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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백낙청 교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학술쟁점: 백낙청 교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6.05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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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담론 심화계기…北核 등 현실인식 결여 비판

▲ © www.tongilnews.com
5월 이후 언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학자 중 한 사람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다. 이는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이후 그가 보여준 적극적 발언과 행보 때문이다. 최근 백 교수는 기존의 분단체제론에서 한걸음 훌쩍 나아가 6·15체제 이후의 한반도는 통일진행형이라는 논제를 던지고 현 정부와 최장집 교수 등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한국 사회에서 원로학자의 경우 덕담이나 훈수를 두는 게 일반적인 관행인 것에 비추어보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번 백 교수의 비판이 지식인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원로 학자가 직접 나서서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던져준다는 것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안에 적극 발언하기를 꺼리는 학계의 풍토를 깨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소장학자의 발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는 “젊은 교수들이 칼럼을 쓰고, 여러 매체에 발언을 하지만, 언론에서 의제화시키는 데는 인색한 것 같다”며 “교수의 발언이 줄었다기보다는 네티즌의 의견이 많아지면서 교수들의 의견에 대한 수효가 줄었다”고 해석한다. 백 교수 자체가 문화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에 같은 주장을 하더라도 일반 교수들의 그것과는 언론이 현저히 다르게 대한다는 것이다.

서울 모 대학의 ㄱ 연구원은 “논쟁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학술적 논쟁이 아닌 색깔론 등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한다. 흔히 언론에서 다뤄지는 백 교수의 주장이 논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과 관련있는 지적이다. 이는 또한 적지 않은 사회과학자들이 백 교수의 학적 토대가 인문학이라는 이유로 통일문제 등 사회적 주장에 엄밀성이 떨어진다고 인식하는 일과도 관련 있다.

정영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은 “한반도 분단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하고 분단체제가 재생산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백 교수의 주장은 타당하고 동감한다”고 말하지만 “분단체제론이 엄밀한 사회과학적 개념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비판을 꺼낸다. 전상봉 한국청년단체협의회 前 의장도 통일뉴스에 올린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의 서평에서 “이번 책뿐만 아니라 전작에서도 분단체제론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는 대목을 찾기란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소재 대학의 ㄴ 교수는 “장기공전에 의한 점진적 통일방식은 동의하지만, 북한관련 논문을 쓴 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학자들의 논문에 인용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백 교수의 주장은 마치 도올 김용옥이 열변을 토할 때 학계가 침묵하는 것과 같다는 북한학계의 중진급 ㄱ 교수는 “다수의 학자들이 백 교수의 주장에 침묵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전공 아마추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분단체제에 대해 손호철 교수와의 논쟁이 있기도 했지만, 사회적 위치가 큰 시니어 학자이기에 관심을 가질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백 교수의 최근 주장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물론 비판적인 입장이 우세하다. 주된 요지는 북한의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과 안보에 대한 문제의식, 남북헌법에 대한 이해, 변화된 세계체제에 대한 인식 등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7일 경북대에서 열린 한국철학회 춘계발표회에서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지적도 이와 연관된 것이었다. 윤 교수는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은 북한사회의 구조와 동학에 대한 분석 부재 때문에 남한체제론으로 축소되고 공허한 일방적 규범론에 빠지게 된다”는 비판을 가하고, “헌법철학적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기 때문에 남북통일에 대한 소박한 기대를 갖게 된다”고 연이어 지적했다. 

 
백 교수는 실제로 우리 민족끼리 가자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은데, 실제로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는 또 다른 한 소장학자는 “민족공조론이 갖는 위험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백 교수는 한미동맹과 협력적 자주국방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방력을 늘리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기본적으로 안보담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남북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북핵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군사안보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백 교수의 주장이 시대를 주도할 담론은 아니라고 판단한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새로운 관점과 문제제기는 학계에 기여하는 면이 있지만, 탈냉전 이후 거대담론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이전의 세계체제로 분단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현 시대에 맞지 않는 담론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서울 지역의 한 소장학자는 “백 교수의 ‘통일’과 최장집 교수의 ‘평화관리’는 서로 대립시킬 수 있는 명제는 아니지만, 최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달리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백 교수의 발언을 매우 의미있게 받아들인다. 백 교수는 사회과학적 상상력과 방법론에 충실한 학자라고 생각한다는 고 교수는 “그의 주장이 분단체제와 세계체제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학자들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것 같다”면서 “세계체제론의 하위구조로 판단한 분단체제론은 여러 가지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 큰 담론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데, 현재 제기되는 비판은 관점의 차이나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백 교수의 실명비판에 대해 최 교수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최 교수의 후학들이나 남북관계를 심도있게 연구하는 대표적 소장학자들도 두 원로들의 눈치를 보느라 입장 표명을 꺼려했다.

한편, 최장집 교수는 지난 3년간의 원고를 모아 최근 ‘민주주의의 민주화’(후마니타스)라는 회심의 저작을 출판했으며, 또 다른 한권의 저술도 곧 나올 예정이다. 여기서 백 교수의 비판에 대한 최 교수의 대응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 올 초여름 통일문제에 대한 학계의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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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2006-06-05 22:23:50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사회과학도 2006-06-05 22:17:26
최장집 선생의 신간 제목은 '민주주의와 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민주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