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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대학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대학
  • 손화철
  • 승인 2022.12.26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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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대학이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가, 학생이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가? 불행하게도 현실적인 대답은 후자다. 학생은 떠나지만 대학은 그 자리에 남는다. 학생을 위한다 하지만 대학을 평가하는 각종 지표는 돈을 내고 대학에 다니는 학생보다 돈을 받고 다니는 교수나 직원에게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바뀌면 나오곤 하는 새로운 대학 교육 정책 역시 학생을 일순위에 두지 않는다. 이전에는 정부가 심판을 볼 테니 누가 취업을 잘 시키는지 경쟁을 해 보라 했다.(기업에게 누가 고용을 많이 하는지 경쟁시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이번엔 출산율이 낮아서 위기에 놓인 대학에게 이런저런 규제를 풀어줄 테니 자율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라 한다.

남은 기준은 경영상의 부실 여부 정도고 없어진 규제는 대부분 교육환경의 최소한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대책이 학생에게 어떤 유익으로 이어질지는 명확하지 않다. 

생존을 걱정하는 대학이나 정책을 내는 정부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결정의 의도가 아니라 거기 전제된 학생의 상(像)과 학생에게 부여하는 중요도다. 지금 대학과 정책 결정자들이 그리는 학생은 대학의 생존을 위한 연료, 미래의 산업 역군이면서 스스로는 고액 연봉의 안정된 직장만을 희구하는 단순한 존재다.

이는 일면 현실적이기도 하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이미 무한경쟁 각자도생의 살벌한 세상을 받아들이고 여전히 대학의 서열과 특정 직군에 목을 매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 모두 의사가 되려 한다는 이상한 우연이 그 증거다. 

잘못한 이도 없고 대다수의 현실 인식이 비슷하다 하여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청년이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안전한 길을 택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는 것은 큰 문제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청년의 진정한 행복과 미래 대신 어른이 강조하는 ‘현실’에 매몰되어 생긴 일이다. 대학 교육과 정부의 대학 정책도 당사자인 젊은이의 잠재력과 꿈을 찾고 키우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대상화하거나 기계의 부속처럼 취급한다. 

대학은 학생들이 가진 선입견과 냉소를 극복하고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않음을 가르쳐야 할 의무를 버렸다. 시험 점수보다 공부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배움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데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러니 대학의 이름과 서열을 배움 자체보다 앞세우는 왜곡된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는 데는 당연히 역부족이다. 

정부는 청년이 미래를 설계하게 하기보다 이미 낡은 경쟁의 심판이 되기로 했다. 매번 바뀌는 입시와 대학정책은 결국 일등 가리기 방식의 변화일 뿐이다. 어차피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고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그 일등을 공정하게 가리자는 것이다. 혹독한 경쟁의 승자들만 모여 있어서일까.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자들은 일등이 아니어도 자존심 상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자유’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학생의 행복을 진정으로 위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은 천상 대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기인한 이런저런 방법론이 아닌, 학생을 목적으로 대하고 그들이 좋은 미래를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할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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