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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방송 접근성’ 괜찮나
장애인 ‘방송 접근성’ 괜찮나
  • 김수아
  • 승인 2023.01.1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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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장애와 텔레비전 문화』 케이티 엘리스 지음 | 하종원·박기성 옮김 | 컬쳐룩 | 364쪽

장애인은 방송에 얼마큼 나오고 어떻게 다뤄지나
재난방송 중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모니터링도 없어

지난해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들의 블루스」와 같은 인기 드라마에 장애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인 「딩동댕 유치원」에는 휠체어 사용자가 등장했다. 장애인 재현에 있어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인 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온라인 이용자들, 그리고 서울시의 강경대응과 이에 따른 장애인에 대한 모욕적 대우를 매일 목도하고 있기도 하다. 장애인이 시민이 아니라는 생각, ‘우리’로부터 장애인을 몰아내려는 인식이 공적 발화에서도 가감없이 표출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떻게 차별없는 사회를 구현해갈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관련된다. 

 

텔레비전의 세계가 사회적 담론의 구성과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는 호주의 상황을 말하고 있지만 한국의 방송 상황을 미루어 볼 때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고 어떤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용성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장애인과 텔레비전 방송과 관련해 크게 재현과 접근성이라는 두 축으로 살펴본다. 재현에 있어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장애인의 등장 비율만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를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해 역경을 극복한, 용감한 장애인이라는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비장애인에게 주는 감화를 강조하는 방식, 전적으로 비장애인에 의한 타자화된 재현이 반복된다면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장애인 비중이 늘어난다 한들 텔레비전 문화는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기여할 수 없다. 

또한, 장애인이 텔레비전을 쉽게 이용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관심도 필요하다. 이 책은 호주가 특별히 텔레비전 접근성에 있어서 자막, 화면해설, 수어방송 등에 뒤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 일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수어방송 의무 비율을 7%로 높여 시각·청각장애인의 방송시청권이 강화된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 방송의 7%를 두고 강화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저 장애에 대한 시혜적 관점일 뿐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방송의 한 장면.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유튜브 캡처

재난방송에서 수어방송 및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되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지 않고 있다. 수어방송이 현재와 같은 형태, 즉 매우 작은 원 혹은 네모 모양 안에 ‘비장애인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를 우선하여 제시되는 것 역시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혜적 관점을 잘 드러내어 준다.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에서는 이처럼 기존 텔레비전 방송이 접근성을 개선하지 못했던 문제를 지적하며 “사실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말 그대로,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늦어지는 이유는 장애인이 시민이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변화나 텔레비전 양식의 새로운 형태가 등장할 때, 입법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장애인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저자는 기술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다수의 장애인 텔레비전 수용자를 면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가진 경직성을 탈피할 가능성이 그래도 높은 웹 드라마에서 달라지는 장애인의 재현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의 개인화 가능한 기술을 활용하여 접근을 개선할 가능성에 희망을 두고 있다. 단순한 기술 희망주의라기보다는, 향후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장애인의 접근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가치 규범을 기술의 빠른 변화와 결합하려는 현실적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 현재다. 텔레비전과 장애라는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이 책이 제시한 실용적 제안들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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