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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혹은 우리들의 꿈
갈매기의 꿈 혹은 우리들의 꿈
  • 김병희
  • 승인 2022.12.2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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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⑬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누구나 한번쯤은 중고교 시절에 이 구절을 책꽂이에 붙여둔 기억이 있으리라. 청소년기에는 구체적인 표현보다 추상적인 메시지에 더 감동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은 1970년에 출간된 이후 한글을 비롯한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돼 4천만 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다.

우리나라에서만 류시화 시인을 비롯해 이현구, 신인수, 최종길, 김경미, 김진욱, 공경희 등 여러 분들이 번역한 책이다. 동화에 가까운 우화 소설을 여러 사람이 번역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세대를 초월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줄 정도로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 교훈적이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근거다.

도서출판 우진의 『죠나산』 광고 (동아일보, 1979. 5. 3.)

나중에 나온 여러 번역본에 앞서 국내에는 1977년에 처음 소개됐는데, 도서출판 우진의 『죠나산』 광고에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동아일보, 1979. 5. 3.). 광고를 보면 까만 바탕에서 날아오르는 흰색 갈매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갈매기의 오른쪽 날개 밑에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이란 영어 소설 제목을 제시하고 그 아래에 한글 제목을 크게 부각시켰다. “영화수입 결정. 온 세상을 6센치의 두께로 덮어버린 초유(初有)의 베스트셀러.” 헤드라인에 이어 보디카피를 이렇게 썼다. “젊은이여 그대가 그저 먹고 마시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자유와 사랑의 참뜻을 이웃에게 전하는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침묵의 소리. 당신 삶의 의미를 제시할 우렁찬 계시의 소리. 억눌린 자여 사랑을 잃은 자여 죠나산이 그대 곁에 있으리라!” 

번역자는 「서울의 지붕 밑」으로 이름을 떨친 이형표(李亨杓, 1922~2010) 영화감독이었는데,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의 전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책 제목은 지금과 달리 『갈매기의 꿈』이 아닌 『죠나산』이었다. 다만 “칼라판 갈매기의 꿈”이란 부제를 조그만 글씨체로 붙였는데, 지금은 이 부제가 책 제목이 됐다.

광고에서는 호화양장 영구 보존판이라고 강조하며, 칼라사진 및 본문사진 36매를 비롯해 영문 영화대본 및 번역(English-Korean)을 권말 부록으로 덧붙였다고 알렸다. 세로쓰기를 한 이 책은 하드커버에 46판(B6) 크기였고, 후반부에 <죠나산> 영화 대본을 수록했기에 전체 페이지는 123+119쪽이었고, 책값은 1,500원이었다. 

재미있게도 『어린 왕자』(1943)를 쓴 생텍쥐페리의 직업이 비행기 조종사였듯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도 비행기 조종사였다. 대학에서 퇴학당한 그는 공군에 입대해 비행기 조종사가 됐고, 나중에 민간 비행기의 조종사로 일하며 3천 시간 이상의 비행 기록을 세웠다.

『죠나산』 초판의 표지 (1977)

사실 『갈매기의 꿈』은 출판사 18곳으로부터 출간 거절을 당하다 1970년에 뉴욕의 맥밀란출판사에서 가까스로 출간했다. 출간되자마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5년 만에 미국에서만 700만 부가 판매됐고, 이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소설은 「갈매기의 꿈: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홀 바틀릿 감독, 1973)이란 영화로 제작됐고 국내에서도 1980년 5월에 영화 「죠나산」이 개봉됐는데, 영화가 원작 소설의 감동을 뛰어 넘지는 못했다. 

소설의 참 주제는 다른 갈매기들의 집단 따돌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갈매기 조나단의 자유 의지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날아오르는 루저 갈매기의 생각을 쫒아가며 자기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었다.

소설에서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연연하는 사람들에게, 더 멀리 내다보며 자신의 꿈을 저마다 자유롭게 펼쳐나가야 한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비행에 대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갈매기 조나단의 의지를 보며 독자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려 했을 터.  

여느 새들처럼 사는 게 왜 그리 어려운 거냐며 왜 먹지도 않고 비쩍 말랐다고 걱정하는 엄마에게 갈매기 조나단은 이렇게 말한다. “비쩍 말라도 상관없어요, 엄마. 저는 공중에서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그냥 알고 싶어요.”(공경희 역, 15쪽) 공중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날아오르기를 원한다는 조나단의 열망은 독자들에게 질문하는 인생의 가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시속 344킬로미터로 급강하하는 도중에 날개가 펴지면 몸이 산산조각날 수 있다는 사실을 조나단은 잘 알았다. 알면서도 침을 꼴깍 삼키며 수직 강하를 시도한 이유는 날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조나단은 속도가 힘이자 환희라고 생각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어떤 일에 집중하는데 있다. 집중하다 보면 그 분야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멀리 내다보는 새가 될 수도 있다. 설령 가장 높이 나는 새가 안 되도 상관없다. 조율 잘 된 악기처럼 스스로 열망을 느끼며 살아가는 거니까.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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