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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유독 ‘안전·안보’를 강조했을까
중국은 왜 유독 ‘안전·안보’를 강조했을까
  • 이희옥
  • 승인 2022.12.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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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보고』 성균중국연구소 옮김 | 지식공작소 | 262쪽

3연임한 총서기 시진핑, 강력한 리더십 제시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등에 대한 집단적 인식

지난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20차 당 대회)가 개최됐다. 제19차 당 중앙위원회를 대표해 시진핑 총서기는 새로 출범할 20차 당 대회에서 정치보고(이하 「보고」)를 했다. 사실상 시진핑 총서기가 스스로에게 보고한 셈이지만, 향후 중국정치의 방향을 볼 수 있는 결정적인 문건이라는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5년 만에 열린 이 대회는 기존의 관례와 관행을 깨고 총서기 3연임을 결정했고, 3연임한 총서기 시진핑은 ‘위기의 시대’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변화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일은 문건을 정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보고」는 매 시대 중국공산당의 집단적 지혜를 담은 결정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므로 「보고」는 향후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판독하는 준거가 된다. 사실 중국의 정치과정은 암상자(black box)와 같아서 예측이 분분하고 심지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도 강하게 나타나고는 한다. 

특히 이번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가장 근사하게 맞힌 것은 중국 전문가들보다는 오히려 인공지능을 활용한 분석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번거롭겠지만 공식 문건을 읽고 그 의미를 정독한다면 모든 문제를 시진핑의 리더십으로 환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례로 20차 당 대회 내내 시진핑 개인에 대한 권위와 중국공산당의 지도방침인 ‘시진핑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 견지를 확립해야 한다는 이른바 ‘두 개의 확립’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지만, 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장(黨章)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개인숭배를 우려한 당내의 반발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이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은 문건이다. 

성균중국연구소가 5년 전 19차 당 대회 「보고」를 가장 빠르게 번역 출판한 데 이어 5년 후인 2022년에도 같은 작업을 반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고」에는 정치보고의 원문, 수정된 당정, 그리고 핵심 엘리트의 이력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보고」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단어의 빈도에도 나타난다. 예컨대 「보고」에서 안전(安全)을 유독 강조했는데, 맥락을 따라 읽으면 국내적 안전(safety)과 대외적 안보(security)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위험, 위기 등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은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공급망 디커플링, 복잡한 지정학적 리스크, 코로나 팬데믹 등 전지구적 위기의식을 보는 중국지도부의 집단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보고」의 구체적 정책 기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체성의 정치’ 강화이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이다. 과거 반근대적 근대(Anti-modernist modernism)를 연상시키는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산업과 핵심기술의 자주화이다. 미국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참호를 깊이 파고 최대한 버티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지구전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중국식 제도구축과 핵심이익의 보호이다. 중국은 힘의 한계 때문에 선제적으로 현상을 타파하지는 않겠지만,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과 다자주의 등 중국에 유리한 제도를 구축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핵심이익의 핵심이익’으로서 대만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외부세력의 대만독립 개입이 분명해진다면 헌법에 명시한 대로 ‘비평화적 수단’을 사용할 것도 분명히 했다. 

향후 중국의 길을 예측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나타나거나, 때로는 맥락을 버리고 앞뒤를 빼며 특정한 단어를 취하는 의도적 오독(誤讀)도 나타난다. 따라서 중국정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판독하는 데에는 많은 정치적 장치가 숨어 있는 문건들을 정확히 읽는 훈련이 요구되며, 특히 「보고」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훈련과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곧 경쟁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책을 출판한 이유도 중국정치 전공자뿐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와 지역을 전공하는 분들께 중국을 직접 대면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고 이를 통해 학문적 상상력의 확장과 공유를 도모하는 데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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