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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단: 대학 창작교육 무엇이 문제인가(1) 무용
기획진단: 대학 창작교육 무엇이 문제인가(1) 무용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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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다듬는 게 창작교육? … 분석적 언어로 피드백 해야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대학이라는 제도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현실에서 대학교육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호부터 각 예술장르별로 창작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그 문제점을 4회에 걸쳐 짚어보기로 한다.  / 편집자주

한국 창작무용에 대해 “춤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복제품들만 양산된다”는 비판이 계속되면서 대학 무용교육을 근본적으로 재고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용은 몸동작과 음악, 무대미술, 대본, 의상 등을 복합적으로 연출하는 ‘안무’가 그 핵심이지만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와 국민대만 안무가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한예종에서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전공한 3명의 전임교수와 외부초빙교수가 1명이 맡고, 국민대에서는 무용전공자 뿐 아니라 음악, 무대미술, 연극, 문학 전공자들을 다채롭게 섭외한다. 두 학교 외에 나머지 대학들은 무용(학)과 내에 1~2개의 창작과목을 개설하고, 매 학기말 지도하는 게 창작교육의 전부다.

오디션 감독 같은 인상평가 이제 그만

창작전공이 특화된 한예종이나 국민대가 기존 무용과에 비해 긍정적인 평을 얻는 건 당연하다. 한 무용평론가는 한예종이 “한 경향에 집착하지 않고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며 미술적 개념, 음악적 감응술, 건축적 문법을 다양하게 포괄한다”며 높이 산다. 무용인류학자 최해리 씨는 국민대에 대해 “대학에서 최초로 안무가과정을 특화했다”며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두 대학을 제외한 다른 곳은 문제가 심각하다.

ㄱ대에서 안무를 전공하는 A학생은 “인상평가만 듣다가 결국 지도교수의 스타일을 따라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한다. 교수들이 동작의 구성, 음악, 공간활용, 무대미술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보다 “다듬어지지 못했다”, “아카데믹하지 못하다”라고만 평한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세부적인 평가로 작품을 “가위질”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틀에서 잡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수사학적이거나 모호한 용어들이 나열됨으로 인해 학생들이 수용하거나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 “오디션 감독처럼 툭툭 던지는 인상적 단어로 제대로 교육이 되겠냐”는 것. 게다가 이런 지도들은 덜 원칙적이고, 일관성이 결여돼 있기도 하다.

▲한 대학 무용과의 전공공연 모습. ©

같은 대학 B학생의 경우 창작수업을 받으면서 “창조력이 억제되고, 개성이 죽는 것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지도교수가 품평을 할 때 “‘너는 안된다’며 상처주는 말을 하면 창작의욕이 꺾이며, ‘그런 방식은 안된다. 바꿔라’라고 하면 내 작품의 고유성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특히 학생들이 느끼는 불만은 “‘실패할 작품’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B학생은 “학교 안에서 실수도 하고, 안 좋은 작품도 많이 만들어 봐야 하는데, 고전적인 틀에 맞게 완성품을 내놔야 하는 게 곤혹스럽다”고 한다. 

 무용의 언어구조에 접근할 수 있어야

ㄴ대의 C학생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ㄴ대는 작품 발표 이전, 교수의 평가를 통해 다듬어진 작품을 최종적으로 무대에 올리게 되는데, 주로 “음악을 바꿔라”, “동작을 다른 방식으로 해봐라” 등 “논리적 언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추상적인 단어와 직관에 의존해 평가한다”고 한다. 이 경우 학생들은 모호한 상태에서 작품을 교정하는 경우가 90% 이상인데, 이유는 “지도교수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C학생은 안무 수업에서 음악, 무대미술, 의상 등 여러 요소들을 전혀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는데, “유명한 클래식이 춤의 질을 높여줄 것 같아서 택하기도 한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한국 무용이 음악을 다루는 수준이 절망적”이라고 비판하는 김기영 국민대 교수(작곡)는 “여전히 ‘예쁘게 추는’ 기생춤의 멘탈리티에 머물러 있으며, 음악의 원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나 언어학적 성찰 없이 음악들을 차용한다”라고 진단한다.

무용평론가 김남수 씨는 대학 무용교육을 “사고는 부재하고 테크닉에 몸을 길들이는 과정”이라 비판한다. 무용은 본질적으로 ‘언어’의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짜임과 해체를 가르치지 않고 테크닉만 답습하는 교수법 때문에 “한국에선 새로운 안무가가 나올 수 없다”는 진단이다. 이는 “무용작업의 언어화가 절실하다”는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요구와도 결부되는데, 관객들은 무용공연을 상징체계로 파악하면서 해석하고 분석하는데, 정작 안무가들은 이런 중간과정 없이 생뚱맞은 표현들만 나열한다는  것이다.

이에 조 교수는 “안무가들이 작품을 글로 쓰고, 언어적으로 분석하고 객관하하여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조 교수는 “학생들의 작품 중간중간에 개입할 게 아니라, 자유롭게 풀어주고 발표 후 신랄하게 비평하는 피드백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영 국민대 교수는 “국내 대학들이 ‘무용과’인지, ‘무용학과’인지, ‘무용교육과’인지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다”며, “무용수를 길러낼 것인지, 창작을 하는 안무가를 길러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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