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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法용어, 논문 베끼기의 참혹한 결과
일본식 法용어, 논문 베끼기의 참혹한 결과
  • 류병운 영산대
  • 승인 2006.06.17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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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운/영산대·국제법


예전에 한 개그맨이 일본이 독도 문제로 자신을 무척 화나게 해서 분을 삭이느라고 “노바다야끼에 가서 뎀뿌라 쓰끼다시 사카나로 니뽄쇼주를 이찌꼬뿌에 따라 이빠이 마셨다”라고 웃긴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실수로 독도를 일본식 표현인 ‘다케시마’라고 불러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요즘과 같은 때에, 일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거나 동해를 ‘일본해(the Sea of Japan)’라고 부르겠는가. 국제적으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최근 일본 탐사선 문제 등과 관련해서, 우리 국민들이 제일 많이 접한 단어는 ‘영유권’과 ‘국제사법재판소’라고 할 수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란 표현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영유권’이란 단어는 점령과 소(점)유권을 조합하여 “점령해서 소유 내지 점유하는 권리”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일본식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영유권’이란 단어를 독도와 관련해서 애용하고 있다.(그러한 말 중에는 “배(동해)가 ‘일본해’라면 배꼽(독도)의 ‘영유권’이 위태로워진다”는 코미디 같은 것도 있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1998년 新한-일어업협정 제15조의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어업에 관한 사항 외의 국제법상 문제에 관한 체약국의 입장을 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을 일본의 주장을 인정해준 것이 다름없다”라는 어불성설도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인 독도와 관련해서는 ‘영토주권’ 내지 ‘영토관할권’이란 용어가 뜻도 분명하고, 국제법적으로 더 합당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또한, 해방 후 우리는 ‘재판소’라는 일본식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하고 대신 ‘法院’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제는 ‘법원’이란 표현이 국민들에게 보다 친숙하고 더 일반적이다. 따라서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는 ‘국제사법재판소’라는 번역보다는 ‘국제사법법원’으로, 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국제형사법원’으로,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국제해양법원 판사’라고 해야 마땅하다. (물론 ‘헌법재판소’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명명은 일본 문헌에 너무 친숙하던 당시 헌법학자들의 실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바람직하지 못한 일본식 국제법 용어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수많은 일본식 표현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일상적으로 쓰는 ‘亡命’이나 ‘망명권의 보호’라는 표현 대신 ‘庇護’라는 말을 쓰고 있는 국제법 교과서가 다수이다. 자국 주재 외국대사관 등으로 망명하는 경우인 ‘외교 망명(Diplomatic Asylum)’을 ‘외교비호’라고 표현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외국과의 관계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외교적 보호(Diplomatic Protection)’와 혼동될 수 있지 않겠는가.


형법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당방위'로 표현되는 ‘Self Defense’가 국제법 교과서에서는 ‘自衛權’이란 일본식 표현으로 바뀌어 있다. 자위권과 일본의 ‘자위대’는 같은 맥락 아닌가. 앞으로 “독도 ‘영유권’ 훼손하려는 일본 자위대에 대해서 자위권을 발동해야 한다”라는 이상한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Collective Self Defense’를 ‘집단적 자위’라고 부를 때는 정말 일본책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범죄인 인도조약 당사국들의 범인 인도 요건인‘Double Criminality’는 ‘이중 범죄성립’이라고 하면 좋으련만 굳이 어감도 좋지 않은 ‘쌍(방)가벌성’이란 일본식 표현을 써야만 할까.


해방 후 양식이 있는 학자들은 가급적 일본식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데도 왜 요즘 이와 같은 일본식의 법적 표현이 넘쳐나는가? 이것은 선배학자들의 노력이 후배들의 맹목적 일본 논문 베끼기로 말미암아 수포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법조인의 산실인 사법연수원에서도 얼마 전까지 외국어로 오직 '일본어'만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이유가 일본판결문을 참조하거나 베끼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사실 현재의 우리 민법이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것을 거의 베꼈다는 사실은 우리 국가인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것만큼이나 찜찜하다.)


일본식 표현으로 치장된 무성한 말들로 마치 독도가 곧 일본에 넘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위기 상황을 조장하기에 앞서 그러한 언어의 '일본해'물결부터 걷어 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도 언어는 그 나라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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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각발이 2006-07-01 15:21:14
가급적이면=될수록

gurunga 2006-06-20 13:08:58
확실하게 합시다.

wes 2006-06-18 23:28:09
일본식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