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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대학교재출판 현장을 가다 (上) 불황의 골 깊어가는 교재출판
흐름 : 대학교재출판 현장을 가다 (上) 불황의 골 깊어가는 교재출판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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類似교재들 출혈경쟁 심해 … 학술서 비중 대폭 줄어

대학교재 출판사들이 어렵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성행하는 불법복제 때문이다. 이만재 교육과학사 상무는 “불법복제로 인해 침해당하는 시장 점유율은 30% 정도다”라며 “수강생이 50명인 경우, 교재는 10부 나가면 많이 나간 것”이라고 말한다. 전산학 분야 교재를 주로 내 온 상조사 영업팀원은 “수강생이 20명인 과목에서 사용되는 교재가 단 1부 팔리는 경우도 있다”며 “학생들이 돈을 모아 1부를 구입한 후 제본해서 교재를 돌려보기 때문”이라고 기막혀한다.


구조적 요인도 있다. 신입생 모집이 안 되는 전문대나 지방대의 일부 학과들이 통폐합되면서, 관련 학과에서 다루던 대학 교재들이 갈 곳을 잃은 것. 식품가공학과, 건축공학과, 안전관계학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학문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보니 예전처럼 책 한 권이 10년씩 교재시장의 1위를 선점하는 현상도 사라졌다. 같은 비용을 투자해도 대학교재가 시장성을 갖는 기간이 많이 단축된 것.


강학경 시그마프레스 사장은 “자기가 쓴 책을 자기만 보는 풍조도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연세대 교수가 쓴 책, 고려대 교수가 안 보고,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갖췄더라도 전문대 교수가 쓴 책은 4년제 대학에서는 안 본다”라고 말한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학제적 연구’도 교재 출판사에 어려움을 더한다. 다학문적 내용을 전문적으로 갖춘 대학 교재를 ‘뚝딱’ 만들어내기 어려울뿐더러, 다학문적 과목의 경우, 한 권의 전공서적보다는 다양한 책들의 내용과 영화, 음악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들이 융합된 ‘수업자료’가 훨씬 효율적이다. 책이 통하지 않는 수업과 과목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교재 시장의 ‘파이’ 자체가 작아지다 보니 소위 ‘되는 집’에만 몰리는 것도 ‘대학 교재 출판’의 어려움을 더한다.  박용호 학지사 상무는 “덕분에 한 교육 과정에 비슷한 내용의 교재가 과잉 공급돼 문제다”라고 밝혔다. ‘교육 심리’, ‘교육학 개론’ 등 비슷한 책이 한 출판사에서도 5~6종씩 되며, 여러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덤벼들어 동종 책들이 홍수를 이뤄 홍보조차 힘들 지경. 이만재 상무는 “교육학 분야는 ‘임용고시’로 인해 수요가 꾸준히 있다보니 관련 수험서나 교직과목 전공서적 시장에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번역서의 경우에도 외국에서 잘 팔렸던 책에 국내 단행본 회사들이 서로 판권을 따내기 위해 몰리다보니 외국 도서 저작권료가 20~30%까지 올라갔고, 덩달아 전공서적 저작권료도 올라가서 제작 비용이 증가했다. 청문각 김한승 대표는 “현재 교재 시장이든 무슨 시장이든 출판사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집필 의지도 현저히 줄었다. 일단 인세수익이 낮아졌고, 게다가 업적평가에서 교재 한 권 쓰는 점수는 논문 한 편과 거의 비슷하고, 번역의 경우 더 낮아 의욕이 상실되고 있는 것 같다고 출판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좋은 원고도 줄어들고, 수익성이 나빠져 교재 출판 자체가 리스크가 크다보니 양질의 대학 교재 개발이 더욱 더 요원해지고 있다.  


실제 신간종수도 대폭 줄었다. ‘교육과학사’는 외환위기 때도 한 해 1백20종을 냈는데 작년에는 90여종을 냈으며 그 중에서도 개정판이 1/3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상조사는 90년대 후반만 해도 연 30종은 발간했는데 지금은 1년에 10여종이라고 밝혔다. 지구문화사 역시 2001년에는 학술서 비중이 80%였다면 지금은 40%로 줄었다.


그러나 양서 개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문화사가 출판한 ‘중국의 경영전략’(소영일 지음)이 그런 경우다. 저자는 중국으로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30%가 도산한다는 사실에 착안, 세계 2천여개 기업 사례를 분석하고, 중국의 정치·법률·경제 환경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중국이라는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에 대해 1년간 6백여쪽의 책을 써냈다. 주병오 지구문화사 대표는 “이 책은 소위 잘 나가는 단행본 출판사들에 먼저 제의했지만 거절당하다가 우리 출판사까지 오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학교재 출판사들의 생존 전략은 ‘블루오션’ 지대를 찾는 것이다. 강학경 시그마프레스 사장은 ‘소규모 다품종 전략’을 제시했다. 시그마프레스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학교재 출판사’다. 강 사장은 “대학교재출판의 양대산맥이라고 하던 출판사들조차 어려움을 겪는 것은 10년 전과 5년 전, 그리고 현재를 비교해봤을 때 ‘변화’를 감지할 수 없는 출판 방식 때문이다”라며 “더 이상 한 권의 책으로 대량 판매하는 시대는 지났고 교재출판에도 ‘소규모 다품종’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규모 다품종을 위해서는 다른 출판사들이 뛰어들지 않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시그마프레스는 특수교육 분야와 지구과학 분야 등을 특화해 교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대상을 확대해 심리학 책을 심리학 연구소에 보급하고, 다양한 상담법 관련 책들을 중·고교 교사들에게까지 보급하는 등 시장 다변화를 꾀했다.


지구문화사 역시 ‘흡착제’라는 화공 관련 책을 출판하기 위해 미리 관련 공장 등에 수요를 파악한 후 책을 출판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그만큼 전공 서적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시장을 넓혀나간다면 수익성이 생긴다는 말도 된다.


다산출판사는 ‘부동산 분야’를 틈새시장으로 보고 있다. 강희일 다산출판사 대표는 “참여정부의 정책 때문에 부동산 중개업은 힘들어지고 있지만 학문으로서의 ‘부동산학’이 점차 대학에서 강세를 보여 관련 책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지사의 경우 교재시장의 위기요인을 “교재와 부교재의 상호보완 관계가 붕괴”된 것에서 찾는데, 기존의 소프트한 내용을 담은 부교재성 책의 타깃을 일반 대중으로 변화시키려 노력 중이다. ‘마음을 나누는 미술치료’, ‘자기 주장과 멋진 대화’ 등이 그 예다. 또한 파워포인트 자료 등 다양한 수업보조자료로 이용도를 높이고 있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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