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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_한국사회는 보수화되고 있는가
시론_한국사회는 보수화되고 있는가
  • 임혁백 고려대
  • 승인 2006.06.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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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던 한국사회의 보수화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2004년 총선에서 한국의 진보가 행정부뿐 만 아니라 의회권력까지 장악함으로써 정치적 정점에 도달했을 때부터 절치부심 재기를 꾀해왔던 한국 보수의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미 보수화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조선일보와 갤럽의 국민의식조사는 2006년의 한국 국민은 2003년이나 2004년보다 보수로 회귀했으나 여전히 2002년보다 훨씬 덜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한국 국민의 이념성향은 보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보아야지 보수화되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겨레신문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조사에 의하면, 2002년에 비해 한국국민 가운데 이념적으로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30.4%에서 최근 47%에 이르고 있으나 보수라고 응답한 비율은 43.8%에서 36.2%로,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은 25.8%에서 16.4%로 모두 감소하고 있다. 왜 이러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가?  대다수의 국민들은 무능한 진보, 부패한 보수에 모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에게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국가권력을 상실하였고, 시민사회 내에서도 헤게모니를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마침내는 지역주의를 매개로 지켜온 마지막 보루인 의회권력마저 빼앗긴 ‘상실의 10년’이었다.


  지난 20세기 후반기에  한국의 보수는 이념적으로는 냉전체제를 지탱해 준 반공주의, 정치적으로는 호남배제의 지역 패권주의,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 모델에 기초한 국가주도에의 의한 성장우선주의에 의거하여 한국의 주류를 형성해왔다. 냉전체제 하에서 압축적으로 산업화를 실현해 내었고 한국 역사상 최초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 내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건국과 분단, 산업화의 시기를 주도해 왔던 한국의 보수세력은 80년대 이후 탈냉전, 민주화, 세계화, 지식정보화라는 패러다임적 대변환 과정 (Great Transformation)에서 서서히 헤게모니를 상실해 왔다.


  이념적으로 한국의 보수가 기반하고 있던 반공주의는 1989년의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국제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됨으로써 한반도에서도 이념적 추동력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한국의 보수는 심각한 이념적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보수정권인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통해 구 소련과 중국과 차례로 수교하고 1991년 한반도 냉전해체의 기념비적 문서라고 할 수 있는 남북화해와 협력에 관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스스로 반공을 해체하는 작업을 벌임으로써 한국 보수의 이념적 준거로서 반공은 그 지위가 쇠락하게 되었고, 김대중 정부에 의해 6.15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그 후 본격적으로 대북 화해와 협력정책이 전개됨으로써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점차로 축소되었다.


  정치적으로 한국의 보수는 호남을 배제하고 포위하는 영남패권적 지역주의에 의해 87년 민주화 이후 선거경쟁이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남지역패권주의는 일차적으로는 1997년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고 있던 김대중의 집권으로 타격을 받았고, 일시적으로는 김대중의 집권에 대해 반발하는 영남을 결속시켜 2000년의 총선에서 의회권력을 다시 장악하는 반전을 이룩하였지만, 2002년의 대선, 2004년의 총선에서 한국의 보수는 연이어 패배함으로써 지역주의를 동원하여 집권할 수 있다는 한국 보수의 신화는 깨어졌다. 더구나 양대 선거에서 세대 균열이 지역 균열을 대체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서 선거에 있어서 지역주의의 위력은 약화되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한국의 보수는 고전적 시장주의를 옹호하는 서구의 보수와는 달리 국가 주도로 국내시장을 보호하여 재벌을 육성하고 모든 자원을 재벌에 집중시켜 그들로 하여금 공격적으로 해외 수출에 나서게 하는 신중상주의적 성장모델을 추구하였고 ‘박정희 모델’로 불리기도 하는 ‘발전국가’가 주도하는 성장모델은 ‘한강의 한국을 단시간 내에 빈곤에서 해방시켰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부상시키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박정희 모델은 흔히 ’IMF 위기‘로 불리는 1997년 말 6.25 에 버금가는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파산하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한국 보수의 경제적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보수는 이념적으로는 탈냉전, 정치적으로는 지역주의의 약화와 세대균열의 중심부상, 사회경제적으로는 발전국가 모델의 폐기와 신자유주의의 등장이라는 구조적 변화에 의해 정체성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점차 사회적 담론 형성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국가권력, 의회권력을 빼앗기고 시민사회 내에서 헤게모니의 우위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가 보여주듯이 한국의 진보는 정점에서 다시 추락하고 있고 한국의 보수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보수의 부활은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추동되었다. 첫째, 한국 진보의 실패가 한국의 보수에게 부활이라는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한국의 진보는 정권을 장악했을 때, 통치능력 (governability)을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정권은 세계화의 도전에 대응하여 성장촉진형 분배정책, 분배개선형 성장정책의 개발을 통해 경제영역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데 실패하였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나 동반성장이라는 수사학은 요란했으나, 성장은 부진했고 분배상황은 악화되었다.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진보의 지지기반은 약화되었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청년 실업층이 증가하면서 진보의 강고한 지지층을 형성해왔던 20대의 이반이 일어났다.


  한국의 진보가 연속 집권하게된 이유 중의 하나는 탈냉전시대에 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평화, 통일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국민대중에 각인시킨데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가 남북공조와 한미공조간의 균형을 통한 남북문제 해결공식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 북핵사태와 부시정권 등장이후 한반도 평화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게 되었고 40대와 50대의 친미보수화 경향을 재촉하였다.


  마지막으로 통치스타일이 진보정권으로부터 민심을 이반시킨 요인 중의 하나이다.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개혁의 이름으로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었다. 말로는 진보를 외치면서 정책은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언행의 불일치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였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상처받은 열패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함이 부족하였다. 한국의 진보정권은 생활정치에서 민생을 챙기는데 실패하였고 이는 진보의 이념적 헤게모니에 상처를 주었다.


  둘째, 한국 보수의 부활은 일정 부분 보수의 자기 혁신노력에 기인한다. 연이은 선거패배 이후 한국 보수의 일각에서 반공과 숭미, 국가주도의 성장우선주의, 영남지역주의를 신봉하는 구 보수노선으로는 정권을 재탈환한다는 것은 무망하다고 주장하면서 합리적 보수, 발전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근간으로 보수를 재건하려는 보수혁신프로젝트가 일어나고 있다. 선진화 개혁을 주장하는 박세일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보수는 구 보수의 냉전반공에서 자유주의로,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 폐쇄적 민족주의에서 세계주의로 이념을 대체함으로써 보수적 유권자들을 결집하고 중도세력을 끌어 와야 한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한나라당이 보수혁신프로젝트를 채택하여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재탈환하려할 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음 선거를 계기로 보수와 진보간의 이념적 헤게모니의 싸움이 본격화될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권력의 향방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이 형성되리라는 것이다.

▲임혁백 / 고려대·정치외교학 ©

  필자는 미국 시카고 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고, 현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IT정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시장, 국가, 민주주의'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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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왕자 2006-06-06 16:42:19
'중도'의 국민이 늘어난 이유가 진보의 실패와 보수의 혁신 때문이라는 "놀라운 분석"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