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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자  
이제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자  
  • 김병희
  • 승인 2023.01.1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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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⑮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누구나 한 번쯤은 프랑스의 비행기 조종사이자 소설가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1943)를 읽어봤으리라. 이 동화는 초판이 출판된 후, 450여 개의 번역판이 나올 정도로 성서 다음으로 많이 번역됐다. 지금까지 2억 권 넘게 팔렸다고 한다.

비행기 사고 때문에 사막에 고립된 조종사가 비행기를 고치며 어린 왕자와 나누는 대화가 동화의 전반적인 얼개다. 그렇게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다는 것은 환상적인 이 동화가 세계적 보편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책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많이 열렸다.

어린왕자 특별전 포스터(2012)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어린 왕자 한국특별전」(2012)은 특히 주목할 만한 전시회였다. 특별전 포스터(2012)를 보면 어린 왕자가 세 마리의 새가 이끄는 줄을 잡고 하늘을 훨훨 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작은 새들도 어린 왕자 주위를 돌며 왕자를 감싸고 있다.

책 제목을 프랑스어로 제시하며 특별전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어린 왕자를 전시로 만나는 시간”,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생텍쥐페리 드로잉 원본 국내 최초 공개”,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생텍쥐페리 재단에서 진행하는 행사 참여” 같은 내용이다.

전시회에서는 원서의 삽화, 작가의 기념사진, 각종 영상 자료, 작가가 즐겨 입던 코트, 작가의 서명이 담긴 초판본, 작가의 드로잉 원작 등 관련 자료 150여 점이 소개됐다.

전시회에서는 작가의 일생과 『어린 왕자』의 탄생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희귀본 자료를 전시하며 다양한 교육 체험 활동도 진행됐다. 제1전시관에서는 책에 쓴 삽화를 비롯해 비공개 그림과 드로잉 초안을 소개했다. 특히 양파껍질보다 얇은 피델리티 어니언 종이에 그려진 드로잉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그림 솜씨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제2전시관에서는 국내 작가들이 동화를 주제로 재구성한 이야기 작품,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지구별 영상관, 동화를 현장에서 읽을 수 있는 북 테이블이 호평을 얻었다. 전시장 밖에도 동화와 관련된 다양한 조형물을 전시해 아이들이 현장에서 어린 왕자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린 왕자』는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을까? 1956년 4월 1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번역가이자 불문학자인 안응렬 교수(전 한국외대, 1911~2005)가 국내 최초로 『어린 왕자』를 번역해 연재한다는 사고(社告)가 있다.

『어린 왕자』 연재 1회 (소년조선일보, 1956. 4. 2.)

그가 쓴 연재 예고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 글에 매우 깊은 뜻이 숨어 있어 어른들이 보아도 반성할 재료를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하기는 『어린 왕자』의 말마따나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 글을 읽더라도 어린이들의 설명을 들어야 되기는 하겠지만.”

안응렬 교수는 1955년에 출간된 불어판 원본을 바탕으로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오는 배편에서 번역했다고 한다. <소년조선일보> 1956년 4월 2일자부터 첫 연재를 시작했는데, 얼핏 보면 코끼리인데 자세히 보면 코끼리를 통째로 삼켜버린 보아뱀의 삽화도 그대로 소개됐다.

이 동화는 그해 5월 17일까지 총 44회에 걸쳐 <조선일보>와 <소년조선일보> 지면에 번갈아 연재됐다. 국내 첫 번역이었다. 그의 번역본은 1960년에 동아출판사의 문학전집에 수록됐다가, 단행본으로는 1973년에 인문출판사에서 처음 출간했다. 

그 후 불문학자 김현 번역(문예출판사, 1973)을 비롯해 최근의 고종석 번역(삼인출판사, 2021)에 이르기까지 국내 400여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했는데, 모두가 안 교수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숱한 불문학 작품을 번역했지만, 마리아 발또르따(Maria Valtorta)의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0권(가톨릭 크리스챤, 1988)을 번역한 일은 그 무엇보다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권당 평균 500쪽 내외의 이 책은 예수님의 생애를 발또르따가 ‘환시’를 받아 받아쓴 것으로 유명하다.

동화에서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를 떠나 다른 별 7곳에 가본다. 어린 왕자가 마지막에 도착한 지구에는 왕, 허풍쟁이, 술꾼, 상인 등 모두가 악을 써가며 살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지구인들이 열심히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점을 암시하는 동화적 설정이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없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구절처럼 동화에서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라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사람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참 주제는 ‘더 나은 자아(自我)’를 찾으려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라는데 있다.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반추하라는 뜻이다. 

고종석 작가는 종교가 민중의 아편(칼 마르크스)이고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의 아편(레이몽 아롱)이라면, 『어린 왕자』는 어른들의 아편이라며 그 가치를 평가했다. 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피어있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다시 자아(꽃 혹은 우물)를 발견하고 그 무엇을 소중히 가꿔야 한다. 마음속으로라도 이토록 번잡한 지구별을 떠나 어린 왕자가 되어 보자.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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