 다신교’는 신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가 아니라 어떤 신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한다. 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때, ‘파스칼의 내기’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 기독교도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도 똑같은 논리로 사람들에게 알라신을 절대적으로 믿을 것을 설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내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과의 역사분쟁에서 위와 같은 가치 상대주의 문제에 봉착한다. 2002년 일본 후쇼사 발행 『새역사교과서』는 머리말에서 워싱턴은 미국인들에서는 건국의 영웅이지만 영국인에게는 반역자라는 예를 들어 역사적 상대주의를 옹호했다. 이기백 선생은 민족이라는 개체적 가치가 아니라 진리라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할 때만이 역사적 상대주의를 극복하고 과학적 역사학을 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헤겔의 말대로 “진리란 전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보편적 인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독일인 등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인류사가 아니라 각국사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한다. 이러한 ‘국사’의 시각을 넘어서기 위해 이기백 선생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한국사를 시대구분 하는 방식으로 한국사의 전체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그 성과물이 『한국사 신론』이다. 김당택 교수는 이런 선생의 업적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계속 올라가야 할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이기백 선생은 『한국사 신론』 머리말에서 자신의 책이 학문적 진리를 말하는지 아닌지는 10세기 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럴 수 없는 이기백 사학의 한계를 세 가지로 열거하고자 한다. 첫째, 선생은 진리를 민족에 앞선 가치라고 주장하면서도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는 묘비명을 새기라는 유언을 남겼던 것처럼, 그 나름의 방식으로 민족주의사학을 지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한국사연구의 목표는 한마디로 한국민족의 역사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진리지상주의를 내세웠지만, 그가 서술한 한국사의 문제지평은 어쩔 수 없이 민족으로 한정되어 있다. 단지 그가 다른 민족주의사학자와 구별되는 점은 그는 한국사를 지배세력의 확대과정으로 파악했으며, 이런 방식으로 한국민족의 형성과정을 역사화 했다는 점이다.

둘째, 그는 신채호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으로 파악함으로써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맥락에서 우리 역사문제를 보지 못하고 결국은 ‘국사’의 시각에 머물고 말았다. 이는 그의 개인적 한계라기보다는 그가 산 시대가 만들어낸 사고의 ‘감옥’이다. 그는 지정학적 요인을 강조하는 모든 한국사서술의 경향을 식민주의사학의 발로라고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전근대에서의 나당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근대 이후의 러일전쟁과 한국전쟁 그리고 현재 북한 핵문제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한국사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를 이루는 브로델이 말하는 장기지속의 구조다.

이기백 선생과 같은 1세대 한국사학자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났다. 식민주의사학을 탈피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거울로 해서 자기 학문의 정체성을 세워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그들에게 식민주의사학은 하나의 ‘원죄’와 같은 것이었다. 식민주의사학이 심어 놓은 타율성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새로운 한국사를 정립하는 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각성했던 이들에게, ‘국사’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사의 관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21세기 한국사학이 여전히 ‘국사’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이다.

셋째, 이기백 사학을 한국 역사학의 랑케로 자리매김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김당택 교수는 이러한 자리매김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기백 선생이 한국역사학의 랑케인가 아닌가는 필자에게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필자의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이기백 선생이 한국역사학의 랑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 랑케 역사학은 초기 “모든 시대는 신에 직결되어 있다”는 말로 대변되는 역사신학에서 점점 탈피하여 사료비판에 의거한 실증사학으로 발전함으로써 근대 역사학의 첫 번째 과학모델을 정초했다. 이에 반해 이기백 선생은 정반대로 과학적 실증사학에서 출발했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역사신학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왜 그랬을까?

이기백 선생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 진정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회의했다. 역사의 현실과 당위는 불일치한다. 이러한 불일치에 대한 고뇌로부터 선생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는 실패로 끝난 비극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승리일 수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세계와 절대적인 세계에서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정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기백 선생이 말하는 역사의 진리란 어느 세계의 가치판단을 의미하는가?

이기백 선생은 “역사적 사실을 보고, 거기에 나타난 뜻을 살려, 시대의 전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원리·원칙”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진리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진리에 따르면 좋지만,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믿음으로 역사연구를 해왔다고 신앙고백을 했다. 그는 하늘의 섭리를 진리라는 세속적인 말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말하길, “이 세상만 두고 보면 비극이겠지만, 하늘을 상대로 하고 보면 승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비극이 없다는 것은 결국 하늘에 대한 믿음, 진리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뜻도 된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의 탄생은 이 세상에서의 비극을 초월할 수 있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를 관통하는 원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마천의 결단으로부터 이뤄졌다. 이 같은 동아시아 전통적인 역사신학을 20세기에서 이기백 선생은 기독교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실증사학자로서 이기백과 역사신학자로서 이기백의 불일치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직도 이기백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갈 때가 아니라고 믿는 분들이 이 물음에 대해 어떤 답을 할지 필자로서는 무척 궁금하다. 후대의 역사가는 이기백 사학을 그의 텍스트를 성경처럼 읽거나 또는 그의 실증사학을 하나의 역사신학으로 변형시키는 이른바 ‘말씀’사학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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