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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무’가 펼치는 철학…결국 생명학
‘존재와 무’가 펼치는 철학…결국 생명학
  • 이기상
  • 승인 2023.01.0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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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하이데거 극장 1·2』 고명섭 지음 | 한길사 | 784·864쪽

하루에 150쪽 읽으며 4주에 걸쳐 완독
서양철학의 종말 주장…재탄생은 어떻게

20세기 철학을 빛낸 두 철학자가 있다.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이 그들이다. 둘 다 1889년생이다. 한 사람은 독일 슈바벤의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났고, 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대도시 빈에서 태어났다. 20세기 대표적인 두 천재 철학자이다. 두 사람 다 어렵기로 유명한 철학자들이다. 어렵긴 하지만 20세기 철학의 판도를 뒤흔든 두 사람이기에 이들 천재 철학자에 대한 연극 정도는 있을법하다. 누가 감히 그런 일에 도전하느냐가 문제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 거기에 도전했다. 철학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기자이자 시인인 고명섭이라는 사람이다. ‘하이데거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판을 벌였다. 출판계와 철학계에서는 대단히 도전적인 큰 판이다. 1권 781쪽, 2권 861쪽, 도합 1천642쪽의 방대한 책이다. 내가 본 가장 두툼한 ‘하이데거 평전’이다. 

 

나는 일생을 하이데거 철학에 판돈을 건 사람이다. 1975년부터 하이데거 철학에 매달렸으니 햇수로 48년이 된 셈이다. 국내에서 나만큼 하이데거 철학에 대해 글을 쓰고 그의 원전들을 번역한 사람은 없다. 80을 바라보는 나는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하이데거 철학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책이 단 한 권인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여기까지 왔다. ‘하이데거 극장’이라는 판이 가능한 것도 내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서평에 대한 부탁이 들어왔을 때 서슴지 않고 수락했다. 책이 도착했을 때 그 방대한 분량에 깜짝 놀랐다. 서평으로 원고지 10매를 작성하란다. A4 용지 한 장 조금 넘는 분량이다. 대충 형식을 갖춰 간단하게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일생을 “하이데거 철학”에 바친 사람인데 이런 일생일대의 도전적인 책을 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책 전체를 읽어보고 서평을 쓰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 읽기에 들어갔다. 다른 것 다 팽개치고 오로지 이 책에만 매달렸다. 체력이 예전같이 않아 오랫동안 책만을 볼 수는 없었다. 오래 보면 백내장 수술을 한 눈이 아프고 글자들이 아른거려 더 이상 읽어갈 수가 없었다. 하루에 150쪽 정도 읽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고 매일같이 실행해나갔다. 그렇게 4주를 완주해서 드디어 책을 다 읽었다. 이제 한 쪽 반짜리 서평을 써야 한다. 

4주 동안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을 했다. 나의 지난 50년 동안의 공부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에게 하이데거는 무엇이었으며 또 남은 인생에 무엇이겠는가? 하이데거와 함께 한 인생 전반에 대한 복기가 저절로 벌어졌다. 철학 전반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일어났다. 무엇을 위해 살았나? 남은 인생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도 함께 피어났다. 내게 이런 생각들이 피어나게 한 것만으로도 내가 이 책에 들인 공은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다. 나로 하여금 ‘철학’하게끔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현대인에게 하이데거 철학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서양철학의 종말, 더 나아가서는 철학의 종말까지 주장한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우리 시대가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철학 이후의 시대 ‘철학’은 어떻게 재탄생해야 하는가? ‘하이데거 철학’을 딛고 나아가야 할 우리의 길은 무엇이며 어디인가? 

나 스스로 하이데거로부터 ‘철학하기’, 즉 철학의 방법론을 배웠다고 말하며 다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방법론을 제대로 활용해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내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서양 중심의 철학이 아닌 지구촌 시대에 걸맞은 철학을 탄생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한국적인 철학함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민중신학’을 알게 되었다. 다석 류영모의 ‘텅빔’, ‘빈탕한데’의 ‘무(無)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존재와 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나가는 철학은 생명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김지하 시인의 생명사상을 공부하며 ‘생명학 정립’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탈근대 철학의 한 방향인 이성중심의 철학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사건학’에 관심을 가지며 서양의 ‘존재사건’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존재사건들을 다 고려하고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으며 이제 철학은 ‘문화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촌 시대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공존하며 서로 살리며 어우러질 새로운 세기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제 그에 걸맞은 다원주의 문화철학이 태동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성중심과 인간중심의 철학이 아닌 대안적 철학은 감성과 지성, 이성과 영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통합적 문화인’을 지향하는 문화철학이어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21세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리라!

 

 

 

이기상
한국외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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