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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24] 정부를 포기하라!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24] 정부를 포기하라!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3.01.16 08: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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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수필작가, 강연자, 철학자, 노예폐지론자, 시인으로서 19세기 중반에 개인주의를 옹호하며 초월주의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소로와 달리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을 아나키스트로 보는 데에는 논란이 있다. 에머슨은 1844년에 쓴 『정치』(Politics)에서 “모든 실제 국가는 부패했다. 선량한 사람은 법을 너무 잘 준수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는데 이 에세이는 5년 뒤인 1849년에 출판된 소로의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에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은 친구였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충분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1803년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유니테리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21년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뒤 1829년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개신교회인 유니테리언 보스턴 제2교회의 목사가 됐다. 그러나 그의 자유스런 입장에 대해 교회가 반발하여 1832년 사임하였다. 그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그가 가진 성찬에 대한 견해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는 성찬 의식이 성경에 따른 해석의 결과로 보고 현대 교회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후 유럽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1835년 귀국하였다. 

청교도를 비롯한 기독교의 편협한 독단이나 형식주의를 배척하고, 자신을 신뢰하며 인간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사상을 주장하고, 자연과 신과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범신론적인 초월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세속을 싫어하고 자연 속에서 사색을 쌓아 '문학적 철인'이라고 추앙받기도 하였으며, 그의 이상주의는 젊은 미국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성은 사람에게 잠재적으로 완벽할 수 있다”

에머슨은 뉴잉글랜드 초월주의자들의 원로였다.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란 초절주의라고도 번역된다. 이는 사회와 단체가 개인의 순수성을 타락시켰으므로, 인간은 자립(self-reliant)하고 독립적일 때 최선일 수 있다는 사상이다. 초월주의는 주관적 직관을 객관적 실험주의보다 중요하게 본다. 에머슨은 ‘미국의 학자’(The American Scholar)라는 연설에서“우리는 우리 발로 걷고 우리 손으로 일할 것이며 또한 신성한 영혼이 모두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에머슨에 의하면 성격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가질 수 있는 것으로서 부처의 성격이나 예수의 성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우리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야심차고 성공하는 것이 그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가치를 ‘하찮은 재능’으로 대체하는 짓에 불과하다. 

“개인의 신성한 자족”을 믿으면서 악의 필연성이나 객관적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은 에머슨은 아나키적 비전에 근거하여 “이성은 모든 사람에게 잠재적으로 완벽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인간은 자기 안에 자신의 정부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게다가 양심은 신성불가침이며 우리를 도덕적인 진실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판단하라. 자신을 존경하라”고 가르친 그의 사상에서 각자가 자기 자신 안에 하나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아나키적 주장이 나온다. 즉 우리는 억압적이고 불필요한 국가 제도를 세우기보다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서 개인의 성격을 발전시켜야 한다. 

실제로 에머슨은 『정치』에서 급진 제퍼슨주의자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현자를 교육하기 위해 국가는 존재하고, 현자의 출현과 함께 국가는 소멸한다. 인격의 등장은 국가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현자가 바로 국가다.”

“모든 정치인들은 장사치다”

에머슨의 접근법은 정치 제도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정치인의 동기와 성격에 대한 냉소적 평가에 근거한다. 에머슨은 기성 종교에 회의적이듯 정치인들의 포부와 정치구조의 정당성에 회의적이다. 1842년에 쓴 에세이에서 에머슨은 모든 정치인들은 장사치이자 외판원이며, 우리의 의견을 조작하여 그들의 상품을 판다고 비판한다. "대부분의 통치는 전혀 원칙 없는 정치 상인에 의해, 그리고 거래꾼과 장사치의 격언에 따라 진행된다. 그래서 상인에게 진실인 것은 공무원에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가의 정당성은 의문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우리가 우리의 회의론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한다고 본다. "국가는 의문이 아닌가? 모든 사회는 국가라는 주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것을 싫어하고 그것에 대한 충성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리고 유일하게 설정된 방어는, 비조직으로 나빠질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이는 정치 권위에 대한 일반적인 회의론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심리적인 기질에 의해 견제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국가는 명확하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실용주의적인 이유로 그것에 대한 충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것도 두려워한다. 에머슨은 회의론이 거대한 파도로 밀려오고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우리는 국가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국가가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회의론은 우리를 편안함이나 휴식이 없게 한다. 

특히 정치, 사회, 그리고 순응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 더욱 그렇다. 에머슨이 결론지은 대로 "우월한 정신은 사회의 폐해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제공되는 프로젝트와 동등하게 대립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명한 회의론자는 나쁜 시민이다." 

에머슨의 초월적 개인주의는 우리를 일반 시민들의 정상적인 충성심에서 벗어나게 한다. 에머슨은 분명히 사회와 정치 제도의 즉각적인 파괴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중앙집권적이고 지배적인 구조와 관련하여 깊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에머슨은 천재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인격이 스며들고 우정에 헌신하는 자립적인 개인의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대해 명확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지만 가장 가까운 이름은 민주주의와 아나키다. 

나는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명목주의와 현실주의자』(Nominalist and Realist)에서 민주주의가 아나키가 될 위험이 있지만 그 위험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우울하고 무정부 상태에 이르지만 국가와 학교에서는 모든 사람을 소수의 사람으로 통합하는 데 저항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에머슨은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자립적인 개인주의를 강조한다. 이러한 확언은 그의 근본적인 회의론에서 비롯된다.

 “국가를 다룰 때 우리는 국가의 제도가 비록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지만,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들은 시민보다 우월하지 않고 (중략) 모든 법과 관습은 특정한 경우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모방과 변경이 가능하다.따라서 우리가 더 작은 정부를 가질수록 더 좋고, 더 작은 법과 더 작은 권력을 가질수록 더 좋다. 이러한 형식적인 정부의 남용에 대한 해독제는 사적 인격의 영향, 개인의 성장이다. 정부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상태로 가는 첫 번째 단계는 무력에 기초한 국가가 아니라 사랑에 근거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사랑은 개인을 모든 당사자로부터 분리하고 동시에 그를 인종으로 통합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 또는 재산의 안전보다 더 높은 권리의 인정을 촉진한다.”

에머슨은 "수천 명의 인간이 서로를 향한 가장 웅장하고 단순한 감정은 물론, 한 쌍의 친구 또는 한 쌍의 연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어 미국인에게 “여전히 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지, 편지를 운반할 수 있는지, 힘 있는 정부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조수 행위를 확보할 수 있는지 너무 간청하지 말고 아예 정부를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1850년 도망노예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의 지지를 받자, 그는 특별히 선언했다. “나는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 의해!” 그는 한때 아나키스트 벤자민 터커가 즐겨 인용한 대목을 다음과 같이 썼다. “교회가 사회적 가치가 있을 때/ 국가가 난로를 치울 때/ 그렇다면 완벽한 상태가 온 것이다. / 내 집에서 공화주의자.”

에머슨은 강제적인 정부 대신, 마을회의라는 대중집회를 의사 결정을 위한 포럼으로 제안한다. 그것은 17세기 새로운 영국에서 기능했고, 다시 미국에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머슨의 아나키즘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의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자유자재로 받아들인 그는, 그것에 복종할 의무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안에서 바꾸려고 하거나 철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에머슨은 하버드의 의무적 예배규정을 준수했다.

‘현명한 회의론’을 찬양한 에머슨

에머슨의 사회적 견해는 만물의 단결을 강조한 그의 초월철학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주의 축소판이며 “세계는 한 방울의 이슬 속에 그 자체로 구상된다”는 것이다. 우주는 또한 위대한 심성이나 초월적 영혼에 의해 지배되고, 인간의 영혼은 초월적 영혼과 동일하고, 인간의 본성은 신성한 것이므로 외부의 권위와 전통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우주에는 더 높은 법칙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법칙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러므로 개인은 지도를 위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 의존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에머슨의 좌우명은 '자신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이 연재의 앞에서 언급한 기독교 노예폐지론자나 아나키스트들과는 달리 에머슨의 방법은 대체로 회의론에 근거를 두었다. 에머슨은 몽테뉴에 대한 에세이에서 자신이 몽테뉴와 소크라테스와 연관되어 있는 종류의 소위 "현명한 회의론"을 찬양한다. 에머슨은 이것을 종교(교회)와 정치(국가)에 대한 비판과 연결시킨다. 에머슨의 종교 비평은 경직화된 종교적 전통, 교회, 그리고 성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회의와 비평의 정신은 그를 위에서 고찰한 보다 성경적으로 바탕을 둔 비저항적인 기독교 아나키스트와 대립하게 하는 반면, 에머슨과 기독교 아나키스트들은 노예제도의 폐지와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과 관련하여 비슷한 목적을 공유했다. 

에머슨의 아나키즘 정신은 반드시 활동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다. 그것은 현상 유지에 회의적이지만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에머슨의 아나키즘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소로의 불복종과 조세 저항이라는 새로운 행위를 통해서였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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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2023-01-19 05:56:22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번호 확인 정정을 바랍니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23] 정부를 포기하라! ---> 12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