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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도르세의 달걀
꽁도르세의 달걀
  • 박혜영
  • 승인 2022.12.05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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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인하대 교수

프랑스 혁명은 여러 명의 위대한 사상가를 낳았는데, 꽁도르세 후작도 그 중의 하나였다. 꽁도르세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매료되었지만, 수학공부를 하는데 집안의 반대가 컸다. 높은 신분의 귀족이라면 상속재산과 사회적 특권을 이미 물려받은 처지인데 개인적인 재능을 발휘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꽁도르세는 하루 10시간씩 수학 책을 읽으며 공부했고, 수학저서를 집필했고, 1777년에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꽁도르세가 수학 못지않게 관심을 가진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회정의와 진보였다. 꽁도르세는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모든 개인의 의무이자 삶에서 행복을 얻는 길이라고 믿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터졌을 때 꽁도르세는 이를 열렬히 환영했다. 혁명시절 꽁도르세는 입법의회의 위원장을 맡아 귀족의 특허권을 모두 불태우자고 제안했고, 스스로 제일 먼저 자신의 특허권을 불길 속에 던져버렸다. 

꽁도르세는 토마스 페인과 함께 프랑스 공화국의 헌법초안을 만들었으며, 모든 시민에게 무상교육과 완전한 남녀평등을 입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권력은 지롱드파에서 자코뱅파로 넘어갔고, 새로이 권력자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꽁도르세의 단두대 처형을 엄명했다. 

꽁도르세는 체포되기 직전 마담 베네의 도움으로 그녀의 은둔처로 피신하지만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였다. 외부와 차단된 작은 공간에서 몇 달 만에 써내려간 책이 대표작인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이다. 이 책에서 그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기본증여(소득)를 제안하고, 민법이나 세법을 개정하면 누구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인류의 진보가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꽁도르세의 마지막은 서글프다. 은신처가 발각될 처지에 이르자 그는 혼자서 파리를 떠나 시골로 피신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피신처도 없이 헤매며 굶주림에 시달리던 꽁도르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시골의 어느 선술집에 들어가 오믈렛을 주문한다. “달걀을 몇 개나 넣을까요?” 라는 주인의 말에 이 지치고 굶주린 철학자는 “12개요”라고 답한다. 귀족이 아닌 이상 누구도 그렇게 많은 달걀을 주문할 수 없기에 주인은 손님의 신분을 의심하고, 결국 꽁도르세는 체포된다. 꽁도르세는 감옥에 갇힌 다음날 바로 시체로 발견되었다. 굶주림, 추위, 쇠약, 아니면 독약, 무엇이든 모두 이 쓸쓸한 죽음의 원인이었으리라.

꽁도르세는 지금 들어도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그 아이디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실천이다. 그는 후작 증서를 불태우고, 물려받은 재산과 특권을 모두 내려놓았다. 평등이 정의롭게 구현되는 것이 인류의 진보이자 발전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도 나타났던 이런 위대한 실천가가 그로부터 사회가 더 발전한 오늘날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마다 말로만 공정과 평등을 외칠 뿐 정치현장에도 교육현장에도 실천가는 찾기 어렵다. 공공의 정의를 위해 사적인 안위를 모두 버렸던 꽁도르세를 생각하면, 달걀 12개가 다시금 안타깝다. 다른 답변을 했더라면……. 왜냐하면 꽁도르세의 처형을 명령한 로베스피에르 역시 바로 4개월 뒤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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