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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실패를 다시 생각하다
근대화의 실패를 다시 생각하다
  • 김정규
  • 승인 2023.01.04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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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_『해금』 | 김석균 지음 | 예미 | 308쪽

중국, 바다에 스스로 빗장 치며 서양과 소통을 금지
근대화 추진한 일본의 유신지사·독일제국 창건한 융커

새해 경기 전망이 암울하다. ‘R(경기침체)의 공포’가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미국 연준은 지난해 12월 14일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또 인상했다. 달러 체제에 묶여 있는 한국은 대출금리 7%대, 소비자물가상승률 4~5%대의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구축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학구도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왜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이 세계인의 표준 시간이 되었는가? 우리는 어쩌다가 서양 옷을 입고, 서양인이 발명한 차를 타고, 서양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게 되었는가? 세계의 중심이라 자처했던 중국은 어쩌다가 ‘서양 오랑캐’에 굴복하여 치욕의 한 세기를 보냈는가? ‘사무라이 국가’ 일본은 어떻게 해서 근대화에 성공하여 동양의 패자가 되었나?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동아시아 해양전문가 김석균 한서대 교수(해양경찰학과)는 최근 펴낸 『해금(海禁)』에서 근대 동서양이 취했던 ‘해금(海禁)’과 ‘개해(開海)’를 키워드로 하여 답을 찾는다. 해금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 즉 ‘바다로 나아가 오랑캐와 소통하는 것을 금한다’는 뜻으로, 명·청과 조선, 일본이 취했던 반해양·반무역 정책이다. 이에 반해 서양의 ‘개해’는 바다로 눈을 돌려 무역로를 개척하고 미지의 땅을 정복하는 해양진출·친무역 정책이었다.

서양이 대양으로 진출하는 동안 중화세계는 바다에 스스로 빗장을 쳤다. 그 결과는 학문, 기술, 과학 등 상당한 부분에서 동양에 뒤져 있었던 서양의 대역전이었다. 여기에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의 형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확산에 힘입어 오늘날까지도 서양 우위의 세계사는 지속되고 있다.

해금을 하다가 뒤늦게 개해의 길로 들어선 동북아 3국의 운명도 제각각이었다. “일본은 막부 말기에 서세동점의 위기가 닥쳐 새로운 사회질서가 요구되자, 위기 위식을 강하게 느낀 많은 젊은 사무라이들이 사회 변혁에 몸을 던지면서 근대화의 주역이 되었다. ‘유신지사’라 불린 이들은 대부분 하급무사 출신으로서 두터운 변혁세력을 형성하며, 외세의 위협 앞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개항하는 막부 체제에 분노하여 막부 타도 운동에 나섰다.”, “실력 양성을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근대적 세계관을 장착하고 신속하고 전면적인 정치, 사회, 문화의 개혁에 나섰다.”

조선은 대원군 섭정 10년 동안 쇄국을 고수하다가 고종이 친정을 시작한 1873년부터 조금씩 개화를 추진한다. 실학을 계승한 일부 관료와 지식인들이 개회의 필요성에 눈을 떴지만 세력은 아주 미미했다. “일본의 유신지사나 독일제국을 창건한 융커(Jungker)와 같은 근대화를 추진할 계급이나 계충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국왕 중심의 개화였는데, 그마저도 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세력을 쫓아서 친일, 친청, 친미, 친러 노선을 취하며 개화와 보수 정책 사이를 오갔다. 개혁을 위한 제대로 된 세력과 그에 호응하는 백성이 없었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의 원료를 구하기 위해, 신기술로 만들어낸 상품을 팔기 위해 무역을 필요로 했고, 제국주의를 초래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서세동점의 구도가 세계를 틀어쥐고 있다. 디지털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못지않은 이 대전환기의 시대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해금’과 ‘개해’는 어떤 것일까? 새해에는 우리가 어떤 가치와 전략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서로 토론하고 지혜를 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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