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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우
  • 승인 2023.01.0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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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96쪽

“이것이야말로 이야기의 영역이다.
죽음이 이야기를 영속하게 할 것이니……”

매듭지어지지 못한 이야기, 이야기꾼의 실종
반복되고 중첩되는 기묘한 사건들의 잔영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집 『하바롭스크의 밤』 『우리가 주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재한 유재영의 신작 소설집 『도메인』이 출간되었다. 영역(領域)을 뜻하는 ‘도메인’이라는 제목 아래 「영」 「역」 두 작품을 묶었다. 낯설고도 짜릿한 장르적 상상력의 쾌감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이다. 눈에 익은 소재는 아차 하는 순간에 변주되고 이야기의 주체는 수시로 바뀐다.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의 레퍼런스가 되며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영」은 시종 독자로 하여금 불길한 상상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부부가 캠핑을 떠나는 길에 일어난 영문 모를 사고, 어딘가 수상쩍은 캠핑장 관리인, 캠핑장을 서성거리는 개와 고양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은 지인들 사이에 오고가는 무서운 이야기, 여러 구의 자살한 시체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보석의 갑작스러운 발견 등 당장에라도 살인 사건이라도 터지기에 맞춤한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말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한 의문 또한 해소되지 않은 채, 이야기는 촉발되고 잔영으로 남는다.

「역」은 여러 유튜브 영상/스크립트를 비롯한 이야기의 형식들이 상호 간 ‘레퍼런스’로 작용하면서 중첩되는 소설이다. 소설 창작 온라인 강의를 듣는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고등학교 선배인 영역의 유튜브 채널 ‘인사이드 인터뷰’를 ‘레퍼런스’로 삼는다. 그러면서 영역이 자신의 채널에서 ‘레퍼런스’하려는 ‘스토리무브먼트CA’의 재생 목록 시리즈에서 ‘크리에이티브 캐슬: 사라 윈체스터의 성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알게 되고, 해당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사연도 접하게 된다.

상호 참조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이야기는 하나같이 미완이거나 실체를 알 수 없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이야기의 주체들인 채널 운영자와 레지던시의 아티스트들 또한 자신이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따라 실종되어버린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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