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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왜 교수직 거절하고 은둔했나
스피노자는 왜 교수직 거절하고 은둔했나
  • 강성률
  • 승인 2023.01.1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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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고집불통 철학자들』 강성률 지음 | 글로벌콘텐츠 | 304쪽

자유의 제한 넘어 평안을 고집했던 철학자
교과서적 엄숙함 넘어 인간다운 면모 보여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복도에 나가 무릎 꿇고 앉아 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아이는 사방에 어둠이 깔렸음에도 끝내 손을 내릴 수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순찰을 하던 늙은 소사의 눈에 띄어 그의 등에 업혀가면서도 가지 않겠노라 발버둥을 쳤다. 물론 선생님은 벌을 준 사실조차 망각한 채 퇴근한 뒤였다. ‘고집이 셌던’ 어린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뿌리친 채 문리대 문학부를 지원했고, 2학년 진학 때 철학과를 지망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에서 철학만을 전공한 다음 35년 동안 대학 강단에서 오직 철학만을 가르쳤다.    

 

스피노자(1632∼1677)는 교수직을 정중히 거절하고 평생 안경을 깎으며 철학 공부에 매진했다. 사진=위키피디아

‘고집쟁이 철학자’인 필자는 21번째 철학도서이자 27번째 저서인『고집불통 철학자들』을 펴냈다. ‘동서양 철학자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철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저자 자신과도 닮아 있다. ‘한 철학자의 사상은 그 자신의 삶과 결코 유리될 수 없다’는 믿음으로 저자는 그동안 철학자들의 삶과 에피소드에 대해 깊이 연구해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실이 이 한 권의 책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제1장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에서는 아들을 사형에 처한 복돈(중국 진나라 사람. 묵가 집단의 우두머리)과 자기가 만든 법에 따라 죽은 공손앙(상앙),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치며 기꺼이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 그리고 어머니에게 소송을 걸어 유산을 타낸 쇼펜하우어가 등장한다. 제2장 ‘거절의 명수들’에서는 “신령한 거북이라면 죽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겠는가, 아니면 살아서 물속을 헤엄치고 다니겠는가?”라 물으며 벼슬을 거절했던 장자, 왕의 부름에 50번의 사퇴서를 냈던 퇴계 이황,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이나 가리지 말아주시오!”라며 부와 권력을 뿌리친 디오게네스, 대학 교수직마저 거절하고 은둔의 생애를 보낸 스피노자,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자원하여 노벨문학상마저 거절한 사르트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3장 ‘출세의 달인들’에서는 이성계와 이방원 사이를 넘나들며 권력을 거머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뇌물을 쓰며 최고위직까지 승진했다가 런던탑(감옥)에 갇힌 베이컨, 나치 정권 아래에서 대학 총장을 역임함으로써 철학사에 오점을 남긴 하이데거가 그 빛바랜 얼굴을 드러낸다. 제4장 ‘철학자와 자녀’에서는 아예 자식을 낳지 않으려 했던 철학자들, 자녀들에게 혹독했던 철학자, 그리고 자녀를 잃은 슬픔에 몸부림쳤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제5장 ‘4대 성인과 제자들’에서는 세계 4대 성인과 그 위대한 제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6장에서는 ‘우정의 상징’인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 친구이자 논적(論敵)이었던 장자와 혜시, 막역한 친구 사이였던 박지원과 박제가, 마르크스가 인간적·재정적으로 크게 의존했던 엥겔스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가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함께 전개된다. 

제7장 ‘우정이 철천지원수로’에서는 동문수학한 사이였던 이사가 친구인 한비자를 죽게 만든 이야기, 서로 간에 유쾌하지 않은 관계로 끝나고 만 흄과 루소, 경쟁자였던 데카르트와 파스칼, 부지깽이를 들고 포퍼를 위협하기까지 한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8장 ‘긴장과 경쟁 관계’에서는 유학의 거봉 주자와 심학(心學)의 대가 육상산의 애증,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조선 왕조를 개창(開敞)해나간 정도전의 엇갈린 인생행로, 세계적인 성리학자 퇴계가 젊은 유학자 고봉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독일 철학계를 양분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서로 다른 인생 역정 등이 다루어진다. 

동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들 역시 하나의 인간이었기에 실수나 흠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위대하다고 평하는 것은 그 모든 약점들을 극복하고 인류에 불멸의 지혜, 통찰력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교과서적인 엄숙함을 벗어나 있는 『고집불통 철학자들』은 철학자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하여 청소년들에게는 용기를, 성인들에게는 흥미를 제공하리라 기대된다.   

 

 

 

강성률
광주교대 명예교수·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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