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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넘는 ‘평정심’, 지도자의 자질 가늠한다
탐욕 넘는 ‘평정심’, 지도자의 자질 가늠한다
  • 박병기
  • 승인 2022.12.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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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㊳_청허휴정
청허휴정(서산대사)의 지도력은 임진왜란의 위기 상황 속에서 더 빛났 
다. 사진=위키피디아

우리는 지금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서 살아가는 중이다. 기후 위기와 경제위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속성의 위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지난 10월 우리가 함께 겪은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위기 통제 능력에 대한 근원적인 의구심을 갖게 하면서, 위기 상황 속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서늘한 화두로 불러내고 있는 중이다. 폭염이나 홍수로 인한 자연적 위기는 우리의 대응 능력에 따라 양상이 현저히 달라질 수 있고, 그 중심에 있어야 하는 지도자에게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상황분석과 적절한 대처역량을 요구한다.

이번 참사는 아직 선명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책임을 분명히 가려 더 이상의 참사는 용납하지 않는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불행히도 그런 역량을 갖춘 지도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시민들이 그런 사람들을 리더로 불러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그것에 더해 유력한 두 정당 사이의 적대적 공존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야를 떠나 질적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문제적인 인물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종교 지도자라도 제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일반 시민사회보다도 먼저 자본주의 체제에 편승한 제도종교의 우두머리들에게서 그런 기대는 난망한 것임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곤 한다.

절이나 교회를 키우는 데만 신경 쓰는 듯한 그들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사회가 오히려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임을 절망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종교 지도자들중에도 제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그들의 자리는 안타깝게도 늘 변방이다.

그 암울함을 딛고 오늘 호출해보고자 하는 지도자는 조선 중기의 승려 청허휴정이다. 청허와 함께 그를 부르는 다른 법호인 서산으로 더 알려져있는 휴정은 본래 성균관에서 공부한 유생이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가 된 영민한 소년을 그곳 수령이 눈여겨보다가 한양으로 데려와 성균관에 입학시켜준 덕분이었다. 

3년 공부한 후에 응시한 과거에서 낙방하고 방황하다가 만난 불교에 헌신해, 척불을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 사회에서 불교를 지켜낸 중심인물 중 하나다. 경전 공부와 참선, 계율 등 삼학의 과정 모두를 중시하면서 일상의 수행을 이끌었던 그가 보인 모범은 『선가귀감』이라는 텍스트를  매개로 지금까지도  우리 불교계의  참혹한 현실을 꾸짖는 경책으로 살아 있다. 

휴정의 지도력은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더 빛났다. 한양을 내주고 피난을 가던 선조가 그를 불러 나라를 구할 방법을 묻자, 먼저 자신이 속한 불교계가 앞장서서 왜구를 막아보겠다고 나섰다. 유정과 처영, 영규 같은 제자들이 적극 호응하면서 결국 왜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그의 나이 이미 칠십이 넘은 때였다.

“모든 병은 마음에 있으니/ 어찌 힘들게 글자 공부만 할 것인가/ 오언절구의 시 한 수면/삶의 뜻을 다 담을 수 있다네.”(휴정의 선시 ‘영회’ 중에서)

휴정의 리더십은 일상의 수행과 선시를 통해 쌓은 평정심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 평정심은 같은 인간인 왜구를 죽이는, 불살생의 계율 위반이라는 내외적 갈등을 ‘자비로운 분노’로 극복해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위기가 일상화된 21세기 초반 한국시민의 삶 속에서 지도자는 익숙함에 기반한 무지와 무관심, 탐욕의 질곡을 넘어설 수 있는 평정심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그 평정심은 가끔씩이라도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길러질 수 있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보내는 시선에 따뜻함이 실리도록 노력하는 실천을 통해 인간적·정치적 역량으로 성숙 할 수 있다.

한밤중에 눈길을 걸을 때에도 다음에 올 사람들을 생각해서 함부로 걷지 않겠다는 생각과 실천의 모범을 보인 휴정의 리더십은, 시민이면서 일정 기간 동안 지도자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이 시대 지도자들이 한 번쯤 되새길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했다. 불교원전전문학림에서 불교철학과 윤리를 공부했고, 전주교육대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물로 『우리 시민교육의 새로운 좌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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