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8:55 (수)
실학의 태두 왕정상: 實學의 원류를 찾아서
실학의 태두 왕정상: 實學의 원류를 찾아서
  • 김재호
  • 승인 2023.01.06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향 지음 | 520쪽 | 학고방

 

뛰어난 정치가, 원기일원론으로 실학의 태두가 된 사상가

왕정상은 명(明) 중기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다. 또 문장에 뛰어나 명 전칠자로 불리었고 역사, 천문학, 음악, 역학, 수리 등 다방면에 지식이 뛰어나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근대학자 천라이(陳來)는 『송명리학』에서 ‘왕정상은 과학 정신을 갖춘 철학자다. 그의 학문은 장재의 기론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성리학의 영향도 받았다. 그는 리학과 심학이 사회적․정치적으로 불합리하여 생기는 폐단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과학자적 사유로 실제 경험을 통하여 이론을 정립하였다.’고 그를 평가한다.

이는 왕정상이 당대(當代)에 과학기술 발전의 세계관과 방법론적 논증을 제공한 철학자임을 표명한 것이다. 그와 동시대에 같이 학문을 논했던 벗들은 그를 기일원론자의 철학자로, 문장가로 평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근검절약을 생활화했던 관료의 자세를 가장 칭찬한다. 그는 나랏일을 맡아 사욕을 배제하였고 다만 백성들이 부유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솔선수범했으며 잘못된 정책에는 목숨 바칠 각오로 상소를 올렸다.

그가 한 지방의 포정사로 일할 당시 마을 사람들이 그를 송대 청백리 판관 포청천(包青天)에 빗대어 왕청천(王青天)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개혁을 통한 역사적 진보를 주장한 정치가이며 유학을 달용의 경세관을 중심으로 기일원론의 실체로 새롭게 정립하여 장재의 기학과 청대 왕부지의 기학을 이었다. 그가 정립한 실체달용의 철학은 청대 실학의 태두가 되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