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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낙후된 일본 여성평등지수, 개선의 여지는 없는가
[글로컬 오디세이] 낙후된 일본 여성평등지수, 개선의 여지는 없는가
  • 이은경
  • 승인 2022.12.15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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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사진] 쓰다 우메코는 근대 일본여성교육의 대모로 꼽힌다. 사진=위키백과

2019년 4월, 여성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교수의 도쿄대 입학식 축사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인터넷상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우에노 교수 자신이 거듭 고백한 것처럼, 축사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이 그가 평소부터 줄곧 주장해온 내용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라 할 수 있는 그에게 입학식 축사를 부탁하기로 한 도쿄대의 결정이고, 그에 대한 대중의 열렬한 반응이었다. 

새삼스러운 관심에는, 축사의 서두에서 언급되기도 했던 전년도 도쿄의대(도쿄대와는 다르다) 등에서 벌어진 입시부정 사건의 충격이 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여자는 결혼이나 출산으로 직장을 소홀히 한다’는 인식하에, 여자 수험생들에게 불리하도록 점수를 조작함으로써 의도적으로 합격자 수를 낮춘 사건이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른 곳에서도 ‘같은 점수라면’ 암묵적으로 남자를 선택해왔다거나 사정을 내심 이해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일본 사회가 여성의 전문직 진출에 얼마나 적대적인 환경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우에노 교수의 축사가 있은 지 며칠 후 재무성은 5년 후인 2024년 발행 예정인 5천엔 권 지폐의 인물로, 현재의 히구치 이치요라는 25세의 나이로 요절한 여성 작가를 대신해 사립여대인 쓰다주쿠대 설립자인 쓰다 우메코라는 여성 교육자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1년 만 7세의 나이로 선발돼 미국에 파견됐던, 일본 최초의 그리고 최연소의 여자 유학생이었다. 그런데 일본 여성을 위해 선택됐다는 사명감으로 11년의 유학을 견딘 쓰다 우메코가 귀국 후 마주한 일본 여성의 현실은, 자신을 유학생으로 파견했고 귀국 후의 활약을 기다렸을 조국의 상황이라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1872년 일찌감치 남녀 초등교육이 의무화됐지만, 남자교육을 위한 교육기관과 관련 제도가 순차적으로 정비돼 갔던 반면 여자교육은 1899년 ‘고등여학교령’ 제정까지 방치되다시피 했다. 실제로는 중등교육에 관한 법령임에도 굳이 ‘고등’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양처현모’를 양성하려는 여자교육의 취지상 그 정도만으로 충분히 ‘고등’하다는 편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쓰다 우메코 자신은 여자로서는 최고 수준의 급료를 받으며 상류층 자제들을 가르치는 영어교사로서의 생활에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녀들이 최소한의 교육만을 받고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정략결혼을 통해 가정으로 돌려보내지는 현실을 묵인할 수는 없었다.

근대 일본 여자교육의 방향에 의구심을 품었고 나아가 전문직 여성의 사회 진출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결혼이 아닌 재유학을 결심, 대학에서 현모양처 양성과는 무관한 ‘생물학’을 전공한 후 귀국했다. 1900년에는 진정한 여자 ‘고등’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 영어를 중심으로 전문직 여성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값비싼 장비나 기술 없이도 교육할 수 있고 남자와 겨뤄서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의 결과였다.

매년 10명 전후의 소수만을 선발, 영어뿐 아니라 다양한 교양 교육을 실시했다. 넉넉하지 않은 재정에도 전교생 기숙사생활이라는 원칙을 고집한 것은 학생들을 가사로부터 해방시켜 학업에 전념케 하기 위해서였다. 

여자에게도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 했던 그의 시도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 대학생의 남녀 비율은 수치상으로는 거의 비슷해졌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도쿄대에 한정하자면 갈 길이 멀다.

작년에야 처음으로 여학생 비율이 20%를 간신히 넘었는데, 이는 도쿄대 여자 교원의 비율보다는 높지만 여자 의사의 비율과는 유사한 수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도쿄대는 여학생과 여자교원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목표치를 설정하고, 그 달성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음을 선전중이)다. 

도쿄대 졸업생이 일본 정부와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도쿄대의 과도한 남성 편중이 가져올 미래의 불행을 예감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많은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젠 웬만한 조직이라면 한쪽 성비가 20%조차 채우지 못하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恥)’ 일이라는 사실이 일본 사회의 상식이 됐기 때문이면 좋겠다.

지금과 달리 대부분의 한국인이 일본에게서 뭔가 ‘배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시대에도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만큼은 일본은 결코 부럽지 않은 나라였다. 이른바 ‘젠더 갭’ 랭킹에서 다른 OECD 국가들과 멀찍이 떨어진 100위권 밖에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위로의 이유가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해결을 모색해야할 한일협력의 이유가 돼야 할 것이다.

  이은경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근현대 일본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운동과 생활, 사상 등에 관해 연구해왔고 근현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대중적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다. 연구서로서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한울, 2021)가 있고,  『젠더와 일본 사회』(한울, 2016),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지식산업사, 2010),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위즈덤하우스, 2018)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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