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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불확실성’이 확산…학문간 균형·협력이 살 길
‘불안·불확실성’이 확산…학문간 균형·협력이 살 길
  • 김재호
  • 승인 2023.01.0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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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로 본 인문사회·과학기술의 2023년

“지역별·이념별·가치별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기술패권 경쟁, 끝나지 않은 팬데믹 등으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졌다.” 
“학문의 균형발전은 완전히 무너졌고,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젊은 학자들이 고갈되고 있으며,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교육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신년사를 발표한 인문사회·과학기술 기관·단체장들은 올해가 ‘불안·불확실성’이 만연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는 서로 반목하는 정치·사회, 치솟는 물가와 금리 등으로 인한 경기침체, 편 가르기와 대립하는 사회갈등으로 인해 불안하다. 국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지속, 지리적으로 심화되는 경제 블록화, 변이를 계속 발생시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졌다. 

 

사진 왼쪽부터 가나다 순으로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위행복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이사 장,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다. 사진=각 기관 홈페이지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인플레와 고금리는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세계경제의 부진 속에서 우리 경제 역시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공동체 구성원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요청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올해가 지난해보다 훨씬 더 힘든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제조 강국 코리아를 낳았던 세계화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고, 지역별·이념별·가치별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기술패권 경쟁, 끝나지 않은 팬데믹 등으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자살률’, ‘노인 빈곤율’, ‘남녀 임금격차’ 등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열악하다. 위행복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이사장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오래 전에 무너졌음을 알려준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토론이 정부에 의해 외면당해 온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소외와 차별 해소에 기여할 학술연구지원을 정부가 방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이 갈라치기와 선동의 수단으로 악용되기까지 하며, 시민들은 ‘대립’과 ‘혐오’를 선동당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고통받고 있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이사장은 “여성과학기술인 양성, 지원 및 활용을 통하여 저출산 시대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출연(연), 산·학·연의 개방형 협력 강화

‘불안·불확실성’이 만연한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김복철 이사장은 올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임무 중심 국가전략기술 육성의 거점’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역소멸을 해결할 수 있는 ‘지역혁신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약 2만3천 명이 있는 출연(연)은 “융합과 협력, 산·학·연 간 개방형 협력을 강화”하고, “개방형 융합생태계 구축”에 힘쓸 필요가 있다. 출연(연)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각자도생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다.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없다.” 김 이사장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미증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낡은 지도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올바른 방향성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한국연구재단은 시스템과 생태계 조성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은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약 28%인 8조4천억 원을 활용하여 연구자 중심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며 우수한 연구 성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올해 과업으로 “산·학·연·민·관 등 다양한 주체가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과학기술 시스템에 대한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특히 그는 “불확실성이 높은 선도형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주제 발굴과 유연한 기획·운영이 필요하다”라며 “선도형 지원체계로의 전환을 통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임무중심 전략기술을 확보하고 탁월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창의적이고 건전한 학술·연구 생태계를 조성도 중요하다. 특히 지난해 교수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강조됐던, 연구성과에 대한 질적 평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연구재단은 초학제적 연구 협력을 위한 기틀을 지속적으로 마련해나갈 예정이다. 이 이사장은 “학문 분야 경계를 넘나드는 협력 플랫폼을 기반으로 인문사회 분야 연구가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과 지역 협력을 기반으로 한 인재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문애리 이사장은 “다양성이 존중 받고 지속가능한 과학기술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기본법은 인문사회 발전기반 수립의 주춧돌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인사총)는 올해로 출범 3년째를 맞았다. 위행복 이사장은 인문사회 학술연구를 국가적·제도적으로 지탱해줄 ‘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그는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인문사회 발전기반 수립의 주춧돌을 놓고, 연구안전망을 강화하며, 젊은 학자들의 고통을 덜고자 한다”라며 “또한 학술정책연구전문기관 설립, 국가급 학술위원회 구성, 그리고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발전에 공헌한 분들을 기리고 우대할 제도와 기구 마련 등등, 인문사회 분야의 미래를 열어갈 제반 활동의 법률적 기반을 확보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2017년~2021년) 국가 R&D예산이 40% 넘게 증가했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연구예산 증가 규모는 7%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결과 중앙연구비 수혜율이 인문학 분야는 과학기술 분야의 약 5분의 1, 사회과학 분야는 과학기술 분야의 약 3분의 1에 그치고 있다. 위 이사장은 “학문의 균형발전은 완전히 무너졌고,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젊은 학자들이 고갈되고 있으며,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교육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대학 인문사회 분야의 위기는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의 붕괴를 낳을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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