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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정치독재에 맞서 빈 들에서 사납게 외치다
야만의 정치독재에 맞서 빈 들에서 사납게 외치다
  • 이종성
  • 승인 2023.01.1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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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㊸_씨알 함석헌

대전 현충원에는 ‘애국지사 함석헌의 묘’가 있다. 연천에 있던 묘를 2006년에 이장해 온 것이다. 묘비석에는 함석헌이 남긴 시가 새겨져 있다. “나는 빈 들에 외치는 / 사나운 소리, 살갗 찢는 아픈 소리 / 나와 어울려 부르는 너희 기도 품고 / 무한으로 갔다 / 내 다시 돌아오는 때는 / 이 나 소리도 없이 / 고요한 빛으로 오리라!”

빈 들에서 사납게 외치다가 고요한 빛으로 올 사람, 함석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는 숙명처럼 저항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함석헌의 저항은 그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의 무단정치기를 살아야 했다. 고난이 한국역사와 함께한 것처럼 그의 일생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고난 속에서도 그는 새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씨알 함석헌은 생각하는 민 중이라야 산다고 강조했다.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함석헌은 평생 불의와 맞서며 씨알 앞에 서서 그들을 계몽하여 이끌어나간 리더십의 소유자다. 여기서는 함석헌 리더십의 몇 가지 의의를 말해보기로 한다.

첫째, 함석헌은 씨알의 리더십 정신을 통해 한국역사를 풀이했다. 씨알이란 존재의 핵심으로 민중을 의미한다. 지금이야 다양한 사관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지만, 그의 시대만 해도 역사는 지배자의 것이요 왕조의 소유물이었다. 함석헌은 기존의 역사가 도치된 역사였다고 보고, 이를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씨알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역사를 기획하고 서술한 것이다. 함석헌에게서 씨알의 역사는 뜻의 역사이며, 성서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던 고난의 역사다. 그는 역사에서 고난이 제시하는 뜻을 이해하고 이겨내는 것이 씨알의 사명임을 강조한다.

둘째, 함석헌은 인간혁명의 철학을 통해 참된 인간상을 지향하는 인간 주체적인 리더십을 제창한다. ‘누구의 나와도 통할 수 있는 참나’의 중요성을 짚어낸 것이다. 그는 인간혁명이 생각함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그래서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고 한다. 씨알은 생각하는 것이며, 생각하면 씨알이지만, 생각하지 못하면 쭉정이라고 한다. 그 씨알의 알은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씨알은 알이 들어와야만 산다고 한다. 인간은 무엇을 지향하며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셋째, 노장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함석헌은 무위자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비판의 리더십을 제창한다. 그는 노장을 은둔의 철학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권력자들의 욕망과 전횡, 무지를 비판하는 방편으로 노장을 이해한다. 정치를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또한 씨알을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라는 ‘재유(在宥)’의 철학으로 이해한 것은 모두 노장을 본받은 것이다. 함석헌은 노장사상을 빌어 당시 군사정권에 대항했다. 그들이 휘두르던 야만의 정치는 노장이 말한 인위의 극치였다고 판단한 결과다. 노장의 무위가 위정자를 겨냥한 정치담론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 공명한 함석헌은 노장에게서 지배와 피지배가 사라진 평등의 세계를 읽어낸 것이다.

넷째, 함석헌은 하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인간 상호간의 소통을 요청하는 리더십을 제창한다. 함석헌은 자신을 하늘을 믿는 사람, 즉 ‘신천옹’이라고 했다. 신천옹은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한자식 이름이다. 이 새는 보들레르가 노래한 것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면 그 모습이 아름답기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인간세에 내려오기만 하면 하찮은 존재로 격하되고 마는 존재다. 함석헌은 이 새를 바보새라고 했고,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그러나 세상이 모두 비웃는다 해도 하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하늘 같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 상호 소통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래했다.

한국의 간디라고 불린 함석헌은 자신이 ‘정치주의’라고 규정한 모진 정치적 현실과 투쟁하다가 생을 마쳤다. 인간의 야만이 만들어낸 정치주의는 곳곳에 전쟁을 발생케 했고, 개발독재를 통한 생태 환경의 파괴를 자행해왔다. 함석헌은 평생 정치주의자들과 맞서 싸우며 바보새처럼 ‘무저항적 저항’을 통해 이 땅에 빛과 희망을 선사하고자 한 인물이다. 우리의 주변에서 바보새 같은 사람을 더 이상 찾기 어려워진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 함석헌과 같은 사람과 함께 빈들에 다시 서볼 수 있을까?

 

 

이종성
충남대 철학과 교수

현재 충남대 인문학연구원장과 율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장자연구로 충남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저서로 『믿음이란 무엇인가』(2014), 『율곡과 노자』(2016), 『맨얼굴의 장자』(2017), 『역사 속의 한국철학』(2017), 『동양필로시네마』(2019), 『위진현학』(2001, 공저), 『21세기의 동양철학』(2005,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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