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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진경산수화 둘러싼 논란 재연되나
쟁점: 진경산수화 둘러싼 논란 재연되나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6.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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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리의 구현' 의견..."양측 모두 편협한 주장"

▲정선의 금강전도 ©
1998년 최완수를 비롯한 간송학파의 ‘진경시대’가 발간된 후 이를 둘러싼 논쟁을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술사와 문학계에서 이런 논의를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했는데, 근래에 철학 쪽에서 기존 통념을 문제삼는 논문이 발표돼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조짐이 보인다. 더불어 올 7월 한국사상사학회에서는 문학, 철학, 사학, 미술사학자들이 참여해 진경학파를 주제로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기에 논쟁의 예비주자들이 줄을 선 셈이다. 이번 호에서는 조남호 교수 논문을 중심으로 현 진경학파에 대한 논의와 문제제기를 짚어보았다. /편집자주

故 이동주 선생이 틀을 세우고,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소중화론을 내세워 사상적으로 구체화시킨 ‘진경산수화’ 또는 ‘진경시대’ 논쟁이 재점화 될 것인가. 최완수를 비롯한 간송학파는 ‘진경시대’를 내세워 강고한 이론 틀을 구축해온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와 여러 논쟁거리가 잠재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최근 ‘철학연구’지(71집)에서 조남호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교수(동양철학)가 ‘김창협학파와 진경산수화’라는 논문을 통해 간송학파의 소중화론과 진경개념, 그리고 문학계에서 논해지는 ‘천기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크게 세 가지 면에서 기존 진경문화 논의를 문제 삼는데, 첫째,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율곡학파와 연계되어 소중화론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명·청과의 교섭 속에서 내어났다는 것, 둘째, ‘眞景’ 개념은 너무 강한 가치평가가 들어가서 철학적으로 의미가 없으며, 이런 식의 논리는 실경과 精神 사이를 모호하게 오간다는 점, 셋째, 산수화가 天機에서 나왔다고 하여 감정의 순수한 발로로 규정하지만, 이는 보편적인 理를 매개로 한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이라는 것이다. 즉 조 교수의 주요 논점을 정리하자면 “진경산수가 ‘조국애’보다는 ‘보편적인 理를 통한 공부론의 결과물”이며, ‘眞景’ 개념은 재고찰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의 이러한 주장과 그 논거에 대해 관련 전공자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 국문학자는 “김창협의 주자학적 사상과 정선의 그림이 어떻게 만났는가를 재검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고 하며, 송혁기 단국대 연구교수(한문비평)는 “워낙 문제가 많던 소중화론이나 천기론에 대해 그 문제점을 재차 제기한 것은 옳다”라고 평한다. 또한 최영진 성균관대 교수(한국유가철학)는 “미술사나 문학계의 논의에 철학이 개입했다”는 점을 일단 높이 산다.

하지만 오랫동안 간송학파가 쌓아온 진경논의를 흔들기에는 문제제기가 너무 약하며, 논리전개가 거칠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최영진 교수는 “정선 등 진경학파들이 보편적인 주자학 이념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독창적인 진경산수화 이념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주자학의 보편성과 달리 조선성리학에는 특수성이 내함되어 있었다”라고 지적한다. 즉 최 교수에 따르면, 최완수의 율곡성리학 이해에도 오류가 적지 않지만(이에 대해서는 ‘동아시아문화와사상 1’에서 자세히 밝힌 바가 있음), 조 교수의 조선성리학에 대한 이해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나 문학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강혜선 성신여대 교수(한문산문)는 “조남호의 논리에 따르면 김창협과 이황, 율곡의 문학이 모두 똑같은 것이 되어버린다”라며 문학계의 섬세한 논의들을 “무화시키는 논리”라고 비판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진경문화를 주도했던 이들은 실제 답사와 체험을 통해서 다양한 산수시를 구사해왔는데, 철학적 논의가 이들 다양한 현상을 제대로 간파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송혁기 교수 역시 “문학이나 미술사에서 잘못된 철학적 개념을 진단하려는 문제의식은 의의가 있지만, 철학의 보편담론으로 환원시키는 맹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율곡과 김창협의 예에서만 보더라도 산수화에 대한 입장은 전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진경산수화 혹은 진경시대 논쟁은 조 교수 논문에 대한 비평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완수 등 간송학파와 견해차를 나타내는 이내옥 부여박물관장은 “간송학파가 당파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를 비판하는 조남호 역시 진경산수를 김창협 학파의 당파적 이데올로기라고 표현한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양 논의가 모두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이 관장에 따르면, “진경산수는 서인인 겸재 뿐 아니라, 남인인 공재도 그렸고, 북인인 표암이나 중인인 김홍도도 그린 것인데 이를 특정 그룹만이 그렸다고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는 것이다. 이 관장은 박사논문을 통해 공재를 진경산수화의 시초로 규명한 바가 있는데, 그에 대한 검토가 최완수나 조남호에게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진경산수화의 선구자에 대한 재규명이 없는 한 진경산수에 대한 그 어떤 논의도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근간으로 나올 ‘회화사 연구사’에서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미술사) 역시 그동안 단편적으로 논지를 전개해왔던 진경산수화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예정인데, 이는 “중국, 일본 등과 더불어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봤을 때 진경산수화는 배타적 민족주의나 모더니즘의 시각에 한정되어 있어 문제가 있다”라는 요지다. 이러한 비판은 사실 한정희 홍익대 교수(미술사)나 고연희 한국한문학회 강사(국문학) 등으로부터 제기되어 온 바가 있다.

향후 논해야 할 쟁점들에 대한 각 학계의 문제제기도 다양해 관련한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월 한국사상학회의 학술발표에서 진경산수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검토할 예정인 이천승 성균관대 연구원(유가철학)은 조 교수가 성리학 일반의 입장에서 진경문화를 논한 것과 달리, 노론의 洛學계열의 사상적 토대에서 이를 살펴보려 한다.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는 ‘진경문화의 허상과 실상’이라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박 교수 또한 “진경이 조선중화주의, 성리학 일변도, 노론 위주로 사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과 “진경이 조선시대 전체를 지배했던 것인지 검토할 것”임을 내비쳤다.

진경산수는 어떤 쪽으로 똑 부러지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은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진준현 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미술사)은 “최완수가 미술과 철학을 너무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는데, 철학은 배경일 뿐”이라며, 향후 “천기론, 성정론, 주자학적 리 등의 개념이 미술창작 활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논해야” 함을 강조한다. 최영진 교수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조선후기를 풍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8세기에 우리문화가 주체적으로 꽃피운 흐름이 포착된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조선후기 문화를 새롭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다만 “진경학파의 허와 실을 분명히 가려서 허를 제거하고 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 해야 할 것”을 전제한다. 안대회 명지대 교수(한문비평)는 “17세기 말~18세기 진경문화에 대해 철학적인 관심은 필요한 일이지만, ‘진경산수’, ‘진경시’, ‘천기론’ 등의 용어가 갖는 함의를 너무 과도하게 해석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즉 ‘眞景이냐 虛景이냐’ 등의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는데, 이는 “역사적 의미가 더 중요한 것으로 17~18세기라는 특정 시기에 중요하게 된 의의를 따져야만 한다”는 설명이다.

진경문화에 대해서는 유독 역사학계에서 공식적인 학문담론 속에서 논하기를 꺼리는 상황이다. 진경학파가 신념에 불과할 따름이지 학문적인 객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우봉 전북대 교수(조선후기사) 등은 진경학파가 조선중화주의 개념으로 진경산수나 동국진체 등 예술쪽에 한정되어 논의되는 것은 유의미하지만, 그러나 문화 전반으로 확대해석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18세기에 동아시아의 정치가 재편되면서 조선중화주의는 오히려 역기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런 역사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조선중화주의로 우리문화의 절정을 논하는 것이 뭔가 “부적합하다”라는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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