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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로부터 ‘지구적 금융’ 구하기
신자유주의로부터 ‘지구적 금융’ 구하기
  • 김승우
  • 승인 2023.01.1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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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35  20세기 후반 국제금융사 연구와 그 함의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신자유주의’와 ‘지구적 금융’을 단순하게 동일시하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동의 대응 대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는 
자본에 대한 통제 대신 그들을 유치하려는 경쟁으로 빠져들었고, 
그 결과 자본은 더 큰 자유를 얻게 되었다

2008년 전지구적 금융위기는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금융사 연구를 자극했다. 특히 20세기 후반 경제와 사회 운영에 있어서 권력의 균형이 특정한 형태의 자본인 금융자본과 더불어 그 행위자와 재현 및 제도로 넘어가버린 ‘금융화’ 현상은 금융을 사회로부터 분리된 경제적 영역이 아니라 당대 사회와 정치, 문화 속에서 바라보려는 다양한 학제간 연구로 이어졌다. 

영미권에서 금융사 연구는 다음과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와 경제를 시장체제의 입장에서 파악하려는 경제중심주의(economism)를 극복하고, 경제적 지식과 실천이 어떻게 당대의 정치문화라는 비경제적 요소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더불어 문화사와 유럽중심주의 비판을 수용한 ‘자본주의의 역사(history of capitalism)’는 주류 경제사에서 배제되어온 젠더와 인종,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요소들이 금융자본의 발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초국가적인 운동으로 금융을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은 연구 주제에 있어서도 대중투자사회의 등장, 여성 투자자의 등장, 독재정권과 국제은행의 관계, 국제금융기구와 개발도상국의 갈등, 그리고 20세기 후반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지구적 금융의 부활로 확대되었다.

금융자본은 주권국가를 어떻게 뛰어넘었나

이러한 새로운 연구들을 접하고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필자는 20세기 후반 영국의 국제금융중심지 런던시티(City of London)에서 등장한 달러화 역외시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다. 특히 미국이 발행한 달러화가 지구적 통화(global currency)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보면서 자본과 주권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초국가적인 금융자본의 역사를 구성하고자 미국과 영국, 서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의 여러 문서보관소들을 방문했고, 다양한 사료들을 읽으면서 은행가, 중앙은행가, 정치인, 경제학자 및 금융 언론인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위자들은 유럽통합, 공산권과 서유럽의 경제교역, 전후 국제통화체제인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위기와 붕괴, 개발도상국들의 야심찬 경제 성장 등과 같은 당대의 맥락 속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자신들의 정치적 열망과 야심, 문화적 가정에 따라 금융의 다양한 발전 양상들을 상상했고 실천했다. 금융에 관한 그들의 상이한 담론들은 충돌하고 경쟁했고 그들의 논쟁과 투쟁의 결과 금융자본은 주권국가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학위논문을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동료 학자들이나 학생들 혹은 일반 대중에게 스스로를 20세기 후반 국제금융사 전공자로 소개할 때마다 받았던 질문이 있다.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종류의 ‘음모론’과 더불어 지구적 금융과 신자유주의의 관계이다. 

‘천하제일연구자대회’의 지난 글에서도 한번 다루어진 적이 있는 ‘신자유주의’는 20세기 후반의 정치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전환을 모두 설명하려는 거대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국가를 넘어선 지구적 자본의 등장 및 금융화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영국의 통화주의 정책 도입, 자유로운 자본의 흐름을 자극한 역외시장의 등장 등이 이러한 인식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20세기 후반 초국가적인 신자유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경제학자 및 사상가들과 이에 동조한 정치인들이 지구적 금융의 부활을 이끈 주인공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박사과정 지원 당시 작성했던 학위논문 제안서를 다시 찾아보았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경제학자 프리드먼(M. Friedman)의 달러화 역외시장 관련 논문을 인용하면서부터 시작한 필자의 연구 계획 또한 지구적 금융과 신자유주의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느 영국 은행의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내부 문서의 내용은 둘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게끔 만들었다. 국제 은행가들은 미국 경제학자의 논의가 국제금융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혹평했기 때문이다.

또한 프리드먼이 1968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닉슨(R. Nixon) 당선인에게 보낸 기밀 서신은 전지구적인 금융을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조직하려는 내용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가 요구한 국제적 ‘의무’를 포기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한 북대서양의 신자유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영국의 대처(M. Thatcher)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D. Reagan) 대통령은 국제금융에 관한 체계적 전망이나 계획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앙은행가들의 국제협의체인 국제결제은행은 ‘선출되지 않은 전문가들’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사진은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국제결제은행 모습이다. 사진=김승우

중앙은행가의 흥미로운 정체성

그렇다면 지구적 금융의 부활을 이끈 것은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한 국제은행가 혹은 중앙은행가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런던시티와 미국의 월가(Wall Street)에서 활동하는 초국가적 금융가 계급이라는, 후자는 국제금융체제의 안정을 위해 국내 경제의 요구를 희생한다는 논의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매체에 종종 등장하는, 개발도상국과 같은 약소국을 채무 위기에 빠트리고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국제 은행가들의 이미지는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통화정책을 통해 요즘 우리의 경제적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앙은행의 권력은 금융을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영역으로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여전히 대중에게는 제한적으로나마 알려진 중앙은행가들의 국제협의체인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은 ‘선출되지 않은 전문가들’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우선 필자는 ‘신자유주의’와 ‘지구적 금융’을 단순하게 동일시하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신자유주의’란 무엇일까? 1970년대 신자유주의를 직접 목격했던 프랑스 철학자 푸코(M. Foucault)는 미국과 독일에서 등장한 새로운 자유주의 운동을 ‘경제적 인간’의 논리를 비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관찰했다. 미국의 시카고학파는 법경제학 운동을 통해 신고전파 경제학의 가정과 이론을 범죄와 혼인, 인종과 교육 등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한편, 20세기 초 합스부르크 ‘제국’의 붕괴와 탈식민지화에 따른 독점적 주권을 행사하는 민족-국가의 등장에 대응하여 자유주의적 세계경제 거버넌스를 모색했던 제네바학파 신자유주의자들 또한 국제무역 문제에 천착했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를 설계하는데 그쳤다.

필자가 발굴한 국제결제은행 및 국제금융기구 관련 사료는 중앙은행가들의 흥미로운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성과 더불어 국가경제의 이해관계라는 이중의 의무 속에서 그들은 서로 충돌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 혹은 국제채무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자본을 다스릴 수 있는 지구적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었다.

1979년 국제결제은행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던 전지구적 금융시장 규제 방안을 두고 독일 중앙은행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모든 제안들은 전지구적 금융시장으로부터 특권을 누려온 국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실패했다” 공동의 대응 대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는 자본에 대한 통제 대신 그들을 유치하려는 경쟁으로 빠져들었고, 그 결과 자본은 더 큰 자유를 얻게 되었다.

1973년 런던시티에서 국제채권 발행을 두고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체제경쟁은 국제금융을 냉전의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사진은 1973년 북한이 영국 런던시티에서 발행한 국제채권 모집 광고이다. 사진=<Financial Times>, 1973년 8월 6일자, 출처 : 국가기록원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다양한 목소리들

남반구 지역 역외시장의 경우 또한 흥미로운 함의를 제시한다. 1968년 독립국가 수립 이후 정치적, 경제적 생존을 위해서 국제금융시장을 건설한 싱가포르의 경우가 그러하다. 싱가포르의 지도자들은 금융중심지를 건설하여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자본을 초대한다면 싱가포르가 스위스처럼 중립국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서구의 제도를 전유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1973년 런던시티에서 국제채권 발행을 두고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체제경쟁은 국제금융을 냉전의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지구적 금융의 등장에 관한 연구는 20세기 후반 국제금융사에 있어서 다양한 목소리를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시장주의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머문 담론과 경쟁했던 지금까지 주변부에 머물렀던, 금융자본과 국제금융체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노력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브레튼우즈의 구조적 불평등을 포착하여 좀 더 평등한 국제통화체제의 대안을 제시했던 남반구의 경제학자와 중앙은행가들, 서유럽의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던 국제연합의 유엔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가 그러한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는 20세기 국제금융사를 당대의 정치와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김승우 제네바국제연구대학원 국제역사정치학과 연구원
고려대 철학과와 사학과(대학원)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다. 20세기 국제금융사를 전공했고, 제네바국제연구대학원에서 ‘민주주의와 금융’이라는 주제로 남북한을 포함한 권위주의 정권과 국제은행과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1970~1980년대 사회적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의 등장을 배경으로 영국의 인권운동과 미국의 민간 연기금 투자 논쟁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국가의 양면성·영국 노동당 정부의 유로달러시장 조세 정책 연구, 1964-1970」, 「시장을 이길 수 있는가? 20세기 주식시장 읽기와 투자 기법들의 역사」가 있다. 2023년 4월부터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경제사학과에서 개발도상국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모색해온 전후 국제통화체제 개혁 논의를 중심으로 유엔무역개발회의의 역사를 연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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