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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_'개화기 자유주의' 연구 비판적 검토
학술동향_'개화기 자유주의' 연구 비판적 검토
  • 이승환 고려대
  • 승인 2006.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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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틀에 다양한 사상유파 가둬…모순된 개념, 공동연구의 한계

한국 자유주의의 현실은 매우 기형적이다. 냉전체제 아래서 한국의 자유주의는 반공독재나 부국강병을 위한 중상주의적 계획경제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중핵인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수호’라는 이름으로 탄압당했고, 오직 정권과 결탁한 재벌들의 경제적 자유만이 자유주의가 지향해야할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호도됐다.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화 시대가 되어도 한국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양심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 같은 핵심가치는 외면한 채 국가보안법 같은 반자유주의적 악법을 옹호하며 ‘시장의 자유’와 ‘소유의 자유’만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의 자유주의가 기형적이라 해서, 우리가 본받을만한 자유주의의 원형이 지구 어느 곳에 표본으로 전시돼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는 오직 다양한 자유주의의 변종들만 존재할 뿐, 얼마나 ‘더 건강한’ 자유주의를 만들어내는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민주적 합의와 실천적 노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2000년을 전후해 국내 학계에서는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히 진행됐다. 구한말의 위청척사운동, 동학운동, 개화운동을 자유주의와의 연관 속에서 조명하는 것에서부터 일제시기의 애국계몽운동과 자강운동에 내재된 자유주의적 성격과 그 한계에 대한 고찰, 그리고 제헌과정과 제헌헌법에 나타난 자유주의의 이념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까지 한구 자유주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짧은 기간에 비교적 풍성한 결실을 거뒀다. 그 가운데 특히 구한말의 개화파와 일제시기 계몽운동가들이 지녔던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은 현대 한국의 기형적 자유주의와 모종의 가족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흥미를 유발한다. 


개화파가 지녔던 자유주의 사상과 관련해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개화파 사상가들이 수용했던 자유주의가 매우 선택적이고 제한적이었다는데 동의한다. 가령, 개화파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평등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면서도 종국에는 ‘通義’ 또는 ‘天地之理’와 같은 공동체의 도덕원리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적 태도를 과연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와 전통 문화(유교)의 절충적 융합으로 볼 것인가”.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평가를 달리한다. 김주성(‘김옥균·박영효의 자유주의정신’(정치사상연구 2집))은 개화파들에게는 자유주의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결여돼있으며, 그들의 사상은 정통자유주의에서 일탈한 ‘비자유주의적’인 것이라고 평가한다. 자유주의의 기본원리에 의하면 타인에게 危害를 가하지 않는 한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으므로, ‘통의’와 같은 도덕원리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비자유주의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 안외순·장동진·정용화(‘애국계몽운동과 준식민지에서의 자유주의’·‘초기개화파의 자유주의 관념형성의 특질’(한국사상과문화 21집), ‘근대적 개인의 형성과 민족’(한국정치학회보 40집1호)) 등은 개화파의 이중적인 모습을 ‘자유주의와 유교적 가치의 절충적 융합’이라고 평가한다. 즉 자유주의와 유교윤리의 장점을 상보적으로 융합해 보다 나은 사회체제를 모색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더욱이 제국열강의 압박 속에서 새로운 근대국가를 모색해야했던 개화파 지식인들에게 자유는 무제한으로 허용돼야 하는 종국적 가치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존립을 위해 선택적으로 허용돼야 하는 수단적 가치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고 동정적 이해를 보내는 것이다.


개화파에 대한 이런 엇갈린 평가는 연구자들의 전공과 학문방법의 차이에서 일정부분 기인한다고 본다. 김주성은 철학전공자로서, ‘불침해의 원리’라는 자유주의의 ‘이념적 틀’로 개화파를 분석한다. 반면, 안외순·장동진·정용화 등은 정치사상전공자로서 19세기후반이라는 역사적 현실 안에서 개화파의 제도개혁 프로그램에 나타난 자유주의적 요소를 재구성하려 한다. ‘철학적 분석’과 ‘사상사적 이해’로 구분되는 양자의 접근방식엔 나름의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식의 차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개인의 가치보다 부국강병을 더 우위에 두고, 도덕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던 이 시기의 개혁 프로그램은 김주성이 지적한 것처럼 과연 진정한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합방을 전후로 전개됐던 계몽운동과 자강운동에 나타난 자유주의의 성격과 그 한계에 대해서는 안외순·전재호·장동진·강정민 등의 연구자가 착실히 연구성과를 쌓아왔다. 특히 안외순의 연구는 애국계몽운동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연 이들의 노선이 진정 ‘애국적’이었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매우 도발적이다. 즉 박은식과 같은 계몽운동가들은 원칙적으로는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듯 했지만, 결국은 개인의 자유를 현존하는 국법질서 아래 구속함으로써 그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명백하게 주권을 침해당하며, 문명개화를 명분으로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에 편승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노선을 택하는 편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안외순은 술회한다. 안외순의 이런 판단은 당시 계몽운동가들이 지녔던 문명개화론이 그다지 자유주의의 이념에 투철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전재호의 연구(‘동학과 자유주의’(한국사상과문화 21집))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 시기에 실력양성론을 뒷받침했던 사회이념을 ‘국가중심주의적 자유주의’와 ‘사회진화론’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이 시기 지식인들이 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국가와 사회를 위한 개인의 책무를 강조하고 민족의 생존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했던 이유를 식민지적 조선의 현실에서 찾는다. 그러나 과연 ‘국가중심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국가의 간섭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것이 자유주의의 목표라면, ‘국가중심’이라는 개념과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서로 상치되지 않는가. 왜 연구자들은 ‘국가중심적 자유주의’나 ‘반자유주의적 자유주의’라는 모순된 개념을 쓰면서까지 이 시기의 사상을 자유주의의 틀 안에 귀속시키고자 하는가.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의 자유주의에 관한 논문 중 상당히 많은 편수가 “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육성 연구비지원에 의해 작성됐다”고 밝히는 것으로 봐, 이 작업들은 공동연구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공동연구는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때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시기의 다양한 사상의 유파들을 자유주의라는 한 틀로 조명하려다 보니, 때로 자유주의와 별 관련이 없는 유파마저도 무리하게 자유주의의 한 유형(또는 변형)으로 재해석하게 된다. 가령, 동학과 자유주의의 관련성을 다룬 한 연구에서는, 동학 경전에서 자유주의에 관한 명시적인 전거를 찾을 수 없었던 탓인지,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식으로 모호하기 그지없는 서술을 한다. 공동연구의 기획의도에 맞추려다보니 ‘반자유주의적 자유주의’와 같은 모순된 개념이 등장할 뿐 아니라, 인민주권이나 보통선거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자유주의와 구분하지 않은 채 자유주의의 특징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이런 오류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연구자 개인에게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볼 땐 연구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공동연구가 지닌 한계에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기획한 공동연구 입안자들에게도 약간의 책임이 있겠지만, 공동작업에 참여해 한시적으로나마 생계를 보장받지 않으면 안되는 신진 연구인력의 실존적 조건과 더 큰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향후 학술진흥재단의 연구지원은 공동작업이 절실히 요청되는 토대연구가 아닌 바에는 개별 연구자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승환 / 고려대·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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