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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ion’으로 성공…“과도한 상상력, 독창성 의문”
‘Faction’으로 성공…“과도한 상상력, 독창성 의문”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6.06.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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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를 점검한다③: 재야사학자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재야 사학자 이덕일은 조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학계에 머물지 않고, 제도권 역사 교육과 연구방법론을 바탕으로 역사대중서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1997년부터 출간한 역사서만 해도 대략 20종이 훌쩍 넘어설 정도다. 또 최근에는 조선일보의 고정칼럼을 담당할 정도로 그의 필력은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역사대중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그이지만, 최근 多作의 이면에 내용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야 사학자 이덕일의 최근 베스트셀러인 ‘조선왕 독살사건’과 ‘조선최대갑부 역관’을 중심으로 그의 역사서의 성공요인과 문제점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역사 분야 출판에서 재야 사학자 ‘이덕일’은 일종의 고부가가치 브랜드다. 1997년 그가 처음 선보인 역사대중서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석필 刊)는 출간 3개월 만에 6천부 이상 팔렸고 현재까지 총 1만3천부가 서점의 진열대에 올라갔다. 2000년에 출간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 刊)는 2006년 6월 현재 약 3만7천부가 판매됐고, 1997년 ‘사도세자의 고백’(휴머니스트 刊)도 6만부 정도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보통 인문 서적의 판매고가 1만부를 넘기 힘든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덕일의 저서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다.

▲재야 사학자 이덕일 ©

지난해 재출간된 ‘조선왕 독살사건’(다산초당 刊)과 지난 3월에 나온 ‘조선 최대 갑부 역관’(김영사 刊)도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왕 독살 사건’의 경우 현재 12만 3천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고, ‘조선 최대 갑부 역관’은 3개월 만에 1만8천부가 판매됐다.

역사출판계의 ‘마이다스의 손’

이덕일의 역사서에 대한 환호는 기존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사적 상상력’의 도입에 기인한다. 역사학자들이 실증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논문 형식의 글쓰기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면, 이덕일은 역사적 史實이라는 뼈대에 ‘살’을 붙임으로써 마치 역사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며 역사를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덕일式 역사서술의 백미는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확인된다. 이 책은 인종·선조·소현세자·효종·현종·경종·정조·고종 등 8명의 조선의 왕과 세자의 죽음을 추적해가며, 석연치 않은 당시 상황에 의문을 표하며 ‘독살설’을 주장한다. 독살설의 증거는 대체로 ‘정황상 증거’인데, 이덕일은 이를 근거로 독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추리소설’처럼 재구성해나간다.

효종의 경우 시신에 부기가 남아 있다는 점, 맥 짚는 법을 모르는 어의와 이를 옹호하는 송시열의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효종이 독에 의해 피살당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한다. 정조의 죽음에 대해선, 정조와 대립각을 세웠던 노론계열의 내의원 도제조 이시수가 여러 차례 경옥고를 권했고 이를 복용한 정조가 곧바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점, 그리고 정조에게 원한이 있는 정순왕후 김씨가 정조의 승하 직전 단 둘이 있었다는 점 등을 의혹에 찬 눈길로 바라본다.

이덕일의 역사적 상상력을 도입한 글쓰기는 역사 출판 분야에서 시쳇말로 ‘먹히는’ 전략이 됐다. 백원근 출판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역사적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 역사학자들처럼 史實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논문이 아닌 형식으로 서술됐다는 점이 ‘조선왕 독살사건’이 베스트셀러가 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덕일의 역사서가 소위 ‘팩션’의 힘만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것으로 판단한다면 일면적 분석일 뿐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굴곡진 한국현대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현실의 근원이 바로 조선후기 정치지배체제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한국사회의 역사·사회적 ‘콤플렉스’를 건드린 점은 재야사학자 이덕일의 책들이 ‘연타석 홈런’을 터트린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의 기저에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정치지배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서려 있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커녕 권리만 있는 양반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임진왜란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며, “조선은 이때 이미 생명 사이클이 다한 나라였고 순리대로라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덕일은 소현세자, 정조 등 ‘개혁적인’ 군주·왕세자의 죽음과 당쟁과 명분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 후기 정치현실을 일관되게 대조시키며, ‘후진적’ 정치체제로 인한 개혁의 좌절로 인해 결국 조선왕조가 외세에 의해 멸망됐음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서술에 역사적 상상력 도입

이덕일의 이러한 전략은 제대로 적중했다. 어느 인터넷 서점의 신간 리뷰에는 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식민 지배로 이어지는 역사적 굴곡과 현재 한국의 현실정치를 되돌아보는 서평을 속속 올리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눈물이 났던 책”이라는 서평, “소현세자가 왕이 됐다면 일본보다도 1백년은 앞섰을 것이고 ‘일제시대’와 같은 굴욕적인 역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 “조선의 노론을 보면서 우리에게 개혁이 없다면 결국 조선의 말기를 뒤쫓을 것”이라는 글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조선 최대 갑부 역관’도 마찬가지. 이덕일은 외교관과 국제무역상을 겸하고 있는 역관이 주축이 되어 조선의 국제무역이 신장해나가고 있었지만 조선 왕조는 오히려 국제무역시장을 축소시키거나 금지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드러냈다. 결국 ‘조선왕 독살사건’과 같은 구도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역사적 상상력의 폐해일까. 실증할 수 없는 사실을 근거로 과도한 역사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눈에 거슬린다. 이덕일은 ‘조선왕 암살사건’의 결론으로서 “2명의 세자를 제외하더라도 8명의 임금이 독살설에 휘말렸다는 것은 조선이 비정상적인 정치 체제였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고 주장한다. 즉,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정치체제가 그 생명을 다했어야 했지만 사대부들이 무려 3백여년간 통치자로 군림한 것은 비정상적인 생명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살설이 전혀 ‘실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관련 연구자들도 몇몇 조선왕들이 독에 의해 피살당한 ‘정황’이 포착된다는 점을 인정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증할 수 없다는 게 대체로 합의된 입장이다. 즉,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훌륭한 아이템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지배체제를 문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덕일이 비판하는 조선 후기의 정치체제는 ‘오히려’ 임진왜란 이후 3백년간 지속된 점을 상기할 때, 현재적 입장에서 ‘비정상적인’ 지배체제로 매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메카니즘의 저력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노론의 신권중심주의와 남인의 왕권중심주의가 향후 서구의 입헌군주제와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덕일이 집필한 역사서의 또 하나의 문제는 독창성의 부족이다. 사실 최근 출간된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은 역관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새롭게 해석한 책은 아니다. 출판사와 언론에 의해 마치 역관이 재조명 받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실상 역사학계에서는 익히 알려졌던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교수는 “이덕일 씨가 역사 대중화에 기여를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쓰기 소재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고 평가하고, “다만 일반 대중들이 관심있어 하는 역사적 소재를 적절히 잡고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하는 것이 최대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이민선 기자 dreame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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