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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유명대학 퍼주기 … 연구결과물 수준 낮아
영미권 유명대학 퍼주기 … 연구결과물 수준 낮아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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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_해외 한국학 지원,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한국학과정을 폐지한다고 해 논란을 빚었던 옥스퍼드대 측은 한국 측의 긴급 재정지원으로 한국학과정을 계속 유지할 뜻을 밝혔다. © 연합뉴스
학술진흥재단의 해외한국학 지원사업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으로 이월되면서 예산이 증액되는 등 눈길을 끌고 있다. 한중연은 ‘해외한국학중핵대학육성사업비’로 10억원을 새로 마련했고, 해외한국학 지원기관 중 가장 큰 한국국제교류재단(이하 교류재단) 또한 지난해보다 50%가 오른 1백50여억원으로 예산을 확대했다.

그러나 해외 한국학 지원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별대학의 특성화와 관계없이 영미권 유명대학에 집중 지원하고, 돈을 놓고 연구자를 불러모으는 방식은 몇몇 개인을 구제할지 모르지만 한국학의 발전에 해가 된다는 지적이 많다.

연변 지역 지원자들, 너도나도 몰려

수요가 있는 곳에 전략을 세워 공급해야 효과가 살아난다는 김동택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문화를 공부하고픈 욕구가 있는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지의 정규대학에 한국학 지원을 체계화하면 좋을텐데, 미국의 교수직 설치에 기금이 집중돼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나마 전통이 있는 미국에 비해, 최근 증가추세인 아시아권 대학의 지원자들은 심한 경우 “연구비 타먹기 위한 신청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최근엔 많이 나아졌다는 전제를 단 고영진 광주대 교수(한국사)는 “주로 연변에서 많이 신청하는데 1천만원이면 그곳에선 엄청난 금액이라 한번 돈 받았다 소문이 돌면 너도나도 몰려든다”라고 알려준다. 문제는 지역을 배려해야 하니 수준미달도 지원해줘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최연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학에 관심있는 해외기관이 제시하는 계획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지원은 매칭펀드 형식으로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조건 퍼주기보다는 가려뽑은 뒤 국내 재단과 해당기관이 반반씩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한욱 교류재단 한국학사업부 차장은 “재단지원금과 동일한 규모로 매칭하는 곳이 하버드대와 콜럼비아대를 비롯해 미주 16개 대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올해 40개국 1백13개 해외대학에 총 80억원이 지원되는 것에 비하면 너무 적은 숫자다.

실제로 교류재단이 1992~2005년 13개국에 설치한 한국학 교수직 74석 중에서 아시아는 1곳인 반면, 미국은 54석이나 된다. 또한 한중연이 신규사업으로 올 7월 중순경 4개 대학을 선정하는 ‘해외한국학중핵대학육성사업’ 역시 9개의 후보대학 중 6개 대학이 미국소재 대학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종명 한중연 교수는 “해외 대학에서 유학 와서 4년간 장학금 수혜를 받는 학생들이 많은 반면 교수는 증원되지 않아 교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사려깊지 못한 행정부서를 질타했다. 한 교수는 “학생들이 와서 박사논문도 못쓰고 인생을 망치고 가 남는 것은 한국에 대한 원망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이는 최근 젊은 외국인이나 교포 2세 연구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 대부분이 사회과학 분야의 현대시기를 주로 다루고 있어 해외한국학 연구에서 전근대시기 연구가 점점 줄어드는 경향에 대한 우려다. 6월초 열렸던 서울대 60주년 기념 한국학 국제학술대회에서 마이클신 코넬대 교수 또한 “미국내 한국학에서 현대 사회사와 문화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시기보다 더 큰 문제는 연구의 깊이다. 손홍기 신라대 교수는 “해외 한국학이라면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현상에서 배태된 시각이 존재해야 하는데 아주 피상적인 결과물밖에 안나오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외국 연구자만 탓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대 ㄱ 교수는 “중국에 몇 차례 학술대회를 갔는데, 국내 연구자들의 발제가 이미 국내 학회에서 발제한 논문을 중심으로 재편집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한국학 연구자를 위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충격적이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지난해 말 한 일간지 산하 재단에서 개최한 학술포럼을 다녀온 어떤 교수는 “외국학자를 초빙해 교통비와 숙박비를 제공해 가면서도 기껏 토론은 15분도 이뤄지지 않아, 해외연구자들이 굉장히 비난하더라”고 전했다. 결국 학술교류가 인맥구축에 그친다는 지적.

이상의 지적들에 대해 이길상 한중연 한국문화교류센터 소장은 “올해는 학진의 시스템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내년 공모부터는 광범위한 홍보와 지원 후 관리를 강화하고, 번역은 성과에 따른 차등지급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외 한국학분야의 연구자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핵대학 지원사업에 대해 이 실장은 “현재 동남아나 중남미는 한국학의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한국학이 자리잡을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서부대학을 중심으로 지원함으로써 동남아 네트워크를 견인해 나가겠다”고 말한다.

지역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세계 주요대학 중 한두 곳을 일본학과 견줄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고, 이어 UCLA나 버클리, 호주 등을 지원해 중남미 학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장기적 포석이다. 또한 아직 한국학 설치가 어려운 지역은 강의교수를 파견해 한국어를 비롯해 초석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둔다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고영진 교수는 “한중연은 해외교류는 신경쓰지만 연구기관이지 지원기관은 아닌데, 지원을 전담하는 것은 학진에 비해 전문성도 떨어지고, 모양새가 안 좋은 면도 있다”라고 우려를 표시한다. 고 교수는 핵심은 “지역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며 “힘들더라도 거기 계신 분들이 자생력을 갖고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한다. 손홍기 교수는 “지원기관에서 인적자원에 대한 파악이 한정적이라 한번 지원한 사람에게 계속 돌아가는 것은 중복지원 등의 문제가 있다”라며 알찬 대학과 연구자들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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