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을 맞아 축구의 귀재, 신동, 천재 등 현란한 수식어의 선수들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나는 성격상 팀 스포츠보다는 개인 스포츠 경기, 그 중에서도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인 달리기에 관심이 많은데 현존하는 최고의 마라토너는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 선수다. 내가 킵초게 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고 킵초게 선수야 당연히 나를 모르겠지만 전세계에는 킵초게 선수보다 더 킵초게 선수를 사랑하는 팬들이 온 대륙을 덮고 있다.
올해 38세(!)인 그는 몇 달 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01분 0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운 6번의 마라톤에서 4번이 그가 세운 것이다. 더욱이 킵초게 선수는 2019년 비엔나에서 열린 이니오스(INEOS) '1:59 챌린지'에서 1:59:40의 기록으로 2시간 이내로 주파한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이 대회는 2017년 이탈리아 몬자(Monza)에서 열린 나이키의 'Breaking 2' 프로젝트의 후속편인데 이 두 경기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실험한 것이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편대 주행, 최고의 기후 조건, 최고의 하이테크 운동화 등 과학적으로 최대한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달리게 한 것으로 공인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킵초게 선수는 수억 원을 상금으로 벌 수 있는 공인 마라톤 기회들을 포기하고 이 챌린지에 도전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였다. 'Breaking 2'에서는 아쉽게도 2:00:25로 실패했지만 2년 후 열린 대회에서 2시간이라는 한계를 깼다.
킵초게 선수의 유명한 모토는 그 어떤 인간도 한계가 없다(No human is limited)는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누구도 한계란 존재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당위적이고 수사적인 표현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읽기에 킵초게 선수의 여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이 표현이 인간은 그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자의적으로 한계가 그어져서는 안 된다는 선언으로 읽는다. 오직 자기의 몸, 자기의 마음, 자기의 앎, 자기의 시간만이 자신의 한계인 것이다. 이처럼 자기를 이루는 과거는 그 개인만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답답한 현실과 막연한 희망과 부질없는 기대 그 모든 것이 섞여있을 테다.
신기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위대한 스포츠 선수들은 위대한 철학자다. 마라톤으로 부자가 되어도 여전히 케냐 시골에서 달리기 훈련에 매진하는 킵초게는 인터뷰 때 종종 현인(賢人)과 같은 말들을 남긴다. 그는 단지 자신의 최고 기록(personal best)을 위해 달릴 뿐이며 어쩌다 이게 세계 신기록이면 감사할 일이라고 했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승리의 전율만이 아니라 개인 경기든 팀 경기든 궁극에 가서는 선수들이 각자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인생이 단단한 과거로 빛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밋빛 미래가 아닌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단단히 일구어온 과거이기에 더욱 값어치가 있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